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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31.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 프로포절 발표 - 홍은애

 

영화 <누에치던 방>(2016)에서 실재는 어떻게 귀환하는가?

지젝은 왜 ‘실재’에 주목하는가? 토니 마이어스는 지젝을 “상징계에 맞서는 실재의 철학자”라고 말한다.

이는 지젝이 라캉적 의미의 실재를 확장하고 자기화 했으며, 언제나 상징계와의 관계 속에서 실재를

다룬다는 것이다. 지젝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 상징계와 실재는 역설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상징계의 균열을 덮고 있는 것이 ‘이데올로기’이고 그 균열을 통해 고개를 내미는 것이 ‘실재’라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실재의 조각을 감추는 역할을 하며, ‘숭고한 대상(대상a)’은 상징계의 이데올로기가

매끄럽게 작동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기계 속 모래 알갱이 같은 것이다. 이러한 상징계와 실재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완민 감독의 <누에치던 방>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삐딱하게 보기』, 슬라보예 지젝, 김소연⋅유재희 옮김, 시각과 언어, 1995

『이데올로기란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이수련 옮김, 인간사랑, 2002

『그들은 자기가 한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옮김, 인간사랑, 2004

『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토니 마이어스 지음, 박정수 옮김, 앨피, 2005

『자크 라캉 세미나 11』, 자크-알랭 밀레 편,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HOW to READ 라캉』, 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2007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슬라보예 지젝, 이현우⋅김희진 옮김, 자음과 모음, 2011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슬라보예 지젝,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13

『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최영송,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Ⅰ. 서론

이완민 감독의 <누에치던 방>은 어느 날 주인공 미희 앞에 등장한 ‘여고생’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으려고 애쓰고 있었던 그들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게 되는 영화다. 미희는

10년 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사준생’이다. 이제 그녀는 사준생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도 그녀의 가족도 그런 그녀를 이해해주지 못한다. 더구나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

헤어지자고까지 한다. 미희는 이사하기 위해 옥탑방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전철에서 ‘여고생’을

만났다. 그녀는 무작정 여고생을 쫓아 아파트 단지까지 따라가고 그녀가 들어갔다고 생각한

아파트 현관 벨을 누른다. 그때 안에서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그 여고생이 아니라 40대의

성숙이었다. 누구냐고 묻는 성숙에게 미희는 자신을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성숙은 미희를 집안으로 들인다. 미희는 왜 성숙에게 자신을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라고 소개했는지 성숙은 자신보다 10년이나 젊은 미희의

거짓말을 왜 받아들여 줬는지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들이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과거 기억의 단편들이 하나 둘 씩 드러난다. 이 영화를 푸는 열쇠는 바로 ‘여학생(김유영)’이다.

그녀는 영화에서 유령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감독은 공교롭게도 그녀의 이름을 성숙이

고등학교 때 자살한 단짝 친구(김유영)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명했다.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김유영과 여고생을 같은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두 인물은 배우 김새벽이 1인 2역을 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미희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여고생’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한 그녀는 왜 여고생을 쫓아가는가?

 

Ⅱ-1. 여고생과의 마주침(대면)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미희는 전철에서 여고생을 만난다. 그녀는 얼굴에 상처가 하나도

없는 여고생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여고생을 따라간다. 미희에게

‘여고생’은 실재다. 하지만 미희가 실제로 만난 사람은 여고생이 아니라 성숙이다.

미희는 성숙에게 자신을 고등학교 때 ‘단짝친구’라고 말한다. 이후에 두 번째로 미희가

여고생을 만나는 것은 그녀의 꿈속에서다.

 

미희가 실재의 침입(여고생)을 경험하게 될 때, 그녀는 모른 척 할 것인지 그녀를

따라 갈 것지를 결정해야 한다. 바로 그 결정의 순간, 즉 실재의 침입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주제로서 다시 존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지젝은 “주체는 상징계와 실재 사이의 경계, 혹은 그 사이에서 출현한다”고 말한다.

상징계와 실재 간의 상호작용이 없다면 주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Ⅱ-2. 실재의 조각 : 과거의 단짝친구와 현재의 단짝친구과의 만남


영화에서 미희는 두 번의 꿈을 꾼다. 첫 번째 꿈에서 미희는 다시 여고생을 만나고

두 번째 꿈인 미희의 장례식장에서 근경(미희의 과거 단짝친구)과 성숙(현재의 단짝친구)이 만난다. 

 

지젝은 상징계의 의미화 체계에 완전히 포함될 수 없는 대상 언어로 실재를 들고 있다.

라캉의 실재는 상징화에 저항하는 것으로, 그것은 역설적으로 실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속성들을 가지고 있는 실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주체들의 상징적인 현실 내에서 일련의 효과들을 산출할 수 있다”

라캉의 예로 들자면 ‘신’이고 지젝에 따르면 ‘히치콕의 맥거핀’이다.


이 영화에서 여고생의 존재는 히치콕의 ‘맥거핀’에 해당하지 않을까?

 

Ⅱ-3.  실재의 주체 : 여고생은 김유영인가 김유영이 아닌가? 


만약 여고생이 김유영이라면 성숙과 익주는 그녀를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젝은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실체를 해체는 과정에서 주체마저 부정함으로써,

주체를 포기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자면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행위.

지젝은 주체의 본성에 실재를 도입함으로써 상징계에서 주체에게 주어지는 강제되는 선택을

탈피하고 주체가 만들어 가는 실재의 선택을 강조한다. 따라서 지젝의 주체 개념은 ‘구조’가 아니라

‘행동’에 기초하고 있다. 왜냐하면 구조는 주체에게 ‘강요된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구조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행위가 중요하다. 
 

Ⅲ. 결론
 

* 첨부파일로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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