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의 생물학
2021-05-27 도희
문제설정
철학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이 활동은 생물학의 방식과 매우 닮아있다. 왜냐하면 전통적 생물학이야말로 분류를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인 학문이며(그 중에서도 생물분류학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의 계통과 종속을 특정 기준에 따라 나누어 정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종합이란 분류된 것들을 뜯어내어 새로운 사유를 창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철학은 자신만의 생물학을 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는 박물학자인 조프루아 생틸레르(1772~1844)를 자주 인용하는데, 생틸레르는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인 구성의 단위(unity of composition)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분화된 신체의 기관들 이전에,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생틸레르는 그것을 “해부학적 요소들”이라고 했으나 그 자리를 박테리아, 단백질이 대신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에 주목하면 어떠한 종이라도 신체적 구성은 단일한 것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공통적인 구성의 단위의 배치가 달라진다면 어떠한 종이라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들뢰즈나 생틸레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분류의 세계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학의 격자를 교란하는 존재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분류학을 횡단하는 ‘교란종’으로서 푸른민달팽이, 알몸두더지, 멍게를 소개할 것이다. 분류체계가 주는 선험적-생물학적, 형태학적, 진화학적, 생태학적-인 규정을 이탈하는 존재자들의 존재를 가시화함으로써 그것의 임의성을 보이고자 한다. 나아가 모든 생물은 동맹체로서 동맹의 양상에 따라 다른 종이 된다는 것, 이러한 횡단적 동맹이 그리는 선들이 던지는 물음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목차
Ⅰ 서론
Ⅱ 분류학, 이탈하는 존재자들
Ⅲ 횡단적 동맹의 선들이 던지는 물음들
Ⅳ 결론
참고자료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이진경, <노마디즘>
이찬웅, <들뢰즈, 괴물의 사유>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엘고르 옌센,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이진경,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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