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원자료 :: 인사원의 과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건축무한육면각체』연작은  이상문학의 전개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사실 [삼차각 설계도]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설명적이고 일반적입니다. 물론, 실험적 의도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만일, [삼차각 설계도]를 쓸 무렵의 이상을 눈 깊은 선생이 만났다면 호되게 꾸짖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상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뱉어내어 버려서 자칫하면 문학을 계속 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ㅎ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더러운 상말을 모두 뱉어버린 아이를 꾸짖는 아버지같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꾸짖는 것은 단지 그것이 나쁜 짓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아이가 모든 것을 한 번에 뱉어버려 아무 말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고, 영원회귀에 함축된 미묘한 질료를 위해 아무런 잔여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520)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모든 것을 뱉어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호된 꾸짖음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상은  [삼차각설계도]에서 일탈각의 성분과 그 방향을 질료로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상을 거느리면서도 추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게 됩니다.

[조감도]연작에서 [건축무한육면각체]까지에는 그 과정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만일 영원회귀가 심지어 우리들의 일관성을 희생시키고 어떤 월등한 일관성을 이용하면서 질들을 순수한 기호들의 상태로 끌어 올리고, 연장들 중에서는 오로지 원천적인 깊이와 조합되는 것만을 보존한다면, 이때는 훨씬 아름다운 질들, 훤씬 눈부신 색깔들, 훨씬 값진 보석들, 훨씬 진동적인 외연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520)

 

들뢰즈의 이 말은 물론 영원회귀를 사유하는 관점에서 벌어질 일에 관한 것이긴 합니다만

이상이 구상을 어떻게 넘어서고 두께의 구도를 만들어내려 했는가를 규명하는 단서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상은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무한육면각체’를 말 그대로 세우는 일련의 작업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무한육면각체’는 일종의 ‘긍정적 차이들로 이루어진 강도적 공간’ 이라고 말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건축 무한육면각체] 연작에서 분명해진 것은 연장과 질들이 비대칭적으로 조합되면서 조성되는 두께이고

이 두께를 관류하는 강도적 변이의 선들입니다.

 

 


AU MAGASIN DE NOUVEAUTES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의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 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 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XII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도어의내부의도어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파랑잉크가옆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적하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 가구를질구하는조화금련.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해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이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지에이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굿바이.

 

바깥은우중. 발광어류의군집이동.

 


위 작품은 [건축무한육면각체]연작 중 하나인 AU MAGASIN DE NOUVEAUTES입니다. 

제목을 굳이 해석하자면 신기한 상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 시는 미쓰꼬시 백화점을 묘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신형철 선생님은 그려낸 풍경이 사실 파리에 가까우니 아마도 상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시가 ‘무엇을 재현’하고 있는가라는 관점에서나 나올 법한 논란거리겠죠. 

이 시에서 그려진 장소가 실제로  어디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파리이건, 상해이건, 미쓰꼬시이건 그 장소적인 한정을 벗어나서 관철되고 있는 

어떤 힘의 흐름이지 않을까요? 

 

만일 힘의 문제를 니체의 사유를 따라서 관계의 문제로 보게 된다면 

그 힘은 강도적 차이의 궤적으로 묘사될 것입니다. 

저는 위에서 굵게 다시 쓴 시행들이 바로 그 강도적인 변이를 

이상 나름으로 그려내고 있는 추상의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ㅎ 

 

신 세계로서의  백화점 안팎의 풍물들은 (재밌게도 미쓰꼬시 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것은 오늘날 신세계백화점입니다)  

도형의 겹침과 벡터, 그리고 미분의 장 속에서 조합됩니다. 

말하자면 도형의 겹침과 중량의 선, 그리고 낙체 공식들은 

사물의 연장과 장소의 질적인 분화들을 강도적인 분배의 공간 안으로 

계속 빨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위 작품에서 1930년대의 동북아의 불안한 정세나 경성의 풍물, 또는 근대 소비 세계가 갖는 어두운 조짐만 

읽어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그 추상의 선으로 표현된  ‘어떤 월등한 일관성’(520)도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파리와 상해와 동경과 경성에서 반복되고 1930년대와 50년대 그리고 2017년의 

신세계백화점 월동세일에서도 반복되는 거대한 원환의 일관성.... 

향수와 비행선과 엘리베이터와 군화와 시계탑에서 반복되는 어떤 순수한 기호들... 

 

“소름끼치는 일이다”. 

 

우리는 이상이 특정한 시공간으로 환치되지 않는 어떤 하나의 ‘강도적인 공간’(520)을 창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질문들이 그것이 어디이고 , 언제이며, 바로 그 때와 장소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에 머물 필요는 없겠지요. ㅎ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세이자료집] 2019인사원_니체 :: 너희가 니체를 알겠지?! [1] oracle 2019.01.31 663
1025 벤야민 11강 후기 [1] 노을 2020.11.24 75
1024 벤야민의 <경험과 빈곤> 관련한 질문 [2] 노을 2020.11.23 139
1023 20201123 벤야민 발제_전반부 Olivia 2020.11.20 51
1022 블랑쇼 9강 질문입니다. 지수 2020.11.19 49
1021 블랑쇼 9강 후반부 발제 이시스 2020.11.18 46
1020 블랑쇼 9강 전반부 발제 [1] Olivia 2020.11.17 81
1019 발제ㅡ벤야민 file 앵오 2020.11.16 36
1018 블랑쇼8강 질문 이금주 2020.11.12 29
1017 블랑쇼 8강 요약발제 전인수 2020.11.12 54
1016 벤야민의 역사유물론_유대메시아주의 file 앵오 2020.11.09 33
1015 20201109 벤야문 발제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신학적 정치적 단편> file 윤성 2020.11.09 34
1014 블랑쇼 7강 질문 노을 2020.11.05 42
1013 블랑쇼-문학의 공간 7강. 지수지구 2020.11.05 64
1012 『블랑쇼 세미나 -7강 <문학의 공간 – pp.203~233〉, 릴케의 시집<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발제 최충희 2020.11.04 73
1011 폭력비판을 위하여(p.79-97) file 탁선경 2020.11.03 74
1010 블랑쇼6강 질문 안차애 2020.10.28 72
1009 블랑쇼 세미나 : 6강 『문학의 공간–릴케와 죽음의 요구』 요약 발제문 [1] 장은주 2020.10.27 147
1008 블랑쇼 5강 후기 김동현 2020.10.23 83
1007 독일 비애극의 원천_알레고리와 비애극(p.318-354) file 앵오 2020.10.23 30
1006 독일 비애극의 원천_알레고리와 비애극 전반부 발제문입니다. (pp.237~259). file 윤성 2020.10.19 3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