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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반복] 4주차 쪽글

로라 2017.09.28 16:06 조회 수 : 191

차이와 반복 4강 쪽글                                                                                2017.09.28.                                                            로라

 

4절

차이와 망아적 재현: 무한대와 무한소

개념 일반이 지닌 동일성의 기준을 따른 크고 작음의 선별은 차이의 고유한 개념을 포기하고 고정된 한계들 사이에서 동일성이나 유비의 개념으로 편입된 규정들만 차이가 될 수 있게 한다. ‘차이 만들기’에 본성을 두고 있는 선별은 유기적 재현의 요구들에 따라 평균적 형상들을 측정하고 할당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일의적 존재의 simple한 현전 안에서 극단적 형상들이 나타나고 각기 자신을 펼쳐갈 수 있도록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다. 크고 작음을 극단적 형상들로 재발견했을 때 극단이 무한에 의해 정의되는 것처럼 보이면 무한은 크고 작은 것들과 극단까지 동일해짐을 의미한다.

*무한의 발견이 더 이상 유기적(organic) 재현이 아니라 망아적(orgiastic)재현의 모습이 된다

* 표면상의 고요함이나 유기적 질서의 한계들 아래 소란, 불안, 정념 ->orgiastic한 재현의 형태

*개념은 이 모든 것, 즉 모든 국면, 모든 계기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하므로 개념은 전체가 된다.

개념은 변신하는 규정을 따르고 옹호하며 그 규정과 짝을 이루며 규정을 근거ground로 하는 순수한 차이를 재현한다.

근거는 하나이면서 같은 ‘총체적’ 계기이며 차이가 소멸하는 동시에 생산되는 계기, 사라지는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이다.

****라이프니츠와 헤겔은 유기적 재현을 orgiastic representation까지 밀고 갔으나…동일성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들뢰즈의 평가)

 

이유로서의 근거

헤겔의 무한한 소멸운동, 즉 차이가 소멸되는 동시에 생산되는 계기가 되는 한계는 한계라는 기초 개념이 재현의 마지막 경계선을 가리키지 않고 오히려 유한한 규정이 끊임없이 사라지고 태어나는 모태가되어 더이상 형상의 제한을 뜻하지 않고 근거를 향한 수렴이된다. 한계는 근거와 근거위에 놓인 것의 상관 관계를 가르킨다.

라이프니츠에게서도 규정되는 것이 (미분량이) 가장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여부에 무관심하다. 무한을 고려하게되면 규정된는 것이 그런 물음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망아적 재현은 차이를 만든다고 할 수있다 차이를 선별하지만 차이를 근거와 관계짓는 무한을 도입하는 가운데 선별하기 떄문이다.

망아적 재현의 원리는 근거에 있고, 그 재현의 요소는 무한에 있다. 반면 유기적재현의 원리는 형상에 있고, 그 재현의 요소는 유한에 있다.

규정을 사유가능하게하고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무한”이다. 그리하여 ….차이는 규정에 대한 유기적 재현이 아니라 망아적 재현으로 등장한다.

망아적 재현이 사물들에 대한 판단을 살아 있게 만들지만 사물 자체를 가지고 무한한 분석 명제나 무한한 종합명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무한 속에 유한한 규정이 존속하므로 이 재현 안에서는 무한과 유한이 불안을 겪게되며 이 불안에 의해 하나가 다른 하나 안에서 재현될 수 있다.

이원성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는 양자택일의 형식( 라이프니츠와 헤겔 사이에 성립하는 양자택일의 형식)을 뛰고 있다.

라이프니츠와 헤겔은 각기 크고 작음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나지만 두 사람 모두 무한하게 작고 큰 것 사이의 양자택일에 부딪힌다.

그래서 망아적재현은 이런 이원성을 향해 열려있다

—>>망아적 재현의 불안을 이중화하는 이원성은 그 불안의 진정한 이유이다.

 

 

헤겔에 따른 차이와 논리학과 존재론: 모순“모순”: 모든 정의는 대립물의 통일로서 모순을 포함한다

(주인<—>노예)

정립-반정립-종합 의 변증법적 전개과정을 통해 절대정신으로 실현된다

<모순비판>

헤겔의 모순은 스스로 해소되고 해소된 모순은 차이를 해소해 버린다

모순은 차이를 근거와 관계짓는 가운데 해소해 버린다.

차이가 유일한 문제이다

극단적 이거나 상반적인 것들의 대립을 통하여 차이를 규정한다.

모순 안에서 차이는 ‘부정성’으로 규정된다.

모순은 화해, 통일로서 종합(동일성)이 이미 예정되어있다.

—>>헤겔의 차이는 동일성으로 수렴되고 있다

 

라이프니츠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과 존재론: 부차 모순 vice-diction(연속성과 식별 불가능자들)

 

“부차모순” : 세계는 ‘무한히 작은 차이-모나드’라는 최소 단위에 의해 구성되어있다.

모나드(단자)는 분힐불가능한 가장 단순한 실체..무한소의 크기를 갖는 미분적 실체이다…데카르트적인 연장은 갖지 않는다..사유에 가깝다

부차모순은 모나드를 구별짓는(개체화하는) 속성을 말한다.

라이프니츠는 현상들에 대하여 비본질적인 것(차이나는 것)에서 출발하여 이 것이 무한하게 작은 것에 힘입어 종-유로 나누고 이에 힘입어 대립해있는 유사 종이 되는 것에 이른다.

이렇게 본질의 구별을 유지하는 무한소의 절차는 모순과는 다른 ‘부차모순’이라고 한다

<부차모순 비판>

부차모순은 식별 불가능자의 동일성 원리에 기초해있다

->식별 불가능한 것은 차이가 없고 차이가 있다면 식별가능하다는 뜻

->>식별 불가능한 어떤 개체의 동일성을 정의하는 차이가 부정성(negativity)으로 규정되어있다.

->>무한히 작은 차이라는 것은 직관에 의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이 미분비 앞에서 소멸한다.

->>미분적 관계를 통해 차이는 부정적인 것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된다.

->>이에 전제되어야하는 세계의 공가능성compossibility의 연속체 안에서 미분비와 특이점들은 개체적 실체들을 규정하게 된다.

—>>>라이프니츠의 부차모순은 연속성의 법칙과 식별불가능자들의 원리를 통해 망아적 재현은 규정을 매개하겧고 그 규정을 차이의 개념으로 만든다.

 

망아적 재현 혹은 무한한 재현의 불충분성

1. 라이프니츠와 헤겔 사이에서는 차이에 대해 가정된 ‘부정성’negativity이 부차모순적 제한으로사유되든지 모순적 대립으로 사유 되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2.차이는 여전히 동일성에 종속되어있으며 부정적인 것으로 환원되고 있으며 상사성similitude과 유비ana 안에 갇혀있다.

3.무한한 재현은 유한한 재현과 같은 결함 즉, 차이의 고유한 개념을 개념 일반의 동일성 안으로 기입하는 것과 혼동하는 것

->동일성을 ‘유’로 파악 하는 대신 무한하고 순수한 원리로 파악

 

5절

차이, 긍정, 부정

제한이나 대립의 상황은 차이를 전제한다.

:헤겔의 힘들의 ‘대립’, 라이프니츠의 형상들의 ‘제한’에서 심층적인 실재적 요소가 필요하다

->이 요소는 형상을 갖지 않고 누승적 잠재력을 띤 다양체로 정의되고 규정되나 그 속의 긴장들을 동일자 안에서 불균등한 것들을 분배하여 해소한다.

->>여기서 원천적이고 강도적인 깊이를 놓친다

-->>이미지들이 최종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층을 이루며 상호 공존하는 변동적 평면들, 원천적 깊이 안의 불균등화이다. : 차이의 깊이가 일차적이다.

-->>시간과 공간은 표면에서만 대립과 제한들을 드러내지만 실제적인 깊이 안에서는 헐씬 방대한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제한에서>

헤겔보다는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

<--바탕 안에서 다양체의 특이점과 미분적 요소들을 분배하고 세계 창조 안에서 유희를 발견하기 때문

(한계(극한)의 차원이 그 모든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원천적인 깊이에 더 가깝다)

라이프니츠의 잘못은..발산 자체가 긍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열들을 어떤 수렴의 조건에 묶어두었고 낡은 원리의 지배를 유지시켰기 때문

 

<헤겔의 대립에서>

대립은 차이를 가정하면서 이를 왜곡하고 변질시킨다.

즉자적 차이는 이미 모순이 아니며 모순으로 환원되거나 소급되는 것이 아니다

차이가 동일자의 경사면위에 강제로 놓일 때 차이는 평면적 공간으로 인도되고 평면에 투사되어 동일성이 원하는 곳 안에, 부정적인 것 안에 반영된다.

:‘정신현상학’ 초두에서 헤겔의 변증법- 지금과 여기는 텅빈 동일성, 추상적보편성으로 정립되며 이 것들은 자신과 함께 차이를 끌고 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들뢰즈의 생각)

->차이는 따라가지 않고 고유한 공간의 깊이 안에 걸려있고 독특성들로 이루어진 지금-여기에 붙들려있다.

헤겔의 운동은 말과 재현들을 통해 만들기 때문에 거짓운동이며 아무 것도 따라오지 않는다.

재현되지 않는 독특성--그리고 보편자 ; 이 둘의 연관성과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말하기의 불행...다른 사람들을 위해 말한다는 것, 무엇인가를 재현한다는데 있다: 감성적 의식은 완고하게 버티고 있다.

 

매개하고 반정립으로 이행하며 종합을 이루어내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지도 모르지만 테제는 따라오지 않는다.

->테제는 자신의 직접성안에 그 자체로 참된 운동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차이 속에 존속한다.

->차이는 테제의 참된 내용, 테제의 고집이다.

 

가상으로서의 부정적 사태

차이의 철학이 거부하는 것 : ‘모든 규정은 부정 ’이라는 명제

제한의 부정성이나 대립의 부정성을 양자택일하여야하는 무한한 재현..

차이는 본질적으로 긍정의 대상, 긍정 자체이다.

아름다운 영혼 ( 당시의 낭만주의자들을 지칭하는 하는 것일까?)들이 불러들인 차이는 존중할만하고 화해시킬 수 있으며 연합가능한 차이들이지만...용서없는 싸움에서 의견 차이로 인한 단순한 분쟁이나 오해로 빚어지는 갈등만 보려는 것.

 

*필연적 파괴를 불러들이는 두 가지 방식

(1)시인의 방식-모든 질서와 재현을 전복하는 창조적 역량은 본연의 차이자체를 긍정하게 한다

영원회귀라는 영구 혁명 상태의 차이를 긍정하는 것

(2)정치가의 방식- 역사 안에서 확립된 질서의 보존과 확장하기 위하여...

일탈하는 것이나 ‘차이나는’ 것을 부정하는데 관심

:::니체의 긍정-부정의 관계에 대한 생각의 대립

<부정>

발동장치이자 역량으로서의 부정, 긍정은 그것의 결과이다

EX. 짜라투스트라의 당나귀 : “예”-그에게 지우는 짐들(신적 가치), 스스로 떠맡는 짐들(인간적 가치), 자신 의 피로해진 근육의 무게(가치들의 부재)

->긍정한다는 것은 짊어지고, 떠맡고, 감당한다는 것이다

_>>책임감을 향한 지독한 취향과 도덕적 향수

->>오직 속죄할 때, 즉 붕정된 것과 부정 자체의 무게를 동시에 감당할 때만 긍정을 산출하는 하는 것처럼 보임

 

<긍정>

긍정이 일차적이다.

차이 ,거리를 긍정하는 것으로 차이는 가벼운 것, 긍정적인 것이다.

->짐을 던지고 가볍게 하는 것

->>긍정에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요”

-->부정적인 것은 부대현상으로 강하고 차이나는 긍정의 효과

 

당나귀의 예와 아니요 <--> 디오니소스-차라투스트라의 예와 아니요

노예의 관점 <--> 주인의 관점

(아니요로 부터 긍정의 환영을 끌어내는) (예로부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귀결을 끌어내는)

보수주의자의 관점 <--> 창조자의 관점

(오래된 가치를 지키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평균적 형상과 극단적 형상(새로운 가치)사이에서 성립하는 가장 심층적인 본성상의 차이는 무한으로 끌고 간다고 해도 유한 안에서 대립으로 무한에 이르러도 극단에 도달할 수 없다

-> 무한한 재현 안의 사이비 긍정을 통해서 평균적 형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원회귀가 끄집어내는 우월한 형상은 ‘비형상, 변신, 변형’을 거쳐가는 영원한 비형상 일 뿐

->>이것이 차이이다

 

:‘부정의 부정’이라는 새로운 공식

->부정되는 것, 부정되어야하는 모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정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귀결로서의 부정은 충만한 긍정의결과로 따라나오고 부정적인 것을 소진시키며 그 스스로 연원회귀의 움직이는 중심에서 소진된다.

:부정은 긍정을 분만하고 긍정 안에 차이를 분만하는 역량이나 의지의 그림자이다

 

<개념의 형식>

무한한 재현이 수호하는 단일한 중심은 전체를 한번에 정돈하고 유기적으로 조직하는 통일적인 계열과 같다

동일성의 형식인 개념의 형식으로부터 분리되면 재현이 불가능해진다.

->이 형식이 즉자존재(재현되는 것) 또는 대자 존재(재현하는 것)를 구성한다.

 

:접두사 RE는 차이들을 잡아먹는 이 동일자의 개념적 형식을 뜻함

->재현과 관점을 중복한다고 해서 ‘재현이하’의 것으로 정의되는 직접적이고 무매개적인사태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럼....재현은 중심에서 기형화되고 이탈되고 강탈되어..각각의 관점 자체가 사물화 되거나 사물이 관점 화되어야한다->>사물은 결코 동일자일 수 없다.

-->>중심과 수렴이 없는 다른 계열을 구성해야하며 계열 안에서조차 발산과 중심이탈을 긍정해야한다

-->>>차이가 차이 지으며 나아가는 차이임을 보여 주어야한다...

 

*현대예술작품-초험적 경험론이나 감성적인 것에 대한 학문이 되기 위하여 재현의 영역을 떠나고 있다

 

*감성론: 재현에 근거를 두었으나 재현으로부터 순수한 감성적 요소를 추출하고, 재현이 제거된 뒤 남는 것으 로 규정

->>감성적인 것의 존재자체를 포착->이 때 경험론은 초험적 성격을 띠고 감성론은 절대적 분과 학문이 됨

 

*반복repetition은 재현representation에 대립한다.

:이 때 접두사re의 의미는 바뀜.

동일자에 대한 관계 안에서 -> 일의적인 것이 차이나는 것에 대한 관계 안으로

 

*반복은 차이 나는 것들의 비형식적 존재이고 바탕의 비형식적인 역량이다.

->이 역량으로 재현이 허물어지는 극단적 형상에까지 나아간다

->반복의 궁극적 요소는 계속되는 불일치에 있으며 재현의 동일성에 대립한다.

 

*칸트 이전과 이후

 

칸트 이전의 라이프니츠: 무한한 실체, 분석적 동일성, 제한의 부정성

칸트 이후의 헤겔: 유한한 자아의 관점, 종합적 동일성, 대립의 부정성

 

-> 어쨋거나..차이가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환원되고 동일자에 종속되어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

;종합적인 유한한 자아와 분석적인 신적 실체 같은 상황에서 신-인간의 전환이 상황 자체의 전환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

(무조건적 전회의 경험과 이념 안에 있는 휠덜린만은 제외-프리드리히 휠덜린(1770~1843, 독일의 시인))

종합적 동일성이 실천 이성의 도덕성이 자아, 세계, 신의 일체성을 복원하고 카트 이 후의 종합을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개념적 매개와 화해들에 반하여 차이 위에 존재를 직접적으로 개방하게 하는 분열증으로 빠져들고 있다.

 

6절

 

플라톤에 따른 차이의 논리학과 존재론 

 

이데아는 세계를 재현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개념으로가 아니라 생생한 현전으로 이해해야한다.

플라톤주의에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 있고 차이의 변증술은 차이에 “나눔”이라는 고유한 방법이 있다

이 “나눔”은 무매개적 절차이고 이데아의 영감에 의존한다.

나눔의 방법에 등장하는 것들: 지망자의 근거의 시험, 물음과 무제, (비)존재와 부정적인 것

나눔에서 중요한 것은 ‘선별’의 방법이다. 이는 종별화와 다르다.

이 방법의 목표는 경쟁자들의 선별, 지망자들을 시험하는데 있다

—>>유사 유나 거대 종의 한가운데서 사물과 그것의 허상들을 구별하는 문제이다. 플라톤은 “신화”를 통하여 수행한다

플라톤 철학에서 근거로서 역할 하는 것은 “분유개념”인데…분유는 어떤 것을 이차적으로 차지한다는 뜻

 

일차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바로 이데아(근거 자체)인데 이 근거의 고유한 본성은 분유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근거는 일종의 시험으로 작동하는데..이 시험을 통해 지망자들은 (1)분유 불가능한 것, (2) 분유되는 것, (3)분유자로 정리된다.

시험은 신화 속 문제와 물음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플라톤적 변증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피스트의 ‘비-존재’ non-being: 이 때 ‘비non’는 negative 한 것이 아니다

->>비 -존재는 반대가 아니라 다름이며 변별적 차이 관계가 형성되는 지반이며 여기에서 긍정(다양체의 성격)은 자신의 발생 원리를 발견한다

—모순의 저편은 차이이다. 비-존재의 저편은 (비)-존재이고, 부정적인 것의 저편은 문제와 물음이다.

**플라톤 변증술에서 들뢰즈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 ㅠㅠ 소피스트로부터 존재를 긍정으로 뒤엎는 가능성 발견?

 

***Heidegger`s Philosophy of Difference :개념 정리 해보자-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ㅠㅠ

 

Being

 

Non-being

 

(Non)-being

 

7절

 

차이의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 : 허상과 허상의 저항

 

플라톤의 변증술의 최고 목적은‘차이를 만든다’는 데 있지만...변증술의 네가지 측면인 차이의 선별, 신화적 원환(mythic circle) 설립, 정초(foundation)의 확립, 물음-문제 복합체의 정립 등의 형태를 거치면서도 차이는 여전히 ‘같음(the same)’이나 '일자‘(the One)와 연관되어있다. (같음은 이데아의 특징) 플라톤주의는 차이를 그 자체로 사유하지 않고 어떤 ’근거‘에 관련 짓고 같음에 종속시키며 신화적 형식을 통해 매개를 도입한다.

 

그럼 플라톤주의를 전복한다는 것은? 모사에 대한 원본의 우위를 부인한다는 것

이미지에 대한 원형의 우위를 부인한다는 것

허상(simulacra) 과 반영(reflection)의 영역을 찬양하는 것

 

-->>영원회귀의 등장

-니체가 영원회귀를 통해서 말하고자하는 것은 선행하는 동일성이 페기되고 와해되는 세계(힘의 의지의 세계)

를 가정하기 때문에 동일자의 회귀가 아니다. 스스로 변형하고 서로의 안으로 이행하는 극단적인 형상만 돌아올 뿐이다. (3절)

 

- 패러디의 성격

-영원회귀는 자신이 존재하게 만드는 것에 허상이라는 자격을 부여하여

-영원회귀가 존재의 역량일 때 허상은 존재자의 참된 특성 또는 형상이다.

-영원회귀는 원본과 파생물, 사물과 허상 사이에 차이를 두는 심급인 ‘근거’를 와해시켜버린다.

:영원회귀를 사유하는 자는 동굴 밖으로 끌려나오지 않고 그 너머의 다른 동굴을 발견하고 그리로 숨어든다.

 

-->>>들뢰즈의 생각 ->사물과 허상, 원형과 모상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

플라톤은 영원회귀를 카오스에 대립시켰다 : 그랬던가..

-소피스트의 배후에서 모순과 카오스라는 가정된 상태를 보았지만 소피스트는 모순의 존재자가 아니라 모든 사물들을 허상의 상태로 끌고 가는 자, 허상의 상태 안에서 사물들 전체를 운반하는 자

->플라톤이 이런 반어를 패러디 상태까지 밀어붙였으면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는 최초의 인물이지 않았을까?

카오스와 영원회귀는 같은 것임으로..

 

<다시 재현으로>

재현은 무엇 때문에 비난 받는가?

->동일성의 형식에 머물기 때문이며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라는 이중의 관계아래 머물기 때문.

->재현이 무한하다한들..‘의식’이라는 circle'의 단일한 중심을 돌며 계속 중복하고 유기적으로 조직하지만

결국... 같은 세계의 같은 것으로 수렴 된다.

 

**현대 예술 작품에서 예술은 철학에 재현을 폐기하는 데까지 이르는 길을 가르키고 있다

(ex. 말라르메의 ‘책’ , 조이스의 ‘피네건의 평야’)

: 계열들의 발산, circle의 탈 중심화, 그리하여 ‘괴물’의 탄생..근거가 와해된 ungrounded chaos

->esoteric(난해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읽히는 사물의 동일성과 읽는 주체의 동일성은 와해 된다

-->>모든 것이 허상이 되었다

--->>>이때 재현 이하 영역의 ‘the lived reality 살아있는 실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허상 안에서 “계속되는 불일치”를 측정 단위로 하는 순수한 현전의 즉각적인 요소는 차이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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