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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박소영입니다.

『폭풍의 언덕』비평 쪽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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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관음적 착취 실패담으로서 『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의 진정한 주인공은 억압된 것의 귀환을 허용하는 워더링 하이츠이다. 그런 만큼 런던 신사 록우드와 자칭 근동에서 거의 유일한 분별력의 소유자인 넬리의 서술은 『폭풍의 언덕』이 발산하는 강력한 정서를 지배하지 못한다. 이 둘은 소위 상식을 대변하는 화자로서 『폭풍의 언덕』을 이야기하는 입이다. 이 두 입은 이성과 논리, 그리고 사회적 규범 등의 좌표 위에서 언쇼와 린턴 가족사를 해설해 내고자 하지만, 이들의 상징계는 요크셔 어느 시골 워더링 하이츠의 광기를 말끔히 정련해내지 못한다. 억압되는—그럼으로써 공포에 관한 시동인(始動因)이 되는— 두 타자, 즉 여성과 변방의 불가해한 귀환은 몽환과 신비, 그리고 난폭성과 유혈의 심상으로 『폭풍의 언덕』을 휘감는다. 타자의 귀환은, “도덕을 넘어서는 도덕”(바타이유, 『문학과 악』, 25)의 불가해한 드넓은 세계가 표면 아래 들끓고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워더링 하이츠는 어떤 면에선 호손의 중간지대와도 닮아있다. 명징한 대명천지도 아니고 칠흑 같은 야음의 공간도 아니다. 적당한 어둠과 어슴푸레한 빛이 공존함으로써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혼재된 장소이다. 다시 말해, 근대와 전근대, 문명과 야만, 제국과 식민지, 사회학과 인류학이 뒤섞인 제 양상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인 것이다. 세간의 규정 체계가 완벽하게 포섭할 수 없는 곳이지만, 물질의 원초적 순수성만이 전부인 곳도 아니다. 길들일 수 없는 장소지만, 어떠한 영향력에도 변치 않는 무구한 장소도 아니다. 대처(大處)로 상징되는 제국의 가치관과 문화가 지속하여 침식해 들어와도 워더링 하이츠는 온전하게 식민화되지 않는다. 비제국의 빛깔과 냄새와 성정이 폐기되기는커녕 외부와 기이하게 뒤엉켜 예기치 못한 변이의 형태로 나아간다. 히스클리프는 계급을 지정 당하고 대타자를 내면화한 채 복수의 화신이 되지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직시하고 케시와 헤어턴을 그대로 놔둔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와의 접촉으로 분열된 캐서린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어느 쪽의 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기에 자멸하지만, 허깨비 같은 기표와 유령으로 록우드의 꿈에 출몰한다. 더욱이 죽고 없어도 그녀는 히스클리프를 삼켜버리는 강력한 실재 그 자체가 된다. 변방과 여성은 오염되거나 오인되거나 변형되거나 파괴되지만, 현세의 인과율에 의해 걸러지지 않는 잔여를 남긴다. 이 잔여는 억압되어 주변으로 내몰리나, 그렇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워더링 하이츠는 기이하게도 상징계의 그물망이 성긴 곳이다. 그리하여 질서에 무질서가, 도덕에 비도덕이, 인간에 비인간이 포개어진다. 느슨한 틈새로 귀환이 열린다.

지독한 사랑의 행로를 『폭풍의 언덕』은 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으로 하여금 직접 언술하게 하지 않을까. 록우드는 의아한 시선으로 주변을 탐색하는 도시 사람이다. 넬리는 모성애로 일부 포장된 사리 분별의 담지자이다. 록우드와 넬리의 서사 권력 하에서 언쇼가와 린턴가의 사연은 막장 연애사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라는 비인간의 이야기는 록우드와 넬리, 이 두 인간의 관음적 응시 아래 위치한다. 그러나 『폭풍의 언덕』은 록우드와 넬리에게 입은 부여하되 판결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폭풍의 언덕』은 폭력과 피와 무법을 포괄하고 제멋대로 터져 나올 것 같은 정념을 사그라뜨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추정컨대, 에밀리 브론테는 관음적 시선의 재단(裁斷)이 완전히 승리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타자를 완벽하게 전유할 수는 없다. 근대의 중심부 제국의 담론들이 워더링 하이츠에 보내는 관음적 시선은 억압된 것의 귀환을 소화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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