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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5장 다시 방문한 스탈린주의, 혹은

어떻게 스탈린은 인간의 인간성을 구원했는가 〈발제;왕진희〉

 

〈스탈린주의의 문화적 반-혁명〉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탈린주의는 러시아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재앙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성이라고 이해되는 것들을 구원했다. 이와 관련하여 1930년대 초중반에 일어난 프롤레타리아적 평등주의로부터 러시아적 유산에 대한 확고한 승인으로의 거대한 변화가 중요하다. 문화영역에서 푸시킨과 차이콥스키 같은 인물들이 모더니즘보다 우위의 예술가로 찬미되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 미학의 규준들이 다시 주창되었다. 소비에트 권력과 과학, 예술 분야의 모더니스트 사이의 짧은 정략 결혼이 끝났다. 음악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서커스와 재즈의 요소를 도발적으로 패러디한 1920년대 음악으로부터 1930년대 후반의 보다 전통적인 형식으로의 회귀에서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런 이동은 진정한 혁명을 배반한 ‘문화적 테르미도르’이다. P317~8

 

급진적 평등주의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적 전망에 대해 꼼꼼히 따져 보는 것으로 ‘생명우주론’을 참조하며 트로츠키의 적절한 사례를 찾아 읽어보면 (.,.....)새롭고 ‘개선된 인간 변이형’을 생산하는 것, 그것이 미래의 공산주의 과업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관찰해야하며, 자기 자신을 날것의 질료나 잘 쳐서 유사-제조된 생산품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괴상한 이론적 원리가 아니라 예술, 건축학, 심리학, 교육학, 그리고 조직학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에 의해 실제로 일어난 대중적 운동의 표현인데, 볼셰비키 엔지니어이자 시인 알렉세이 가스체프는 1922년 초반에 이미 ‘생체물리학’의 개념을 사용하여 인간과 기계가 혼합된 사회의 전망을 그렸다. 그는 인간의 기계화를 진화 선상의 다음 단계로 보았다. “그 유토피아에서 사람들은 ABC혹은 325, 075등과 같은 부호로 표시되는 ‘프롤레타리아적 단위들’로 대체될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더 이상 ‘외침이나 미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압력 계기나 속도 계측기에 의해서 측정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전망이 실제로 구현되었다면 그것은 역사적 스탈린주의보다 훨씬 더 끔찍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스탈린의 문화정치는 이런 모더니즘적 기계주의의 전면화에 대항해서 이뤄졌다. ‘기계화된 집단주의’의 유토피아에 맞서서 1930년대의 스탈린주의는 가장 폭력적인 윤리학의 회귀로 대변된다. 그것은 전통적인 도덕 범주들이 무의미해져서 위반 행위가 주체의 죄를 함축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압력기계나 속도 계측기에 의해 평가되는 위험에 대한 방어책이었다. 이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부과가 수많은 인민들에 의해 진정으로 환영받은 이유이다. P319

 

18,19세기에 많은 서구 여행자들이 법의 외재적 압력에 의해 통합된 서양의 개인주의 사회와는 달리 유기적 사회, 살아 있는 사회적 총체를 찾아 러시아를 찾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러시아에는 실제로 어떤 내부의 유기적 형식도 없으며 난폭한 전제 군주의 철권에 의해 통치되는 무질서한 제국밖에 없음을 발견했다. 달리 말해, 서구적 근대화에 의해 파괴된 조화로운 균형을 가진 ‘오래된 러시아’라는 개념은 신화였다. 그래서 무질서한 사회적 생활 조직들에 중앙 집중적 질서를 강요하는 폭력적 ‘모더니즘’이 전통적 러시아 사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인 것이다. 스탈린이 이반 4세를 자신의 선구자로 찬미한 것은 옳았다. 그럼 이에 따라 스탈린주의는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위협에 대항한 방어라고 인정해야 하는가? 여기서 라캉의 테제 “아버지이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를 적용하여 더 나쁜 쪽을 선택하는 위험을 감행해야 한다면 어떨까? 생- 정치적 꿈을 끝까지 추구하는 쪽의 선택 결과가 예기치 않게 이런 꿈의 좌표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 되었을 것이라면? P320, 322

 

〈‘어쩌면 세상을 구할지도 모를’ 자기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편지〉

1930년대 스탈린주의적 테러는 휴머니즘적 테러였다. 그것이 ‘휴머니즘적’ 핵심은 그 테러의 공포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 공포를 지탱하는 가능성의 조건이었다. 절정기 스탈린주의에 의해 부활된 휴머니즘적 전통이, 반체제 저항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전제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세상을 구했다’면, 즉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전면적인 핵전쟁을 막았다면 어쩔 텐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핵심 편지가 도착하지 않은 듯이, 마치 그 편지가 존재하지 않은 듯이 행동한 케네디의 천재성이었다. 1962년 10월26일 흐루시초프가 케네디에게 보낸 편지에는 만약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공표하면, 미사일을 철수시킨다는 것이다. 10월 27일 토요일 미국이 답신을 보내기도 전에, 또 하나의 편지가 흐루시초프로부터 발송이 되었는데, 미국이 터키로부터 미사일을 철수시키라는 조건을 추가하면서 동시에 소련 안에서 정치적 모반이 일어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케네디는 마치 10월 27일의 편지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함으로 일요일 케네디는 흐루시초프로부터 거래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모든 것의 운명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위기의 순간에는 외관을 보호하는 것, 예의바름, 상대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다른 무엇보다 실효를 거둔다는 것이다. P323

 

〈크렘린 학〉

‘인간의 인간성’을 구원하는 스탈린주의의 역할은 언어라는 가장 기본적인 층위에서 포착된다. 만약 새로운 포스트-휴먼 존재의 언어가 더 이상 주체를 재현하지 않는 신호적 언어여야 한다면, 스탈린주의적 언어가 이것과 가정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언어라고 해서 놀랄 이유는 없다. 꿀벌의 복잡한 신호체계와 대조적으로 인간적 언어를 특징짓는 것은 라캉이 ‘텅 빈 발화’라고 부른 것, 즉 발화자와 수신자 사이의 상호 주관적 관계의 지표로 기능하기 위해, 자신의 지시적 가치(현시적 내용)를 중지시키는 발화이다. 이런 중지가 ‘크렘린 학 Kremlinology의 대상이었던 스탈린주의적 방언의 핵심 특질이다.

 

최근까지도 극소수의 사람들만 깨닫고 있는 것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대두되는 이슈는 입에서 나온 말이나 정치적 예견이 아니라, 그것의 대중적 확산을 통해서 신뢰성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크렘린 학은 하버드에서가 아니라 크렘린 안에서, 크렘린 주위에서 발생한다.(......)이것이 체제 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소련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정 정도 고위층일수록 더한 행동 방식이다. 국내 권력 암투와 뫼비우스-띠 음모들 속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삶과 죽음은 그들이 어디에 서 있든, 누구를 알고 있든 불투명했다. 그것은 공식적인 동시에 불확정적이었다. 진정한 ’기호의 제국‘은 바로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소비에트 교과서 모델을 재독해하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마르크 로젠탈의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이 1951년 모스크바에서 간행되었는데, 나중에 재판을 찍을 때 많은 분량이 생략되거나 다시 쓰여 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철학적 문제에 관한 작가의 발전된 성찰과는 아무상관이 없는 것으로, 그런 변화들은 엄격히 크렘린학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정치 노선의 변화 징표로 읽어야 한다.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정치적 좌표의 변화와 관계한다. 그렇다면 크렘린 학은 일종의 소비에트 학의 외설적 분신이 아닌가? 후자가 객관적으로, 사회학적 데이터-통계학-권력 이동 등을 통해 소비에트 체제를 연구하는 데 반해, 전자는 그것을 불명료한 기호학적 체계로 연구하는 게 아닌가? p329,330,333

 

〈객관적 유죄로부터 주관적 유죄로〉

어떠한 종류의 윤리가 우리로 하여금 ‘객관적 유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도록 하는가? 분명 그것은 부도덕한 윤리이다. 부도덕한 윤리의 진정한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니체로, 우리는 그의 대표작 제목이 ‘윤리의 계보학’이 아니라 『도덕의 계보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도덕성은 다른 인간 존재와 나의 대칭적 관계에 관한 것이다. 그것의 기준 공리는 “당신이 내게서 원하지 않는 행동을 나에게 하지 말라”이다. 반대로 윤리학은 내 자신의 일관성, 내 자신의 욕망에 대한 충실성에 관련된다.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39년 판 뒤표지에 스탈린은 붉은 잉크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⑴연약함 ⑵나태함 ⑶어리석음: 주의하라! 만약 인간이 ⑴강하다면(정신적으로), ⑵능동적이라면, ⑶영리하다면 그는 다른 어떤 ‘악행’과도 무관하게 선하다. ⑴ 더하기 ⑶은 ⑵이다. 이것은 그 어떤 공식보다 부도덕한 윤리를 정확히 표현해 준다. 이와 반대로, 도덕적인 규칙에 복종하고 자신의 유죄를 걱정하는 약자들은 비윤리적 도덕을 대변하며, 이들이 니체의 원한 비판의 타깃이 된다. 하지만 스탈린주의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너무 부도덕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은밀하게 너무 도덕적이라는 것, 여전히 대타자의 형상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다. 스탈린주의적 테러의 가장 지적인 정당화라 할 메를로-퐁티의 『휴머니즘과 폭력』에서 테러는 일종의 미래에의 내기로서, 우리로 하여금 신에게 배팅하도록 명령하는 파스칼의 신학적 양태와 거의 같은 논리로 정당화된다. “당이 자신의 통일성을 강화하기위해 그들의 피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고발되고 살해된 것임을 인정할 때-모든 희생자들이 결국에는 응분의 보상을 받고 그들의 무고함과 대의를 위한 고결한 희생이 인정받을 마지막 승리의 순간을 예견할 것이다. 이것이 라캉이 ‘정신분석의 윤리’에 관한 세미나에서 ‘최후 심판의 관점’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객관적 유죄’와 행위의 ‘객관적 의미’에 관한 스탈린주의적 담화의 문구들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관점이다. p336, 337

 

라캉 윤리학은 어떤 대타자의 보증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율적인 윤리의 조건이라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어떻게 정신 분석의 기본적인 윤리적 메시지가 자기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라는 것, 타자에게 책임을 돌리라는 것이라는 통상적인 오해를 피할 수 있을까? 라캉 자신은 칸트의 철학을 정신분석적 윤리의 중요한 선례로 참조하면서 이와 같은 곤경을 벗어나는 길을 마련했다. 표준적인 비판에 따르면 칸트의 ‘정언명령’이라는 보편주의적 윤리학(의무를 행하라는 무조건적 명령)의 한계는 그 형식적 불확정성에 있다. 도덕적 법칙은 나의 의무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으며, 단지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것만을 말해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도덕법의 추상적 명령을 일련의 구체적 책임으로 번역할 책임은 주체 자신에게 있고, 이런 역설의 온전한 수용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의무에의 참조도 변명거리로 삼지 못하도록 만든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홀로코스트 계획과 실행에 관한 자기 역할을 정당화하기 위해 칸트의 윤리학을 참조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자신은 단지 총통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행한 것뿐이다. 하지만 주체의 도덕적 자율성과 책임에 대한 칸트의 강조는 어떤 대타자 형상에 책임을 전가하는 그와 같은 태도를 막기 위한 것이다.p339

 

스탈린주의자들은 실제 개인들을 대변하여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을 위하여, 한 명의 경험적 개인도 믿지 않더라도 신을 믿는 이 가상의 대타자를 위해서 행동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의 개인적 냉소를 자신의 ‘객관적’신실함과 결합할 수 있다. 그는 대의에 대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는 단지 믿는다고 가정된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이것이 스탈린 공산주의의 기저에 있는 주체적 입장, 즉 도착증적인 위치로 데려다준다. p341, 342

 

〈『카사블랑카』 속의 쇼스타코비치〉

노멘클라투라 구성원들에게는 대타자의 도구화라는 도착증적 위치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평범한 소비에트 시민들은 믿느냐 안 믿느냐의 단순한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음악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어 온 쇼스타코비치 작품의 진정한 메시지를 둘러싼 논쟁을 상기해 보자. 공산주의와 그의 확실히 고통스러운 관계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진정한 입장은 어느 쪽인가?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주관적 경험은 의기소침과 두려움과 굴욕적인 타협으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봉쇄는 그의 음악적 표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나는 잘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부인의 구조는 그들은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지각이 더러운 상상을 옭아맨 고삐를 풀어준다. 이것은 대타자의 외관을 지키는 한 자유롭게 우리의 환상을 즐기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법 자체가 자신의 외설적 보충 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은 그 보충 물에 의해 지탱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그것을 양산하다. 할리우드 프로덕션 코드는 단지 어떤 내용을 금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암호화된 표현 방법을 성문화한다.

 

쇼스타 코비치의 대중적인 교향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것들 역시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작용한다면? 지배 이데올로기의 응시를 위해 의도된 공적 차원과 공적 규칙을 위반하는 다른 차원, 공적 규칙을 위반하지만 그 자체로 규칙 자체의 보충 물로 남아 있는 차원 말이다: 1936년 그의 음악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공격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음악 언어에서 한편으로는 크렘린의 주인들을 만족시키는 언어를,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이자 예술가로서 그 자신의 도덕적 양심을 만족시키는 언어를 사용하는 일종의 이중 발화 수법을 발전시켰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목소리는 승리에 도취된 언어다. 소비에트에 대한 환희에 찬 의례적 사운드 밑에는 좀더 부드럽고 우울한 목소리가 깔려 있다. 그것은 음악에 표현된 시련을 느끼는 자들만 들을 수 있는 조심스럽게 감추어진 풍자와 이의의 목소리이다. 이 두 목소리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에서 분명하게 감지된다, ‘조심스럽게 감춰진 목소리’인데도 수천 명의 청중에게 분명히 이해되었다니, 실로 이상한 해석학이 아닌가? 공식적인 검열관들은 정말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였을까? 이 부서질 듯한 두 목소리의 공존을 「카사블랑카」의 밤 장면에 각인된 것과 같은 모호성의 경로를 따라 읽는다면 어떨까 P355, 359,366,367,

 

〈스탈린주의적 카니발......〉

1935년 전까지 쇼스타코비치의 스케르초는 공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활력과 삶의 기쁨의 폭발로 인식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카니발의 해방적 힘과 같은 것이 있었다. 모든 장애물을 쓸어버리고 모든 기성 규칙과 위계들을 무시해 버리는 창조적 힘의 광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1935년 이후에는 사회적 폭력이나 대량학살과 같은 날것의 에너지를 표현하거나, 만약 ‘생의 기쁨’을 연주하는 경우라면 틀림없이 풍자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거나 무력한 희생자들의 발광적 분출을 표현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여기서 카니발은 더 이상 해방의 경험이 아니라 가로막히고 억압된 공격성의 발광이다. 즉, 그것은 인종주의적 학살이나 술 취한 채 강간하는 갱들의 ‘카니발’이다. 끝없는 숙청은 체제 자체의 기원적 흔적을 지우는 것일 뿐 아니라 일종의 ‘억압된 것의 귀환’ 속에서 체제의 중핵에 있는 근본적인 부정성의 잔여물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해서, 스탈린주의적 유죄 고백은 진정한 죄를 은폐한다. 스탈린은 출신성분이 낮은 사람들을 NKVD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상부 기관원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면서 노멘클라투라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표출할 수 있었다. 새로운 노멘클라투라 지배의 안정성과 반복된 노멘클라투라 숙청의 형상을 한 도착된 ‘억압된 것의 회귀’ 사이의 이런 내적 긴장이 스탈린주의적 현상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체주의의 최고 절정기는 항구적인 숙청의 시기로, 그 숙청은 있을 수 있는 모든 일탈을 완전히 제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로 이데올로기적 순수성을 위태롭게 하고 단일한 권력체제를 무너뜨리는 안정된 이해집단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흐루시초프 시절이야말로 소비에트 지배 엘리트가 자신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갖고 있던 마지막 시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P371, 379, 381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에서〉

에이젠슈테인의 「베진 초원」과 「폭군 이반」3부는 영화사에서 잃어버린 걸작 중 대표작에 속한다. 베진 초원의 탁월한 아이러니는 영화의 제목에 있다. 그 제목은 이반 투르게네프의 어느 사냥꾼의 앨범 스케치 중 죽음의 초자연적 징후에 대해 토론하는 농부 소년들에 관한 단편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제목이 쿨라크해체; 부농해체 시기 집단 농장을 지지했다고 반혁명적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농촌출신의 소년, 모로조프의 (악)명성 높은 이야기에 근거한 영화의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는 레닌의 아내 크롭스카야가 자기 사무실에서 젊은 콤소몰 당원과 거친 섹스를 하는 장면을 담은 「바르샤바에 있는 레닌」 이라는 제목의 그림 앞에서 의아해 하는 관람자의 질문, “레닌은 어디 있죠? 를 반복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그럼 베진 초원은 어디 있지? 두 이야기 사이의 유사성은 겉으로 드러난 서사 차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기저에 깔린 환상적 ‘가상’ 차원에 관여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초자연적인 것의 지상의 대표자인 교회와 투쟁하는 농부 소년 집단이 있지만, 그들은 카니발적인 광란 속에서 초자연적 징후를 파괴하면서 ‘죽음의 초자연적 징후들을 논박한다. P381

 

〈최소한의 차이〉

19세기 후반에 공고해진 교황의 오류 불가능성이라는 관념은 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황은 그의 전임자들의 결정을 무효로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의상 오류를 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역설이 스탈린에게도 적용된다. 그의 신성화, 접근 불가능한 숭고한 영도자로의 고양은 그의 ‘실재’ 권력의 제한과 일치한다. 대숙청 절정기에 카니발적인 자기-파괴의 나선이 상층 노멘클라투라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은 순간에 공산당 정치국은 스탈린에 용감히 대항하여 그로 하여금 그의 권위를 그들과 공유하도록 강요했다. P390

 

파시즘이 아니라, 공산주의는 20세기의 진정한 윤리- 정치적 재앙이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논고 중 하나는 나치 독일 전 기간 동안 국민을 통제하는 게스타포 비밀경찰의 수는 겨우 25,000명에 불과했지만 자그마한 동독이 더 적은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고용한 비밀경찰 수는 무려 10만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 체제가 훨씬 더 억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인데 이 사실을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적은 수의 게슈타포 요원이 필요했던 것은 동독보다 더 많은 수의 인구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나치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면? 왜? 왜 동독의 인구가 훨씬 더 많이 저항했을까? 그 대답은 역설적이다. 그것은 인민들이 윤리적 독립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체제가 대다수의 ‘실질적인 윤리적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P391

 

파시즘, 혹은 나치즘조차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적 위협에 대한 반작용이며 공산주의의 최악의 실천들( 집단 수용소, 정적에 대한 대량숙청)의 반복이었다. 나치즘은 비난받아 마땅하기는 하지만 공산주의 이후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 내용으로 보자면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도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나아가서 나치즘이 저지른 모든 잔혹 행위는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이미 저지른 모든 잔학 행위의 복제일 뿐이다. 나치즘은 실제로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것은 계급투쟁을 아리아인과 유대인 사이의 투쟁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프로이트적인 의미의 전치를 다루고 있다. 나치즘은 계급투쟁의 자리에 인종 투쟁을 전치하며, 그럼으로써 그 진정한 자리를 은폐했다. 공산주의에서 나치즘으로 옮겨갈 때 바뀌는 것은 ‘형식’이며, 바로 이런 ‘형식’의 변화 속에 나치의 이데올로기적 신비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정치 투쟁은 인종 갈등으로 자연화되고, 사회구성체에 내재하는 (계급)적대는 아리아인 공동체의 조화를 방해하는 이질체(유대인)의 침입으로 환원된다. 파시즘과 공산주의 간의 차이는 그래서 ‘형식적-존재론적’이다. 계급적대가 사회적 장에 내재해 있는 구성적 요소인 반면에, 인종의 경우에는 실정적으로 자연화된 요소이다.(사회의 유기적 통합은 낯선 신체에 의해 침범당한다) 그래서 파시즘은 적대를 은폐하고 실정적으로 대립된 항들의 갈등으로 전치한다. P394

 

스탈린의 집단 수용소의 계급으로서의 쿨라크를 제거하는 것과, 나치의 절멸 수용소 사이의 미세한 차이 역시 그 역사적 순간에 있어서 문명과 야만 사이의 차이이다. 나치즘은 볼세비즘의 반복이자 복제였다. 니체의 말로 그것은 근본적으로 반동적인 현상이었다.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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