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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이전/이후] 3강 쪽글. 민혁

minhk 2019.03.26 16:31 조회 수 : 62

6. 흄

경험주의의 의미 129

* 흄의 경험주의는 일종의 미완의 공상 과학의 영역이다.

- 우리는 흄에게서 창조자에 의해 제시된 허구적이고 기묘한 어떤 낯선 세계의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세계는 이미 우리의 세계이며, 창조자란 바로 우리 자신이다.

* 이론이 이제는 실험이 되는 것이다.

- 흄에게 과학은 일종의 신념에 불과하다. 개연성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 과학 또는 이론은 실험이다. 즉 그것은 실천이다.

* 관념 연합론

- 여기에서 이론을 본다거나 합리주의를 본다면, 그것은 관념 연합론을 오해하는 것이다.

- "인간 본성의 원리들에 의한 것", "습관과 같은 것", 개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 관념들의 연합의 문제가 자신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질문들(도성을 차지하기, 바다의 소유, 토지와 화폭) 속에서이다.

- 연합의 이론이라 불리는 것을 이처럼 관계들의 궤변 속에서, 법의 실천 속에서, 정치의 실천 속에서, 경제의 실천 속에서 자신의 종착지와 진리를 발견한다.

- 그리고 결과적으로 철학적 반성의 본성을 완전히 뒤바꾸어놓게 된다.

 

관계의 본성 132

* 관계는 관계 자신의 항들에 대해서 외적이다.

- 합리주의에 대해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피에르는 폴보다 작다.

- 인식과 관념의 기원을 감각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에 대한 정신에서 찾을 때 관계의 외성은 가려져왔다.

- 차이는 이제 1. 관념과 인상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2. 두 종류의 인상 또는 관념 사이에, 즉 항들에 대한 인상 또는 관념과 / 관계에 대한 인상 또는 관념 사이에 있게 된다.

- 비로소 참된 경험주의적 세계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외성의 세계!

- 원자론(정신의 물리학)과 관념 연합론(관계의 논리학)

 

인간의 본성 135

*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원리들

- 인접성, 유사성, 인과성. 소위 연합의 원리들.

- 인간의 본성이 의미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 속에서 보편적인 것 또는 항구적인 것이란 결코 항으로서의 이러저러한 관념이 아니다. 보편적인 것 또는 항구적인 것은 오로지 하나의 개별 관념에서 또 다른 하나의 개별 관념으로 이동하는 방식들일 수만 있다.

- 여기에서 흄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원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원인의 결과라 할 관계의 작용에 관한 문제이며 또 이 작용의 실천 조건에 관한 문제이다.

* 인과관계

- 인과관계가 특이한 이유는 하나의 항에서 단순하게 현실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관념으로 이동하는 것에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는 과거에 결코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관념으로, 더 나아가 경험 속에서는 결코 주어지지 않을 어떤 것에 대한 관념으로 우리를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마들렌으로부터 콩브레가 떠오르는)

- 인과성이란 달리 말해서 나로 하여금 주어진 것을 넘어서게 하는, 주어진 것 또는 주어질 수 있는 것 이상을 말하게 하는, 간단히 말해 추론하고 믿게 하는, 기다리게 하는, ……을 예상하게 하는 그런 관계를 가리킨다.

- a를 뒤따르는 b. 상상은 습관을 구성한다. 오성은 계산을 하고 확신을 잡아낸다.

 

허구 137

* 연합의 원리들과 상상 간의 투쟁

- 연합의 원리들이 착란을 제어하거나 상상의 허구들을 제어할 그 어떤 본성을 정신에게 부과하면서 정신을 고정시키는 것이 사실이라면, 역으로 상상은 자신의 허구들과 환상들을 이동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이 허구들과 환상들에게 그들 자신의 힘으로는 소유하지 못할 일종의 담보를 부여하기 위하여 연합의 원리들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 환상은 우연한 것가 본질적인 것을 혼동한다. 실재적으로 관찰된 유사한 경우들의 반복을 그 반복의 결과를 흉내 낸 단순한 언어적인 반복으로 대체하기 위하여 언어의 속성을 이용하거나 한다.

- 이럼으로써 허구적인 인과의 연쇄들, 불법적인 규칙들, 확신의 환영들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 (연합의 원리들은 착란, 상상의 허구를 제어할 본성을 정신에 부과하면서 정신을 고정시킨다. 역으로 상상은 연합의 원리들을 이용하여 일종의 담보를 부여한다.)

- 과학의 길 안에서는 경험을 넘어서지 않지만, 착란에서는 우리는 경험을 넘어선다.

- 환상은 연합의 원리에게 불법적인 확장을 제공한다.

* 흄은 철학 속에서 두 번째 자리 옮김을 행한다.

- 오류의 개념을 착란 또는 환각의 개념으로 대체한다.

- 이는 틀린 확신이 아니라 불법적인 확신, 기능들의 불법적인 실행, 관계들의 불법적인 작용이다.

-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착란이다.

* 환각의 문제가 특별히 심각해지는 경우

- 환각 자체가 인간 본성의 일부를 이룰 때. 불법적인 실행이나 확신이 교정될 수 없으며 합법적인 확신들과 분리가 안 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조직화에 필수적일 때.

- 인간 본성의 원리들의 환상적인 이용이 하나의 원리가 되어버린다.

* 흄은 불법적인 확신을 더 밀고 나가야 했다.

- 흄의 해학은, 인간 본성의 원리들의 관점에 비추어볼 때, 확신은 불법적이면 불법적일수록 오히려 인간 본성의 더욱더 많은 부분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 고대의 회의주의(아이러니), 근대적 회의주의(해학)

- 감각적이 다양한 외양과 의미의 오류 위에 근거하는 고대의 회의주의.

- 근대의 회의주의. 확신을 굳건히 하는 일(실증주의). 불법적인 확신을 고발하는 일(개연주의, 개연성의 계산). 세계와 자아와 신에 대한 불법적인 확신이 모든 합법적인 확신의 지평으로서 드러나거나 또는 확신의 가장 기초가 되는 정도로서 드러나는 일.

 

상상 141

* 연합의 원리들, 열중의 원리들

- 관계가 비롯되는 연합의 원리들만이 아니라 "성향penchants"이 비롯되는 열중의 원리들 또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것, 정신에게 본성 또는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 열중의 근본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편파성이다.

- 흄이 인간이란 본성상 이기적이 아니라 편파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문제의 실천적인 정립에 있어서 그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보아야 한다.

- 사회는 이제 더 이상 법률적이고 계약적인 제한의 체계로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발명으로서 고려되게 된다. 어떻게 인위적인 수단들을 발명할 것인가, 어떻게 열중으로 하여금 그의 편파성을 넘어서도록 강제하는 체제와 도덕적, 법률적, 정치적 감정 등의 많은 감정을 형성하는 체제를 창조할 것인가?

- 인간의 문제는 더 이상 인식 속에서 보았던 허구와 인간 본성 간의 복잡한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즉 인간의 문제는 이제 인간 본성과 인위적인 수단 사이의 관계로 넘어가는 것이다(발명하는 종으로서의 인간).

 

열중 144

* 인식과 열중 비교

- 인식 속에서: 인간 본성의 원리들은 확장, 넘어섬의 규칙을 세운다. 반면 환상은 규칙을 이용하여 확신을 흉내 낸 것들을 이동시킨다.

- 열중 속에서: 문제가 다르게 제기된다. 인간 본성의 편파성을 넘어서는 인위적인 확장을 어떻게 발명할 수 있는가?

* 상상의 역할

- 상상은 열중을 반성하면서 열중을 풀어놓아 자유롭게 하고, 열중을 무한히 잡아 늘이며, 열중을 그의 자연적인 제한 너머로 던져버린다.

- 열중은 상상이 행하는 거의 무한한 놀이의 기쁨 속에서 새로운 본성을 취하며 새로운 형태의 확신을 동반한다.

* 열중이 구성하는 문화적 세계에서 나타나는 두 결함

- 확장된 열중이 현실적인 열중보다는 덜 생기적이라는 결함.

- 확장된 열중은 자신의 약화된 이미지를 모든 규칙을 벗어나 모든 의미로 투사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그 자체가 완전히 비결정적이라는 결함.

- 덜 생기적이라는 결함은 권력, 관습, 양식이라는 심급에서 해결점을 발견한다. 이런 것들은 열중에게 생기와 보충이 되는 확신을 부여한다. 흄은 권력과 정부의 문제를 대표성이 아닌 신뢰성으로 표현한다.

- 비결정적이라는 결함은 관념 연합론을 통해 해결된다. 열중의 반성은 날것 그대로의 상상 속에서의 반성이 아니라, 연합의 원리들에 의해서 이미 고정되거나 순화된 그런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반성이다.

* 관계의 변화에 대한 연구, 즉 관계의 계산

- 유사성, 인접성, 인과성, 말하자면 인식과 계산의 대상인 이 모든 관계들.

- 이 모든 관계가 상상 속에서 반성되는 감정들을 결정하기 위한 일반 규칙들을 우리에게 이미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 산토끼와 사과. 버려진 도성을 차지하기.

- 침 발라 놓은 사람이 임자(산토끼).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사과).

- 연합의 원리들은 이처럼 문화 세계와 권리 세계의 세부적인 내용을 결정짓는 관계의 궤변 속에서 그들의 참된 의미를 발견한다.

 

대중적이고 과학적인 철학 147

* 흄의 철학

- 그의 철학은 대중적이고 과학적인 철학, 곧 대중 철학이다.

- 그가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명석함은 관념의 명석함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와 작용의 명석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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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

 

* 니체의 많은 것이 숨겨지고 가려져왔던 이유들. 219

- 잘못된 독해, 자의적인 뜯어 맞춤이라는 해악: 예를 들어 『권력의지』.

- 병리적인 이유들: 광기에 의한 중단. 영원회귀와 권력의지는 니체 자신에 의해서는 거의 소개된 바 없다는 점.

-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방법론적인 것: 하나의 의미가 아닌 의미의 복합체. 니체는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해석 방법을 발명하였다.

 

* 니체적 가치의 개념. (첫 번째 주제) 224

- 보프레: 니체의 가치 개념은 플라톤-데카르트적인 형이상학적 바탕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 니체적 가치의 개념에 따라 참과 거짓의 배후에 존재하는 훨씬 더 깊은 심금을 발견할 수 있다. 최후의 심급에는 그 자체가 돌변의 역능, 가면들의 모양을 결정하는 역능, 해석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역능인 권력의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 바티모: 기존의 모든 가치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가치의 창조. 즉 신화와 기만으로부터의 해방과 가치의 전환. - "모든 동굴의 배후에 있는 동굴", "모든 바탕 밑의 심연"

 

* 권력의지 (두 번째 주제) 225

- 권력의지는 시원적인 깊이, 우월한 깊이에 해당한다.

- 비로 Birault: 권력의지는 살기를 원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권력의지는 그 자신이 곧 생명이다). 권력의지는 지배의 욕구와도 관계가 없다(권력의지는 그 자신이 곧 지배자이다).

 

* 권력의지는 권력을 원하는 의지가 아니다. 225

- 권력의지는 기존의 가치, 명예, 부, 사회적인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노예들, 약자들이 추구하는 권력이 아니다.

 

* 권력의지란 226

- 주는 것이요 창조하는 것이다. 권력의지의 진정한 이름은 주기를 실행하는 덕인 것이다. 가면은 가장 훌륭한 주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가면은 우리에게 유연한 힘으로서의 권력의지, 예술의 가장 높은 능력으로서의 권력의지의 증거를 제공한다.

- 권력은 이처럼 의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 속에서 원하는 자, 곧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 니체의 원근법주의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 227

- 위에서 아래로 볼 경우, 권력의지는 곧 긍정, 차이의 긍정, 놀이, 기쁨, 주기, 거리의 창조를 가리킨다.

- 아래에서 위로 볼 겨우에는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혀서 긍정은 부정 속에서 반성되고 차이는 대립 속에서 반성된다.

 

* 긍정과 부정. (세 번째 주제) 227

- 당나귀의 긍정. 그는 단지 짐을 진다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 당나귀는 기독교적 가치의 무게를 졌다가, 그후 신이 죽었을 때에는 인문학적 가치, 즉 인간적인-너무나도 인간적인 가치의 무게를 졌으며, 마침내 더 이상 그 어떤 가치도 남지 않게 되자 당나귀는 이제 실재의 무게를 진다. - 우리는 여기에서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의 세 단계를 본다. 신과 관련된 허무주의, 인간과 관련된 허무주의, 인간의 최후와 관련된 허무주의.

- 당나귀의 "예"는 허무주의의 모든 결과를 대상으로 삼아 하는 "예"이다.

- 차라투스트라의 긍정함이란 당나귀의 그것과 반대로 가볍게 하는 것, 살아 있는 것의 짐을 덜어주는 것, 춤추는 것, 창조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에게 부정은 마치 그것이 긍정의 즐거움을 증가시켜주는 역할을 하듯이 그렇게 긍정에 봉사하는 하나의 결과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의 아니오가 공격성의 아니오라면 당나구의 아니오는 원한의 아니오이다. 230

 

* 영원회귀 수준에서 밝히는 디오니소스적인 긍정. (네 번째 주제) 230

- 많은 질문들: 순환과 순간, 계속과 되풀이, 생성의 계속성과 탈환, 비탄적 사유와 회복의 사유.

- 고대인들의 영원회귀: "질적인" 영원회귀, "외연적인" 영원회귀. 물리학적인 해석과 천문학적인 해석.

- 니체의 영원회귀는 외연적인 양이나 지엽적인 운동이 아니요 또 물리학적인 질도 아닌 그런 순수 강도의 영역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 한번과 천 번 사이에는 지적이 가능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한 번과 무한 번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이란 결국 1을 "n제곱한" 것 또는 1에 대응하는 전개된 강도와 같은 것이다.

- 존재 속에서의 강도의 차이로 이해되어야 할 이 같은 더함과 덜함, 수준의 차이로 이해되어야 할 이 같은 존재가 바로 니체에게 있어서의 근본적인 문제의 대상인 것이다.

- 니체에게 권력의지란 무엇을 원하든 상관없이 원하는 것을 최후의 역능에 이르기까지 또는 n제곱에 이르기까지 끌어 올리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상의 형식(강도의 형식)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 클로소프스키가 보여준 강렬한 변동의 세계: 이 세계 속에서는 동일성이 자기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만다. 변동의 세계는 강도의 차이 속에서 세워지는 기호들의 세계이다. 또 이렇게 세워진 기호들이 최초의 차이 속에 포함된 다른 차이들을 겨냥하고 이 다른 차이들을 거쳐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한에 있어서 그 기호들 자체가 곧 "의미들"이 되기 때문에 이 변동의 세계는 또한 의미들의 세계인 것이다.

- 강도의 원리로서의 권력의지; 신이 죽고 그에 따라 자아의 동일성이 파괴되면서부터 비로소 서로 작용하며 서로 침투하는 변동 또는 강도의 원리로서의 권력의지가 유래한다.

- 강도의 원리로서의 영원회귀; 자기의 모든 변화를 거쳐서 되돌아오고 다시 지나가는 변동 또는 강도의 원리로서의 영원회귀가 유래한게 된다.

- 영원회귀의 세계; 강도로 이루어진 세계, 차이의 세계이다. 일자나 동일자를 가정하는 세계가 아니다. 반대로 동일한 자아의 폐허 위에서, 유일신의 무덤 위에서 건설되는 세계이다. 영원회귀는 "되돌아옴으로써"만 존재하는 세계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합치요, 반복을 통해서만 "같은 것"을 지니는 세계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동일성이다.

- 니체의 텍스틀 속에서 영원회귀는 단지 두려움 또는 도취감과 더불어 예고되고 예측될 뿐이다. 「비전과 수수께끼에 관하여」에서 영원회귀에 대해 말한 내용은 차라투스트라를 병들게 한다. 「회복기의 환자」에서 뱀과 독수리의 영원회귀는 상투적이었으며, 난쟁이의 영원회귀는 너무 단순화된 것이었다.

- 극화: 의미와 관련한 극화("누가 그 의미를 부여하는가?"). 선험적인 영역과 관련한 극화(잠재적인 것의 현행화).

 

* 영원회귀는 무엇이 아닌가. 237

- 영원회귀는 순환이 아니다.

- 일자, 동일자, 동등한 것, 균형을 가정하지 않는다

- 전체의 회귀가 아니다. 동일자의 회귀가 아니다. 동일자로의 회귀가 아니다.

- 따라서 영원회귀는 고대의 [순환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정된 사유와는 전혀 다르다.

 

- 물리적인 변형으로서의 영원회귀가 아니다

- 천문학적 운동으로서의 영원회귀가 아니다.

- 동물의 자연적인 확신으로 체험되는 영원회귀(난쟁이, 차라투스트라의 동물들)가 아니다.

 

- 순환적인 가정에 대립한다.

- 균형의 상태를 염두에 둔 모든 가정을 배제한다.

- 영원회귀는 결코 전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전형적으로 선별적이기 때문이다.

 

- 병든 차라투스트라, 회복기의 차라투스트라.

- 차라투스트라의 불쾌감과 공포 / 그리고 회복

- 영원회귀 자체에 대한 이해 속에 일어난 "드라마틱한" 진보

- 영원회귀. 순환. 모든 것을 되돌아오게 하는. 작은 인간도 되돌아 오는. / 그러나 이런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는.

- 그는 마침내 영원회귀 속에서 동등하지 않은 것과 선별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 실제로 영원회귀의 진정한 이유는 동등하지 않은 것, 다른 것이다.

- 왜냐하면 "지금 이것"이 되돌아오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동등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 사유 속에서의 영원회귀의 선별 239

- 모든 것 속에서 영원회귀가 하는 기능이란 이처럼 중간의 형식들로부터 최상의 형식들을 분리해내는 일, 온화한 지역들로부터 몹시 덥거나 몹시 추운 지역들을 분리해내는 일, 절제된 상태들로부터 극단적인 역능들을 분리해내는 일이다. (형식, 시련, 역능) 241

 

* 존재 속에서의 영원회귀의 선별 241

- 존재가 선별적이 되는 것. 존재 그 자체가 선별이 되는 것.

- 영원회귀는 시련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버린다.

- 사유 속에서의 어정쩡한 의도들. 존재 속에서의 어정쩡한 역능들. 모두 제게해버리는 것.

- 영원회귀를 부정하는 그 어떤 것도 되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242

 

* 극단적인 형식들과 중간의 형식들 사이에 본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243

- 역사적 상대주의에 근거한 원근법적인 것 속에서 해석할 수 없다.

- "통용되고 있는 가치들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과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는 것" 사이에는 본성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본성의 차이가 영원회귀의 차이 자체이며, 영원회귀의 본질을 구성하는 바로 그 차이이다. "새로운" 가치들이란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상의 형식들과 다른 것이 아니다.

 

* 두 가치 243

- 이미 세워진 기존의 상태로 태어나는 가치들, 인정의 질서를 추구함으로써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가치들.

-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반시대적이며 그들의 창조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인 가치들, 사회 자체 속에서 또 다른 본성의 아니키적 역능들을 추구하는 가치들 또한 존재한다. -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만이 역사를 넘어서 가치들이자 역사-상부적이 가치들이며, 혼돈을 증명하고 창조적인 무질서를 증명한다.

 

* 역사-상부적인 바탕 속에서 만나는 예술가들, 사상가들 (다섯 번째 주제) 244

- 그는 철학 자체 속에 연극을 도입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철학을 변형시키는 표현의 새로운 수단들이 연극과 더불어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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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리아드네의 비밀

 

* 숭고한 인간(테세우스), 우월한 인간 247

- 숭고한 인간, 우월한 인간의 속성들; 그의 신중한 정신, 그의 육중함, 짐을 나르는 그의 취향, 대지에 대한 경멸, 웃고 노는 일에 있어서의 그의 무능력함, 그가 실행하는 복수의 시도 등.

- 우월한 인간: 248

- 우월한 인간의 동물은 황소가 아니다. 당나귀와 낙타이다.

 

* 우월한 인간 249

- 힘의 작용과 반작용. 권력의지의 긍정과 부정.

- 우월한 인간의 긍정은 부정과 반작용 간의, 부정적인 의지와 반응적인 힘 간의, 허무주의와 허위의식 또는 허무주의와 원한 간의 극단적인 결합에 불과하다.

- 우월한 인간이 내세우는 인식은 도덕성을 달리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

- 도덕은 금욕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이상을 달리 가장한 것이다.

- 금욕주의적 이상, 도덕적 이상, 인식의 이상들은 똑같은 시도가 추구되어왔다. 황소를 죽이는 시도, 즉 삶을 부정하고, 삶을 무게로 짓누르며, 삶을 그의 반응적인 힘에로 환원시켜버리는 시도말이다.

- 과거에는 신이 인간에게 멍에를 씌웠다면, 이제 인간은 영웅적인 가치의 이름으로, 인간의 가치의 이름으로 혼자서 스스로에게 멍에를 씌워버린다.

 

*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와 함께할 때 250

- 테세우스는 부정의 능력이며 부정의 정신이다.

- 아리아드는 이때 반응적인 영혼 또는 원한의 힘이다. 아리아드네는 오빠인 황소에 대해 원한을 품은 누이이다. 아리아드네는 미로 속의 실, 즉 도덕성의 실을 쥐고 있다. 이때의 아리아드네는 거미요 독거미인 셈이다.

- 니체는 호소한다. "이 실에 목을 매시오!"라고.

 

* 테세우스로부터 버림받은 아리아드네 251

- 아리아드네가 죽기를 원하는 순간은 그 어떤 이중의 변환을 예고하는 그런 근본적인 순간("자정")이기도 하다.

 

* 아리아드네 신화는 어떻게 허무주의의 이 같은 변환을 표현해주는가? 252

- 테세우스로부터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디오니소스가 접근해옴을 느낀다.

- 디오니소스-황소는 다수의 순수 긍정이자 참된 긍정이요 긍정적인 의지이다.

-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로부터 버림을 받아야만 했다. 오직 이때만이 아리아드네는 꿈속에서 초-영웅이 자신에게로 가까이 접근해옴을 보게 된다. 이것이 영혼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 디오니소스는 왜 아리아드네를 필요로 했는가? 253

- 긍정 그 자체가 긍정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제2의 긍정이 요구된다.

- 또는 긍정은 긍정 그 자신을 배가할 수 있도록 그 스스로가 둘로 나누어져야만 한다.

- 니체의 두 긍정; "존재의 영원한 긍정이여, 나는 영원히 그대의 긍정이라오"

- (실체와 속성이 연상됨)

- 디오니소스가 존재의 긍정. 아리아드네는 이 긍정에 대한 긍정, 제2의 긍정, 적극적인 생성.

- 아리아드네의 상징은 그 모든 의미가 바뀌어진다.

- 디오니소스는 긍정의 신. 아리아드네는 긍정 그 자체의 긍정.

- 디오니소스와 같은 귀를 가져야 하고, 디오니소스의 귀에 응답 또한 해야 한다.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디오니소스의 긍정(예), 아리아드네의 긍정의 긍정(예에 응답하는 예)

- 둘로 나누어진 이 긍정은 디오니소스에게 배가하는 긍정으로서 되돌아온다.

- 영원회귀는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간의 결합의 산물이다.

- 영원회귀의 사유는 위안을 주는 것이면서, 선별적인 것이다.

- 영원회귀는 변환을 동반한다. 영원회귀는 이중 긍정의 산물이다. 이중 긍정은 스스로 긍정하는 것을 되돌아오게 하고 오로지 적극적인 것만 생성되도록 한다.

- 반응적인 힘, 부정의 의지는 선별하는 영원회귀에 의해서 제거된다.

- 초인은 귀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 아리아드네와 황소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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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목적 사유

 

* 이면 읽기의 권리 droit au contresens 258

- 젊은 음악가들, 젊은 화가들, 젊은 영화 예술인들이 니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그것은 곧 니체가 그 자신을 위해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그의 독자들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어떤 이면 읽기의 권리를 선언하였다는 사실이다.

 

* 재코드화의 위험 260

- 맑스주의에 있어서의 국가에 의한 재코드화와 프로이트주의에 있어서의 가정에 의한 재코드화의 위험이 있다.

- 니체의 작업은 결코 재코드화에 있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코드를 넘어서, 스스로를 코드화하지 않으며 또 코드화하지 않을 어떤 것을 작용토록 하는 일, 이 어떤 것으로 하여금 새로운 신체 위에서 작용토록 하는 일, 그리고 이 어떤 것이 그 위에서 작용하고 흐를 수 있는 신체, 즉 우리 자신의 신체, 대지의 신체, 쓰여진 글의 신체……가 될 그런 신체를 발명하는 일, 바로 이것이 니체의 관심사요 문제인 것이다.

 

* 코드화의 주요 도구들. 법, 계약, 제도. 261

- 책의 예: - 법; 법전들 또는 신성한 책들. - 계약; 나는 너에게 지불하고, 그 대가로 너는 나에게 읽을거리를 준다. - 제도; 정치적인 책 또는 혁명적인 책. 이러한 책은 현재의 제도들 또는 미래의 제도들에 관한 책으로 나타난다.

- 광기의 예: - 법의 형식들; 병원 또는 정신병원이라는 형식들. 억압적인 코드화이자 감금이다. - 계약; 계약 할 수 없는 자들. "무능력한"자들. 특별한 계약. 최면 상태의 포기. 부르주아 계약 관계가 정신병학 속에 들어온 것. - 제도; 제도적인 시도들.

 

* 니체가 추구하는 절대적인 의미의 탈코드화 263

- 법, 계약, 제도의 코드에 휘둘리지 않고, 흐르게 할 수 있는 사유의 노력은 도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 멜라니 클라인에게 등장하는 계약; 너의 체험된 상태를 나에게 주면, 나는 너에게 환상을 되돌려줄 것이다. 금전과 말의 교환을 함축한다.

- 이 같은 점을 넘어서 위니코트는 정신분석학의 한계에 매달린다. 교환방식이 적절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함께 나눔은 법적, 계약적, 제도적이지도 않을 어떤 관계의 필연성을 가리킨다.

- 니체의 텍스트들도 마찬가지이다. 법, 계약, 제도로 이해되는 것이 아닌, 인지 가능한 무엇, "함께 타고 있음"이 있다.

 

* 1. 경구와 외부 266

- 철학에 있어서 문체를 이루어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철학에서는 바깥에로의 관계가 언제나 내성에 의해 병합되면서 그 내성 속으로 녹아들어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니체는 반대로 외부와의 직접적인 관계 위에서 사유를 하며 글을 쓴다.

- 니체의 <청동에 비추어 본 예술가들>, 카프카의 <중국의 벽>. 이 두 텍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른 운동. 외부로부터 오는 운동. 책 속에서 출발하지 않은 운동, 책의 틀 속에 머물지 않는 운동. 개념의 추상적인 운동이나 재현의 상상적인 운동과는 완전히 다른 운동.

- 니체의 경구는 힘들의 놀이이자, 외적인 힘들의 상태이다. 경구는 무의미이다. 경구는 기의와 기표가 아니다. 기의와 기표는 텍스트의 내성을 회복하는 방식일 뿐이다. 경구는 힘들의 상태이며, 이때 힘들 중에서 최후의 힘, 즉 가장 최근의 힘이며 가장 현실적인 힘이자 잠정적으로 가장 최종적인 힘은 언제나 가장 외적이다.

- 니체의 텍스트에 대하여 해석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기계화의 문제만이 남는다. 어떤 외적이고 현실적인 힘들이 그 무엇인가를 작용케 하는지, 에너지의 흐름을 작용케 하는지를 탐구하는 문제만이 남는다.

- 니체의 텍스트가 파시스트적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은 텍스트의 수준에서가 아니다. 니체의 혁명적 성격에 대해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방법의 수준에서이다.

- 니체적 방법에 맞는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혁명적 힘(혁명적 힘이란 초인이 아닐까?)을 발견하라.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힘들에, 경구의 틀 속에서 니체의 텍스트를 가로지르며 교차하는 새로운 힘들에 호소하라.

 

* 2. 경구와 강도 270

- 체험된 상태들: - 재현이나 환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법, 계약, 제도라는 코드를 통해서 작용토록 해서는 안 된다. - 반대로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보다 멀리, 언제나 보다 바깥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그런 흐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체험된 상태들이 곧 강도요 강도들이다.

- 강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강도는 고유명사들과 더불어 보아야 하는데, 이때의 고유명사들은 사물들, 사람들, 어휘들의 재현이 아니다. 기표들도 기의들도 아니다.

- 그것들은 차라리 땅의 신체일 수도 있고, 책의 신체일 수도 있으며, 또한 니체의 고통받는 신체일 수도 있는 그런 신체 위에서의 강도들을 가리킨다. 나는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이름이다……라는 구절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이렇게 하여 여기에 일종의 유목주의가 있게 된다.

- 강도는 이처럼 하나의 신체 위에 강도 자신이 동적으로 옮겨 앉게 되는 관계를 통해서만, 한 고유명사가 지니는 동적인 외성과의 관계(드라마)를 통해서만 살아질 수가 있는 것이다.

- 니체에게 있어서 고유명사가 언제나 하나의 가면, 즉 작용자의 가면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 주석; 비인격적인 강도들이다.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드라마화의 방법"을 통해서만이다. - 체험된 상태는 드라마화의 방법과 더불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기호"라고 할 만하다. (권력의지 = 체험된 상태 또는 현상 = 기호) "체험된 상태 = 비인격적인 강도 = 기호" - (비인격적 강도, 극화, 의미, 고유명사) - (강도와 극화)

 

* 3. 경구가 갖는 해학과 아이러니 272

- 니체가 정당한 이면 읽기에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면, 이와 반대로 완전히 부당한 이면 읽기 또한 있다. 말하자면 심각한 정신에 의해, 무건운 정신에 의해, 차라투스트라의 원숭이에 의해, 즉 내성의 숭배에 의해 설명되는 그 모든 부당한 이면 읽기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 니체에게 웃음은 언제나 해학과 아이러니의 외적인 운동을 가리키며, 이때 이 외적인 운동은 강도들의 운동, 강도에 있어서의 양들의 운동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강도들의 운동을 따라서 낮은 강도와 높은 강도의 놀이가 행해진다. 강도상의 높낮이들이 이루는 이 놀이, 정확하게 이 놀이가 니체에게서 아이러니의 상승과 해학의 하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바깥과의 관계 속에서 체험된 것의 내용이나 질로서 스스로를 전개하는 것이다.

 

* 4. 초코드화의 제국 기계, 탈코드화의 전쟁 기계 274

- 『도덕의 계보학』에 따르면, 원시 농경 사회의 기반 위에서 거대한 사업을 조직하며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관료 집단과 행정조직을 통해 전제군주가 모든 것을 초코드화하는 그런 제국 기계의 건설을 인식할 수 있다.

- 『도덕의 계보학』 제2부에 따르면, 상관적인 그러나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현상이 발생함을 볼 수 있다. 중앙에서는 농촌공동체들이 전제군주의 관료 기계 속에서 율법 학사들, 사제들, 관리들에 의해 점령되고 고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변방에서는 공동체들이 다른 종류의 모험 속으로, 즉 유목적인 다른 종류의 단위 속으로, 유목적인 전쟁 기계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스스로를 초코드화되도록 놔두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스스로를 탈코드화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 그러나 이 양자는 너무나도 상관적이며 너무나도 상호 침투적이기 때문에, 전제군주는 유목적 전쟁 기계를 자신 속에 편입시키고 내화하는 일을 자기의 관심사로 하는 반면, 유목민은 자기가 정복한 제국과 관련하여서 행정조직을 발명하는 일을 자기의 관심사로 한다.

- 철학적 담론은 통치권의 문제를 구성하는 법, 제도, 계약과의 본질적인 관계 속에 있었으며, 전제군주의 형성에서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착민의 역사를 관통하는 법, 제도, 계약과의 본질적인 관계 속에 있었다.

- 니체는 또 다른 유형의 담론을 최최로 지각한 사람이다. 그는 행적적인 합리 기계에 의해 또는 순수 이성의 관료들인 철학자들에 의해 진술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전쟁기계에 의해 진술이 생산되게 되는 담론,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유목적인 담론을 지각한 것이다.

- 새로운 정치: 혁명의 문제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 또는 국각 장치의 전제군주적이고 관료적인 조직 속에 결코 다시 빠지지 않는 엄격한 투쟁의 단위를 발견하는 일이다. 즉 국가 장치를 다시는 만들지 않을 전쟁 기계를 발견하는 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내적인 전제군주적 단위를 다시는 만들지 않을 유목의 단위를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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