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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알기의 존재론, 되기의 내부작용 그리고 물질되기의 윤리학

 행위적 실재론은 독립적 실재의 재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 결과들, 개입들, 창조적 가능성들, 그리고 세계 안에서 그리고 그것의 부분으로서 간행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8장에서 바라드는 눈부신 과학기술(양자컴퓨터, STM...), 생체모방학 등에서 이루어지는 변형수준의 새로운 인간 비인간의 얽힘을 보여준다. 기존의 과학에서 따라나오는 존재론, 인식론을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로 인한 더 첨예한 문제가 윤리의 문제로 이어짐을 드러낸다.

1.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뉴턴의 원자, 달톤의 원자...러더퍼드의 원자, 보어의 원자, 파인만의 원자는 다르다. 원자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화, 상상, 관행,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바뀌어왔다. ‘우주는 원자와 허공으로 되어있다’고 할 때 허공(진공)은 비어있지 않다. 오히려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2. 단일한 원자를 감지하거나 집을 수 있는 장치-주사 터널링 현미경(STM)

고정된 대상-장치의 고정된 부분은 에이글러 연구팀의 원자 조작능력의 핵심임. 이미지화 모드와 조작 모드를 오가면서 개별원자를 움직이고 실제로 그들이 그것을 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STM은 개입과 재현을 위한 장치가 됨.

이미지화와 조작은 상호배타적인, 즉 상보적인 작동모드이다. 이미지화 모드에서 "adatom"(이 경우에는 제논 원자)은 이미지화되는 표면의 일부인 반면(즉, 대상) 조작 모드에서는 "adatom"은 현미경 팁(즉, 관찰 행위 주체)의 일부가 된다.

3. 보어에게 있어서, 아는 사람과 알려지는 것 사이의 관계는 개입의 개념이나 심지어 시각에서 촉각으로의 이동이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본질적으로 고정된 데카르트적 구별에 대한 믿음은 고전적 세계관의 근거 없는 편견이다. 대상과 장치의 본질적인 불변성, 관계의 불가분성을 인정하는 것이 양자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로 그 가능성을 구성한다.(보어-양자물리학)

'심사하지 말고, 간섭하라'(by 해킹)에서 '단순히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를 제정하라'로~~

4. 단순히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작용이 실험 및 이론적 실천에 수반된다.

각 특정한 과학적 실천(STM 현미경과 현미경 사용법, 현미경의 역사, 터널링 현미경을 스캔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과학 기술 진보, 터널링의 양자 이론...)이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관계적으로 상호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을” 말하려는 것이다.

바라드는 자신의 행위적 실재론의 설명에서, 과학적 실천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공개"되는 것은 우리가 세계의 다르게 되기와/내에서 또는 그의 일부로서 참여하는 내부작용의 참여의 효과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현상의 존재에 대한 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은 아니다. 현상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는 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대로, "마음"은 그 자체로 특정한 내부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물질적인 현상이다. 현상은 실재하는 물질 존재다. 기술과학적 실천을 통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특정 물질 현상의 객관적 존재의 표현이다. 이것은 결국 과학적 실천의 실재론적 개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실재론의 개념에서와는 달리, "객관성"은 (존재론적 의미에서) 선존재가 아니고 (인식론적 의미에서) 인지적 정신에 분명히 나타나게 된 선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성은 물질화되는 것, 다가올 것에 대한 책무상(accountability)의 문제다. 어떤 절단이 실행되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절단은 다른 물질적 되기를 실행하는 것이다.

5. 일단 개별 원자를 조작하는 것이 실현 가능하게 되면, 원자의 새로운 구성 가능성이 우리 앞에 열리게 된다. 만약 권력이 신체와 주체성의 특수한 구성을 통해 작용한다는 푸코의 평가가 옳다면, 나노기술은 우리 존재의 물질성을 존재의 바로 그 원자까지, 그리고 그 너머, 생명(bios)와 테크닉, 유기와 무기, 인공과 자연, 마음과 신체 사이의 차이를 초월하는 되기의 특정한 얽힘에 의해 개체성이 저절로 풀리는 지점까지 재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푸코의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단순히 개별 원자의 규모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규모 자체는 공간시간물질이 재구성되면서 반복적으로 재구축될 것이다. 

*컴퓨터 마우스에 한 손을 얹고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가지면, 우리는 개별 원자의 구성에 변화를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바로 그 본성이 변하기 시작한다.

생체모방, 거울상, 그리고 반사의 광학과 정치학

중요한 차이, 회절, 차등적 체화, 앎의 존재론

1. 캐나다 한 생명공학 회사의 합성 생명체의 창조 

- 거미염소 goats with spider genes and silk in their milk

- 거미불가사리/ 뇌가 없고 눈이 없는 생물이 시각계로도 기능할 수 있는 골격계를 갖는다.

불가사리의 친척인 거미불가사리는 눈의 도움 없이도 심해의 포식자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데 그 골격계 전체가 커다란 눈을 형성한다

- 거미불가사리는 눈이 없다; 그들이 눈이다. 그것은 단지 거미불가사리의 시각 시스템이 체화된 경우가 아니다; 그것의 존재 자체가 시각 장치다. 거미불가사리는 살아서, 숨쉬고, 변신하는 광학 시스템이다. 거미불가사리에게는 존재와 아는 것, 물질성과 지능, 실체와 형태가 서로 수반된다. 

- 생체모방술/ 거미불사가리 모델을 바탕으로 한 생체모방 미세렌즈는 광학 네트워크의 구성요소로 유용함~~

- 거미불가사리는 알고 존재하며 행하는 비분리성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다

- 거미불가사리는 앎의 기하학적 광학으로 더 잘 안다. 중개 기계, 렌즈, 파놉티콘 등 많은 학자들이 상상하는 다양한 인식론적 도구와는 다른 것에 속한다.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이 함의하는 인식론과 존재론은 현저하게 다르다.

2.거미불가사리의 신체 구조는 앎의 실천에서 세계의 역동적인 관여의 일부로 그들이 보고 알게 되는 것의 물질적인 행위자이다. 

그것의 신체적 물질성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변화시키기 위해 열어두는 문화나 역사의 각인을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텅 빈 표면이 아니다; 그것의 실체 자체는 형태학적으로 활발하고 생성적이며, 그 차이의 생산, 지속적인 물질화에서 행위자의 역할을 한다. 즉, 그 차이의 물질화는 담론적이다—그 존재 자체에 중요한 경계와 속성을 재구성하는 인과적 실천을 수반한다.

그것의 신체적 경계와 연결성의 지속적인 재구성은 "자신" 및 "타자"(예: "주변 환경") 사이의 수행적 절단이 차이나게 제정되는(즉, 한 수행적 절단에서, 어떤 팔은 자기의 것이었다가, 다른 수행적 절단에서는 타자의 것이 되는) 반복적 인과적 내부-작용—물질-담론적 실천의 산물이다

3. 사물보다는 수행성으로서의 신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듯이, 따로 구성되는 신체를 존재하는 장소나 이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시하는 기존의 유클리드 시공간, 혹은 비유클리드 다양체로서의 시공간이라는 익숙한 개념에 저항해야 한다. "위치"는 공간의 절대적 특징도 선행적 특징도 아니다. 신체가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동안 시공간 다양체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공간, 시간, 물질의 관계는 훨씬 더 친밀하다. 시공간 그 자체는 세계의 지속적인 내부작용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구성된다. 세계는 현재 진행 중인 내부작용적인 참여로, 신체는 세계의 역동적인 내부작용이 차등적으로 수행한 것들에 속하며, 시공간을 포함한 경계와 속성을 끝없이 재구성한다. 기술과학 및 기타 실천은 만들어지는-시공간-물질을 수반한다. 그 어떤 것도 시공간 기준의 틀 안에서 따로 구성되거나 위치하는 것은 없으며, 세계 밖에 위치해서 우리가 관찰을 즐기는 신성한 위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4. 거미불가사리는 앎과 존재의 얽힌 실천에 대해 말 그대로 바라드의 중요한 행위적 실재론이라는 존재인식론적 관점을 제정한다. 그들은 매개된 시력 즉 광학에 따른 앎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적 은유들을 타파하면서 우리의 데카르트적 정신 습관에 도전한다. 

 안다는 것은 직접적인 물질적 관여로서, 그것의 역동적 물질 구성, 그것의 지속적인 절합에서 세계의 일부로서 세계와 내부작용하는 실천이다. 앎과 존재의 얽힌 실천은 물질적인 실천이다. 세계는 단순히 인간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관념이 아니다. 반대로 '정신'은 세계의 특정한 물질적 구성으로, 반드시 뇌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뇌세포는 기억을 간직하거나 자극에 반응하거나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 각자"는 그것의 차등적인 물질화에 있어서 세계의 내부-작용적인 지속적인 분절의 일부분이다. 

5. 회절은 주체와 객체, 자연과 문화, 사실과 가치, 인간과 비인간,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인식론과 존재론, 물질성과 담론성의 선천적으로 추정되는 분리에 도전하는 물질-담론 현상이다. 회절은 경계의 결정성과 지속성의 한계를 나타낸다. 행위적 절단이 사물을 서로 모으고 갈라놓는다. 회절은 차등적인 얽힘의 문제다. 회절은 단지 차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차이점의 얽힌 성질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회절 패턴의 깊은 의의이다. 회절은 변화를 만들고, 위상적으로 연결을 재구성하기 위한 물질적 실천이다.

6. 장치는 그 자체로 물질-담론적 실천의 내부작용의 결과인 현상이고 현상들을 (공간시간물질 자체의 반복적인 재구성에서 공간, 시간 및 하위 문화를 가로질러 거래되고 변이하는) 특정 관행의 후속적인 반복으로 주름잡힘은 새로운 현상의 생산을 초래하는 내부작용의 본성의 중요한 전이(shifts)를 구성한다. 어떤 전이가 일어나는가는 존재론적 이유뿐만 아니라 인식론적 이유에 중요하다: 신체 생산의 다른 물질-담론적 장치는 고정적이고 독립적인 실재에 대한 다른 설명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구성을 물질화한다. 

7. 우리는 우리가 속한 세계에 책임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의 임의적인 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형성하는 역할과 우리가 형성되는 특정한 실천으로부터 실재가 퇴적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라 공간시간물질의 구성과 재구성에서 이러한 연결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물질-담론적 실천에 대한 이해다.

물질되기의 윤리학을 향하여

1. Levinas는 윤리에 대한 관습적인 접근의 토대가 되는 자아의 형이상학을 거부한다. 주체성은 개별성의 문제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책임의 관계다. 결정적으로, 그렇다면 윤리적 주체는 전통 윤리의 탈체화된 이성적 주체가 아니라, 의식에 선행하는 경이로움의 양식을 통해 타자에 대한 인접 관계에 반응하는 체화된 감수성이다. 

2. 거미불가사리와 마찬가지로 전자도 생동감 있고 활력이 넘치는 복잡한 현상이다. 기억과 재기억하기는 정신에 기초한 역량이 아니라 신체의 되기에 배어 있는 뚜렷한 역사성이다. 인간 주체가 알기의 중심이 아니듯이, 윤리의 중심도 아니다. 우리(그러나 "우리 인간들"만이 아니라)는 항상 의식적인 의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물질성이 수반하는 다양한 존재론적 얽힘으로 인해 우리가 얽혀 있는 타자에게 책임이 있다. 행위적 절단의 다른 면에 있는 것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행위적 분리가능성은 개별화가 아니다. 윤리는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외부의/외부화된 타자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 아니라 우리가 부분을 이루는 생생한 관계성에 대한 책임감이자 책무성에 관한 것이다. 

3. 물질되기는 그것의 역동적인 존재하기에서 세계의 존재론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단 한순간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과 "저것"과 "여기"와 "지금"은 일어나는 것에 선재하지 않고 각각의 만남과 함께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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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주체와 대상 사이의 본질적으로 고정된 데카르트적 구별에 대한 믿음은 고전적 세계관의 근거 없는 편견이다. 대상과 장치의 본질적인 불변성, 관계의 불가분성을 인정하는 것이 양자 현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로 그 가능성을 구성한다.(보어-양자물리학)

-표시한 부분, 대상과 장치의 관계의 불가분성을 인정하는 것이 양자현상을 객관적으로~ 이 부분에서 의미하는 대상과 장치가 양자물리학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그 관계의 불가분성이 의미하는 것은?

Q2. ‘생체모방학(biomimicry)’이 단순한 유전공학이나 형질전환 공학과 다른 지점은? 그리고  인간의 개입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들은 과연 없는 것인지....그리고 베니어스(Benyus)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에 대한 바라드의 비판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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