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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철학 4강 발제 (1)

노을 2021.10.06 21:28 조회 수 : 49

[예술과 철학, 접목의 상상력] (제4강)

제4강 수수께끼 : 예술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

「예술, 사회, 미학」 (T.W. 아도르노, 『미학이론』, 홍승용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84.)

예술의 자명성 상실

“예술에 관한 한 이제는 아무것도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예술의 자율성은 이차의 무반성적 성격, 미학적 목적에 대한 불확실성과 결합한다.”

“예술은 경험 세계를 거부함으로써 경험 세계의 우월한 힘을 인준하게 된다.”

 

Q: 아도르노는 예술의 자명성 상실을 안타까워한 것인가? 수긍한 것인가?

 

근원의 문제

예술의 본질을 예술의 근원에서 연역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초의 예술 작품이 가장 뛰어나고 순수하다는 생각은 낭만주의 말기의 산물이다. 오히려 초기의 예술적인 형상물들은 불투명하고 불순한 것이었다는 주장도 그에 못지않게 타당해 보인다. “진리는 단지 형성된 것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Q: 여기서 아도르노는 오리지널, 진품, 진리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인가?

 

진리 내용과 작품의 생명

예술이 사멸할 수도 있다는 헤겔의 예견은 예술이 형성된 존재라는 사실에도 부합한다. 예술 자체는 소멸할지라도 사상 내용은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 사라질 수 있는 이유는 타율적이고 종속적인 것으로서만 아니라, 분업적이고 분열적인 정신이 사회적으로 정립되어, 자율성이 형성된 단계에서조차도 예술이 예술적이면서도 예술에 이질적이고 대립적이기도 하다는 데에 있다. 예술 자체의 개념에는 이 개념을 지양하는 요인이 섞여 있다.

 

Q : 예술 작품은 겉으로는 통일성을 지향하지만, 그 안에는 이질성이 들어있다는 말인가?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 작품은 창문 없는 단자로서 그처럼 작품 자체가 아닌 어떤 것을 상상한다. 작품의 내재적인 역사성이 외부 세계의 역사성과 동일한 본질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모방하지 않고도 자체로서 그와 유사해진다. 미학적 생산 관계사회적인 생산 관계의 침전물 혹은 복사물이다. 예술이 자율적이면서도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는 이중적 성격은 자율성의 영역에도 부단히 나타난다. 작품들은 외부로부터 그 작품에 제시되는 문제들에 대해 응답하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Q : 창문 없는 단자란?

Q : 예술 작품은 어디까지나/아무리 자율성을 주장해도 현실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가?

Q : 예술 작품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한다. 예술은 현실 세계의 고통을 반영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도르노는 현실 참여적인 예술론자인가?

Q : 대중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아도르노는 예술만의 숭고미를 주장했던 것인가? 아니면 대중예술의 무비판적인 경향만을 비판했던 것인가?

Q :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들 또한 결국은 현실 세계를 전제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신분석학적 예술 이론 비판

예술 영역의 본질 구성은 상상이라는 인간 내적 영역의 본질 구성에 상응한다. 정신분석학적 이론에서 예술 작품은 본질적으로 창작자의 무의식이 투사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전기적인 연구 방법에 의해 작가들을 신경질환자로 비난한다는 점에서 편협하다.

예술이 정신분석학적 기반을 가진다면 예술에서 환상적인 기반이 막대한 힘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예술에서는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는 소망도 작용한다. 이러한 요인이 모두 전체적인 변증법을 유발한다. (예술은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이며 사회로부터 연역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술 작품이 단순히 무의식적인 것을 표현하는 주관적 언어일 뿐이라는 견해는 이와 같은 변증법에 이르지 못한다.

: 예술 + 사회 = 더 나은 세계

 

칸트와 프로이트의 예술 이론

칸트는 미적인 성질을 예술 감상자에 대한 작품의 영향에서 찾는다. 칸트의 주관주의는 객관성을 지키려는 객관적 의도를 갖는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무관심적 만족이라는 칸트의 강령은 미적 현상을 설명하기에 빈약하다. 그것은 미적 현상을 숭고한 자연 대상들이나 형식미에 한정하고 있는데, 이 형식미는 분리된 상태에서 볼 때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Q : ‘무관심적 만족’이란?

 

칸트는 비록 감각적 직관을 중시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욕구하는 행위와 미적인 반응을 구분함으로써 예술 작품의 정신적 본질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예술 작품은 감각적 충동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선험적 주체를 구성하는 칸트와 경험적인 심리적 주체를 근거로 하는 프로이트는 대립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주관적인 방향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들은 감상자와 창작자의 관계 속에서만 예술의 문제를 다룬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서 ‘관심’과 이에 대한 ‘거부’ 사이의 관계다. 예술 작품에 대한 명상적 태도는 직접적 실천을 거부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동시에 기존 상황에 동조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실천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술은 ‘더 나은 상태의 실천’을 대변할 뿐 아니라, 기존 상황을 위한 자체 보존의 지배에 그치는 실천을 비판한다. 예술은 ‘생산을 위한 생산의 허위’를 비판하며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의 실천을 추구한다.

 

Q : 칸트가 무관심성을 강조한다면, 아도르노는 관심과 욕구를 강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Q : ‘생산을 위한 생산의 허위’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허위’로도 읽어 볼 수 있을까요?

Q : ‘더 나은 상태의 실천’은 앞서 말한, 예술과 사회가 변증법적으로 얽힌 “더 나은 세계”와 일맥상통하는 것인가요?

 

행복에의 약속(promesse du bonheur)이라는 말은 이제까지의 실천이 행복을 왜곡시켜 왔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행복이 실천을 통해서 이뤄지지만, 이를 넘어선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작품 속의 부정성이 지니는 힘실천과 행복 사이에 놓인 심연의 깊이를 나타낸다.

 

Q: 행복에의 약속(promesse du bonheur)이란 무엇인가?

Q: 부정성이 지니는 힘은 ‘반성적 이성’ 혹은 ‘부정의 변증법’인가?

 

가령 카프카는 욕구 능력을 일깨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변신>, <유형지에서>에서 볼 수 있는 불안, 전율적인 충격, 구토증 등은 거부 반응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무관심성보다 오히려 욕구와 관계가 있다. (예술은 반응 방식으로 파악될 수 있는 한에서만 그 존재 근거를 갖는다.)

 

예술적 체험은 향락적인 미적 취미를 버릴 때에만 자율적이다. 예술적 체험에 이르는 과정은 무관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무관심성은 변형된 상태에서 내재적으로 관심을 만들어낸다. 거짓된 세계에서는 모든 쾌락이 거짓이다.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술에는 여전히 욕구가 남아있다.

 

Q :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현재의/거짓된 행복을 위해서 진정한 행복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로 읽을 수 있을까요?

 

예술의 향유

칸트가 말하는 무관심성에는 향유라는 개념이 위장되어 있다. 즐기는 자는 예술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향유가 없다면, 예술 작품은 왜 존재하는가?

예술 작품에서 감상자를 매료하는 것은 작품의 진리다. 특히 카프카의 작품에서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술 작품은 향락 수단이 아니다. 예술에 대한 주체의 관계는 주체가 작품을 동화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감상자가 작품 속에서 소멸되는 관계다.

 

Q: 카프카가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판대상으로서 진리가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Q: 향락 수단이 아니라는 점은 카프카의 작품을 읽으면서 동화보다는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일까요?

 

미학적 쾌락주의와 인식의 행복

미학적 쾌락주의가 지니는 진리의 계기는 예술에서 수단이 순수하게 목적과 동화되지 않는다는 데에 기반을 둔다.

 

Q: 미학적 쾌락주의란 무엇인가? → 예술이 주는 향락? 향유? “감각적 만족을 주는 것”

 

현대 예술의 징표인 불협화음은 감각적인 매력을 고통으로 변형시킨 상태로 받아들인다. 불협화음은 쾌락의 전리품이 된다. 쾌락은 경험 세계로부터 벗어난 어떤 상태에 접근한다.

예술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예술이 현실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예술에 대한 인식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보다는 예술에 대해 비본질적이다. 그러므로 예술 향유의 개념은 사라져야 한다. 헤겔이 말한 바와 같이 미적인 대상에 대한 감정에는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미적인 객체는 사람들이 그것의 진리와 비진리를 인식하길 바란다.

예술 작품에서 행복은 작품을 통해 매개되는 견디어낸다는 감정일 것이다.

Q: 예술에 대한 올바른 인식만이 행복을 줄 수 있다. 행복은 인고의 감정에서 나온다. 결국, 아도르노가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말하는 것은,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다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예술의 목적은 이에 있지 않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술의 기능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고, 이 행복은 향유가 아닌 사유에서, 고통에의 사유에서 자라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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