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1. 네가 노래한 사실을 잊는 법을. 그것은 사라진다.
진실로 노래하는 것은 다른 숨결이다.
무를 싸고도는 숨결. 신 안에서 부는 바람. 한 줄기 바람.
: 여기서 '사라진 노래' 와 '다른 숨결' 은 '도달할 수 없으나 지향해야 하는 시'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구절, "그대들을 생각하지 않는 숨결 속으로 들어가라" 이는 익숙한 시를 버리고, 낯선 시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말로,
자꾸 시와 시인의 관계로, 시작(詩作)의 문제로 읽히는데, 이렇게 봐도 될까요?
그렇다면, "그대들은 마음들의 시작처럼 보인다."의 구절에서 시작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2. 농부가 열심히 일하고 신경을 쓴다고 해도
씨앗이 여름으로 모습을 바꾸는 데는
충분치 못하다. 대지가 선사해야 한다.
: 이 구절에서 일부러 "선사해야" 한다는 구절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릴케가 이 구절을 통해서 '우연의 힘' 혹은 '신적인 힘'을 강조한 것 같은데, 여기서 농부가 시인이고, 씨앗이 시의 재료인 언어라면,
아무리 시인이 언어를 갈고 닦아도, 시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신적인 계시가 중요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상성의 힘이나 성실성의 힘이 없어지는 느낌도 듭니다.
개인적으로 '사물시'를 '일상시'(혹은 미시적인 세계가 담긴 우주적인 시)로 대체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물시는 일상시와 다른, 대체 불가한 고유한 영역인지, 고유한 권능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3. 오르페우스가 장미이니, 그의 변용은
모든 사물마다 깃들여 있다.
: 오르페우스가 시인이라면, 시인이 곧 장미이자, 사물이라는 것인데, 시인이 곧 사물이라면, 시는 무엇일지요?
<릴케와 죽음의 요구> 중에서
1. 죽음의 여러 유형들이 나오는데, 궁극적으로 말하고자하는/도달하고자 하는 죽음의 유형은 무엇인지요?
후반부에 말라르메와 릴케를 대조하는데, 릴케에게 죽음이란 또 다른 탄생을 위한 과정 혹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무로 보이기도 합니다.
말라르메가 죽음의 유예에 천착한다면, 릴케는 죽음을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법, 실존으로 수용하는 것 같기도 하는데,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을까요?
2. 217쪽에서 죽음과 바깥의 연결고리가 사물이라면, 사물은 무엇인지요?
릴케의 시에 언급된 사물인지, 블랑쇼가 별도로 규정한 사물인지, 둘 사이의 구별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급하게 수업 직전에 질문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