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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Nietzsche, Der Wille zur Macht, 권력에의 의지-모든 가치의 가치 전환의 실험

이 책은 니체의 저작활동의 시초부터 니체가 스스로의 세계관적 지평을 한걸음씩 깊고 넓게 굳혀가서 마침내 도달한 그 근본사상에 시적 표현을 부여한 <짜라투스트라..>에 대해 그 동일한 근본 사상에 산문적 표현을 부여하려 기획된 이론적 주저이다.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고 방대한 단편의 집적으로 끝난 미 완성작이다. 니체의 사후 1901년에 출판되었고, 1906년 포켓판 전집이 새로 편집되었다. 이는 친누이 페터 가스토와 협력하여 최초의 것의 두 배나 되는 자료를 덧붙이고, 니체 사신이 써서 남겨둔 <니스에서의 1887년 3월 17일의 초안>을 기초로 다듬고 재배열하였다. 이 책은 1906년 포켓판에 의한 것이다.

 

제2장 자연에 있어서의 권력에의 의지

 

1. 기계론적 세계해석

 

지금까지 실험된 세계해석 가운데 기계론적 세계해석이 전면으로 부각되고 있다. <힘Kraft>이라는 개념은 현대의 물리학자가 신과 세계를 창조한 것인데 <권력에의 의지>로서 보완될 필요가 있다. 권력을 표명하려는 혹은 권력을 행사하고 실행하려는 요망으로서 창조적 충동으로서 특징 지워지는 하나의 내적의지로서.

 

화학 속에는 불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길들여진 선입견 때문에 자연과학자는 불변적인 것을 변함없이 형이상학으로부터 끌어넣는다. 물리학적 원자는 고정불변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므로 날조된 것이다. 이것이 원자론의 기원이다. 운동의 기계론적 개념은 이미 원본적 사상이 시각과 촉각의 기호에로 번역된 것이다. <원자>라는 개념은 우리의 논리적 심리적 세계로부터 포착된 기호이다. <참-거짓>의 전체 영역은 본질 사이의 상대관계에만 연관되는 것이다. <본질자체>는 없으며, 이는 <인식자체>가 없는 것과 같다.

 

원인을 믿는 것은 목적을 믿는 것이나 다름없다.(스피노자와 그 인과론에 반대한다) 어떤 현상들이 불변으로 잇달아 발생하는 것이 증명하는 것은 <법칙>이 아니라 둘 혹은 그 이상의 여러 힘 사이에서의 권력관계이다. 이 관계가 어디까지나 불변인 것이다! 우리는 항상 회귀하는 그러한 종류의 결과를 표현하기 위하여 공식을 찾아낸다. 문제는 권력을 동등하게 하지 못하는 두 요소 사이의 투쟁이다. 각각의 요소의 권력의 척도에 따라서 여러 힘의 새로운 배치가 달성되는 것이다.

 

운동의 개념(감관언어에서 취함)과 원자의 개념(=단위, 심리적 경험에서 유래)을 가진 기계론적 세계. 역학은 연쇄적인 여러 현상을 감성적 표현수단과 심리학적 표현수단을 빌어 공식화하지만 원인이 되고 있는 힘에 접촉하지 못한다. <권력에의 의지>는 존재도 생성도 아닌 ‘파토스’Phatos로서 생성이 결과를 야기하는 행동이 거기에서 비로소 생기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다.

 

물리학자들이 믿는 <참의 세계>는 필연적 운동을 계속 영위하고 있는 만인에 대하여 동등하고 고정된 원자의 체계화이다. 그러나 원자는 의식의 원근법주의의 논리에 따라 추론되는 주관적 허구이다. 필연적 원근법주의 덕택에 모든 힘의 중심(이는 인간만의 일이 아님)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잔여의 모든 세계를 구성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측정하고 감촉하고 형태화한다. 이 원근법을 정립하는 힘이 주관subjekt-sein이다. 원근법주의란 그 종의 고유성의 복합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각각의 특수적 물체는 모든 공간을 지배하여 그 힘을 확장하며 그 확장에 저항하는 모든 것을 되찌르고자 노력한다.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의 동등한 노력에 부단히 충돌하며 결국 자신과 충분히 닮은 데가 있는 다른 물체와 <합체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이들 물체는 공모하여 함께 권력을 추구한다. 이 과정은 계속된다.

 

2. 삶으로서의 권력에의 의지

 

a) 유기적 과정

 

공통의 영양현상에 결부된 다수의 힘을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1. 저항의 행동. 2. 형태와 리듬에 따라 조정하는 행동. 3.평가의 행동) <삶>이란 다종다양한 투쟁자가 서로 가지런히 하지 않은 생장을 이룩할 힘을 확립해가는 과정의 지속적인 형식으로 정의된다. 권력에의 의지는 해석한다. 사실상 해석은 무엇인가를 지배하여 주인이 되기 위한 수단자체이다. 유기적 과정은 해석하는 행동을 끊임없이 전제한다.

 

다윈주의에 반대하며-어떤 기관의 유용함이 그 발생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에 관하여 유용한 것인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결함, 어떤 변질은 그것이 다른 기관의 자극제로서 행동하는 한 유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곤궁상태는 어떤 개체를 그 개체가 힘을 응집하여 스스로를 탕진하지 않을 한도 내에서 버티어내는 한 생존조건일 수 있다. <외적 환경>의 영향은 다윈에게 부당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

 

생물학자가 주장하는 허위의 <이타주의>를 조소해야 한다. 아메바의 번식은 노폐물의 폐기, 쓸모없는 것의 추방이다. 생식은 무력함의 결과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몰려드는 것은 식료품의 부족 때문이다. 약자는 강자와 일체가 되고자 의욕 한다. 오히려 강자는 생장하면서 둘 혹은 그 이상으로 자기 분열한다. 일체화에의 갈망이 커질수록 더욱더 약함이 있다고 추측해도 좋다. 변화, 차이, 내면적 붕괴에의 갈망이 증대하면 할수록 거기에는 더욱 더 큰 힘이 있다. 권력에의 의지는 저항에 당면해서만 발현할 수 있다. 정복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권력에의 의지는 두 가지로 분열하는 것이다.

 

b) 인간

지배형태로서의 육체 : 육체에 있어서의 귀족정치, 지배자의 다수성(세포나 조직의 투쟁). 노예제와 분업. 즉 고급유형은 저급유형이 하나의 기능에로 낮추어짐으로써 가능하다. <영양>은 만족할 줄 모르는 동화작용의 권력에의 의지의 한 귀결이다. <생식>은 지배적 세포가 자기 것으로 삼은 것을 조직화할 힘을 상실할 때 나타나는 붕괴이다. 형태화하는 힘은 항상 새로운 <소재>를 저장하고 의욕 하는 힘이다. 우리가 무엇인가 행할 때 힘의 감정이 수반된다. 이 힘의 감정이야말로 행위의 원인이며 <힘 그 자체>이다. 인과성은 강제가 연쇄적 사상 속으로 사고해 넣어짐으로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어떤 <개념적 파악>은 이때 발생한다. <의지>나 <목적>을 믿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다. 감각이야말로 설명되어야 할 과학의 재료이다.

 

정신의 전 발달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이다. 그것은 하나의 고차원의 육체가 스스로를 계속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감촉할 수 있게 되어가는 역사이다. 유기적인 것은 더 한층 높은 단계로 상승해 간다. 자연을 인식하고자 하는 열망은 육체가 스스로를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육체의 영양, 거주의 방식, 생활양식을 변화시켜야 할 무수한 실험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식과 의식 속에서의 가치평가, 모든 종류의 쾌감과 불쾌는 이러한 여러 변화와 실험들을 나타낸다. 결국 문제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초극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개체일 뿐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직선을 계속 더듬으며 생명을 지속시켜가는 총체적 유기체이다. 생물학자들의 근본오류. 문제는 유가 아니라 더욱 강한 영향을 미쳐야 할 개체이다. 다수자는 수단에 불과하다. 삶은 여러 조건의 외적 조건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더욱 더 <밖>을 굴종시켜 혈육화 하는 권력에의 의지이다. 개인이 서로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실은 가장 먼 목표를 겨냥하는 과정 자체 속에 있는 가장 강력한 자극이다. 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저 여러 형성력을 다른 쪽에서 그들이 서로 스스로 파괴하지 않도록 통합하고 제어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개체 이상의 존재이다. 즉 우리는 모든 연쇄 그 자체이며 연쇄의 모든 미래의 과제를 휴대하고 있는 것이다.

 

3. 권력에의 의지 및 가치의 이론

 

나의 이론. 권력에의 의지는 원시적인 욕정의 형식이며 그 밖의 모든 욕정은 이 의지에 의하여 형성된 것에 불과하다. 개체의 <행복>을 대신하여 권력을 확립하다는 것은 중대한 계몽이다. 즉, <모든 생물은 권력을 향하여, 권력의 증대를 향하여 노력 한다> - 쾌감이란 달성된 권력의 감정의 한 증후, 차이성의 의식성에 불과하다. 힘의 축적에의 의지는 삶의 현상에 특유한 것이다. 모든 힘의 중심에서 발하는 보다 강해지려는 의욕이 유일의 실재성이다. 자기보존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지배하고, 보다 더한 것이 되고, 보다 강한 것이 되고자하는 의욕이.

 

칸트에 따라...인간의 유일한 원동력은 고이다. 고는 모든 쾌에 선행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통은 쾌의 반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불쾌가 쾌의 요소로서 행동하고 있다. 저항에의 승리라는 놀이가 쾌의 본질을 구성하는바 남아돌 만큼 차서 넘치는 권력의 저 총체적 감정을 가장 강하게 자극한다. 고통은 하나의 지적 사상이며, 그것은 오랜 동안의 경험이 겹쳐 쌓아온 <유해>라는 판단이다. 그것 자체로 고통이라는 것은 없다.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어떤 상해가 아니라 유기체의 총체에 대하여 무엇인가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험이며 이 경험이 저 깊숙한 마음의 격동이라는 모습을 취하고 나타나 그것이 불쾌라 불린다.

 

인간은 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불쾌를 피하는 것도 아니다. 쾌와 불쾌는 단순한 결과, 단순한 수반현상이다. 인간이 의욕 하는 것은 권력의 증대이다. 이 증대를 추구하는 노력 속에서 쾌도 생기고 불쾌도 생긴다. <삶의 가치> - 삶은 하나의 특수한 경우이며 모든 생존이 시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은 권력의 생장 형식의 표현이다. 가치는 인간이 스스로의 혈육이 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량이다. -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지 인류가 아니다. 지배자의 영역은 끊임없이 생장하고 있다. <가치>는 본질적으로 이 지배적 중심의 증대 혹은 감소에 대한 관점이다. 이 중심은 <다수성>이다. <단일성>은 생성의 본성에 현존하지 않는다.

 

제3장 사회 및 개인으로서의 권력에의 의지

 

1. 사회와 국가

 

원칙. 개인만이 책임을 느낀다. 모든 <이타주의>는 개인의 총명함으로써 생긴다. 사회는 서로 <이타>적이 아니다. <사회>는 덕을 강함, 권력, 질서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국가 혹은 조직화된 비도덕성 - 내부적으로는 경찰, 형법, 신분, 상업, 가족이며 외부로는 권력, 투쟁, 정복 복수에의 의지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는 개개인을 압도하고 그 때문에 개개인은 스스로 행하는 일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부한다. 인간이 국가에 봉사하며 실행하는 모든 일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된다. 윤리학자는 무의식적인 교육, 육성의 본능으로 권력욕을 억제하는 일을 한다.

 

연속체, 즉 <결혼, 소유권, 언어, 전통, 혈족, 가족, 민족, 국가>는 저차의 또한 고차의 질서의 연속체이다. <결혼>이라는 말의 시민적 의미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으로부터는 어떠한 제도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종족의 이해와 신분이다. 인간애의 또 하나의 명령. 아이를 낳는 일이 하나의 범죄가 될지도 모르는 경우. 만성질환이나 신경쇠약증의 경우. 사회는 삶의 커다란 수탁자로서 삶 자체에 대하여 삶의 모든 실패를 책임져야하며 - 또한 그것을 대속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을 방지해야 한다. 사회는 수많은 경우 생식을 예방해야 한다. 혈통, 지위, 교육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가장 냉혹한 강제처치, 자유의 박탈, 상황에 따라서는 거세도 준비해두는 것이 허용된다. 변질된 부분은 절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질문 : 스펜서의 사회적 다윈주의나 나치즘의 인종주의와 연관될 듯?)

 

<보상과 형벌> - 양자는 서로 넘어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 모든 개개인이 각자의 <계약>을 맺어 둔 현대사회 - 여기서 범죄자란 계약파기자이다. 범죄는 <사회질서에 반항하는 폭동>이라는 개념 중 하나이다. 폭도는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제압되는 것이다. <벌>은 폭동의 진압이며, 경멸이 벌에 의해 표명되어서는 안 된다. 범죄자란 그 생명, 그 명예, 그 자유를 도박하고 있는 인간 - 기력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반역적인 본능, 즉 실각자의 원한이다.

 

민주주의시대에 <권력에의 의지>는 증오 받는다. 위대한 야심가의 전형, 나폴레옹! 시저! 알렉산더 대왕! 내가 배척하는 것은 1. 사회주의. 이것은 선, 진, 미나 평등권을 순전히 소박하게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2. 의회주의와 신문사업. 이것은 군거동물을 지배자가 되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중의 무장은 결국 천민의 무장이다. 대중에 관해 우리는 자연이 무정한 것과 같이 가차 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로자는 병사와도 같이 감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례를, 봉급Gehalt을 받아야지 임금Bezahlung을 지불받아서는 안된다! 개인은 각자의 천성에 따라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 최고의 일을 행할 수 있도록 그 지위에 고착해야 한다.

 

2. 개인

 

근본적 과오는 목표를 가축 떼 속에 넣어두고 개개의 개인 속에는 넣어두지 않는다는 것! 가축 떼는 수단이지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개인은 무언가 전혀 새로운 존재이며 새로운 것은 창조하는 존재, 무언가 절대적인 존재여서 모든 행위는 전부 개인 자신의 것이다. 해석자로서의 개개인은 한결 같이 창조하고 있다. <자아>는 압제하고 살륙한다. 그것은 유기체의 세포처럼 활동하며 약탈하고 폭행을 일삼는다. 그것은 자기를 갱신하고자 의욕 한다.-임신. 압제자가 되기 위해서, 즉 자유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압제자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백 개의 다모클레스의 칼이 자신의 머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결코 작은 이익이 아니다. 이일로써 사람은 춤추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며, 이 일로써 사람은 <운동의 자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집단적 자기감정은 인격적 주권성을 훈련시킬 커다란 전제이다. 고귀한 계급이란 이 훈련을 상속할 계급을 말한다. 현대의 유럽인을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는 두 가지 특징, 즉 개인주의적인 것과 평등권의 요구. 개인은 극도로 손상되기 쉬운 하나의 허영이다. 고독을 원하고 소수의 평가자 밖에 추구하지 않는 긍지는 전혀 이해되는 일이 없다. 전적으로 <커다란> 성공은 대중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대중에 의한 성공은 언제나 원래가 작은 성공이다. 아름다운 것은 소수자의 것pulchrum est paucirum hominum이기 때문이다. 모든 도덕은 인간의 <위계>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법률학을 가르치는 자는 공공적 양심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개인주의는 아직은 무의식적인 일종의 <권력에의 의지>이다. 그는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총체자에 대하여 모든 개개인을 대표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단지 개인주의의 선동수단에 불과하다. 사회주의가 의욕하는 것은 개개인의 목적으로서의 사회조직이 아니라 다수의 개개인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회조직이다. 이타주의적인 도덕의 설교가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에 봉사하고 있다는 점, 이것은 19세기의 가장 흔한 허위의 하나이다. 이상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는 권력에의 의지의 가장 숙부드러운 단계이다. 개인주의에 잇달아 일어나는 것은 사지, 기관의 형성이며 서로 닮은 여러 경향은 서로 한데 통합되어 권력다운 열매를 나타낸다. 이들 권력사이에는 마찰, 투쟁, 쌍방의 힘의 인지, 조정, 접근, 업적의 교환의 확정이 있다. 최후에는 위계가 나타난다.

 

[질문]

1. 니체는 우생학을 지지하는 인종주의자처럼 보인다. 현대적 의미를 어떻게 끌어내어야 하나? 

2. 인간의 위계를 상정하는 듯한 언급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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