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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다른 동맥경화증들

 

결코 홀로가 아닌

동맥경화증은 두꺼워진 혈관 내막이라는 하나의 질병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현미경을 통해 존재한다다. 비단 현미경만이 아니다. 포인터, 유리판, 탈석회작용까지도 혈관 내막의 가시성이 달려 있는 조건들이다. 이렇듯 질병은 결코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이 실천될 동안 작동하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의존한다. 이 질병은 행해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현미경을 통해 혈관을 직접 관찰하는 병리학의 방식은 외래진료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거꾸로 외래진료실의 임상학적 방식도 병리학과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같은’ 동맥경화증을 두고도 임상적 실천과 병리학적 실천은 상호배타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배타적인 실천은 서로 다른 동맥경화증을 존재하게 한다. 이렇게 동맥경화증은 외래진료실과 병리학과에서 다르게 행해지기에, 병리학적 동맥경화증과 임상학적 동맥경화증의 양립불가능성은 관점의 문제도, 언어의 문제도 아닌 현실적인 문제다.

 

근본이 되는가 아니면 뒤따라가는가

흔히들 질병을 실행하는 실천성을 괄호 속에 넣고, 동맥경화증을 한 질병으로 취급한다. 이때 환자의 통증은 표면상의 증후로, 혈관의 질병은 그 아래 있는 실재로 불린다. 이런 관점에서는 병리학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실재를 실행하는 다양한 실천을 따라가 보면 그림은 전혀 달라진다. 병원 실천에서 두꺼워진 혈관 벽은 아픈 다리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픈 다리 이후에 나온다. 병리학은 여기서 토대가 아닌 사후적인 소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병리학이기에, 병리학은 외과의들이 필요로 하는 행동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못한다. 몰이 만난 병리학 수련의가 한때 기대했던 것과 같이 병리학은 의학과 병원 실천의 근본이 되지는 못한다.

동맥경화증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병리학보다는 임상적 방식이 더 중요한데, 그렇다고 해서 진료실이 토대라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진료실에서 실행되는 실재는 다른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조건이라고 말해야 한다. 암과 관련해서는 병리학적 방식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몰라도, 동맥경화증과 관련해서 만큼은 진료실의 현실이 그것에 우선한다. 진료실에서의 환자의 이야기가 동맹경화증의 진단과 치료 트랙을 다라 더 나아가는 길을 열거나 닫기 때문이다.

 

대상들

진료실의 대상과 병리학의 대상은 일치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동맥경화증으로 추정되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다리를 절단해 혈관 조각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경우에는 말이다. 하지만 항상 진료실과 병리학의 대상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동맥경화증으로 보이는 어떠한 증상도 보이지 않던 환자가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부검을 하고 보니 온몸에 동맥경화증이 퍼져 있었다는 사례는 진료실과 병리학의 대상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 경우에 진료실의 대상과 병리학의 대상은 다른 대상들인 것이다. 이러한 충돌은 실천에서 어느 한쪽이 앞서게 되는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진료실과 병리학의 대상이 서로 충돌할 때는 수술에서의 위험 때문에 임상의학적 방식이 우위를 점한다. 이렇게 임상의학이 우선하게 될 때 환자의 증상 호소가 혈관 벽의 크기보다 더 진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사실로 인해 증상 호소는 특정한 장소에서 실재로 간주되는 것이다.

 

어느 위치인가?

실천성을 다루는 민족지학자에게 질병의 위치는 몸의 특정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병원이 질병이 실재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이 장소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는 병리학과와 외래진료실이라는 두 장소를 구분해야 한다. 그 두 가지 진료실에서 두 개의 대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위치는 두 개로 구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은 더 작은 위치들로 다시 나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질병은 다중화한다.

 

3장 조정

 

지역적 정체성들

사회과학자들이 싫증을 낼 것만 같은 자연과학적인 문장 “동맥경화증은 ~이다”에서 “~이다”는 이제 실천성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새로운 “~이다”는 그것이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어딘가에 위치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달리 말하자면, 새로운 “~이다”는 지역화된 용어로서, 특정한 장소와 상황에 결부되는 의료실천의 존재론을 보여준다.

 

하나의 실재가 이긴다

대상들은 지역적 정체성을 갖는다. 계속 보아왔듯이, 병리학과에서의 동맥경화증과 외래진료실에서의 동맥경화증은 다르다. 하지만 병리학과와 외래진료실, 여기에 더해 혈관검사실이라는 각각의 장소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각 장소에서 작성된 서류는 병원 곳곳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장소들을 연결한다. 이러한 연결성은 장소에 따라 진단이 다를 때 부각되는데, 예컨대 임상진단에서는 환자를 동맥경화증이라고 판단했지만 반대로 혈관검사실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의 질병 실재에 상충하는 두 가지 증상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두 가지 상충하는 사실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고 상대편을 기각하는 것이다. 하나의 실재를 위해 자주 실천성을 괄호에 넣고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하나의 실재를 위해 실천성을 괄호에서 꺼낸 것이다.

 

합성 그림

하지만 항상 이렇게 양자택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 개의 다른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들을 하나의 실재로 이해하고자 애쓰지 말고 그냥 별개의 진짜 대상들이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동맥경화증과 관련해서 PTA는 이에 대한 좋은 사례이다. 결국 “외과적 치료가 필요한 동맥경화증”이란 패치워크와 같은 복합적 대상이다. 심지어 사회적 실재까지도 개입하는 패치워크이다.

 

번역

적절한 치료를 위해 혈관 질병은 지역화되고 수량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듀플렉스 도플러와 혈관촬영이 사용된다. 둘 중 새로운 기술인 듀플렉스 도플러는 환자들에게 더 편리하다. 하지만 두 기기가 다른 데이터를 제공하는 이상 섣불리 도플렉스 도플러만 사용하기는 어렵다. 두 기술의 서로 다른 두 대상은 조정될 필요가 있다. 의사들은 PSV비율을 활용해 혈관촬영술과 듀플렉스의 대상들을 하나의 공통의 대상으로 조정했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18%의 환자에 대해서는 두 기술이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이 경우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둘 사이의 위계관계는 항상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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