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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인사원-푸코, 실존의 미학]

소설 <파친코> 를 통해 읽는 여성의 주체성과 진실말하기

김혜영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은 작가가 뒤이어 풀어내는 디아스포라(Diaspora/ 신앙적, 정치적, 경제적 이유등으로 고향을 떠나 타지로 이동하는 현상)의 시작이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가혹한 역사에 내쳐진 조선(한국) 여성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까지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소수자 삶에 관한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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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진의 장편소설을 애플TV가 극화한 ‘파친코’는 전세계적으로 2022년 상반기 최고의 TV쇼 중 하나로 호평받고 있다. BTS가 빌보드 챠트 1위를 수시로 차지하고, 칸느와 아카데미 같은 유수의 영화제에서 한국작품이 작품상이나 주연상을 석권하는 K-Culture 저력의 일환으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민진은 미국 이민자 2세로 사실상 미국인이며, 이 이야기는 이민자의 나라 본토 미국에서 탄생한 미국식 여성 서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여성 이민자를 통해 세계문학과 대중문화계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파친코’의 의미는 남다르다. 이민진은 꾸준히 자신의 여성 정체성은 물론 한국인으로의 이민자 정체성을 작품에 투영하여 글을 써 왔고,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과 성찰을 통해 ‘파친코(2017)’를 완성해 냈다. 나는 학창시절 펄벅의 ‘한국에서 온 두 처녀(Love and the morningcalm/1950)’를 통해 한국이 아닌 장소에서 타자의 시선으로의(원작이 영어인) 한국여성 이야기를 처음 읽었다. 이후 미국내 이민자 사회가 확대됨에 따라 차학경의 ‘딕테(Dictee,1982)’와 같은 이민자 당사자의 디아스포라 성찰 에세이를 만날 수 있었다. 미국 이민자 2세였던 차학경은 영어와 불어를 기반으로 쓰며 한글은 기호화 된 그림처럼 사용했다. 그리고 2017년 이민진이 대중소설 ‘파친코’를 발간했고, 이는 2022년 미국 대자본의 힘을 빌어 가장 강력한 엔터테이닝 쇼로 완성되었다. 아무도 주목하지도 기억하지 않던 동양계 디아스포라 감수성의 아이콘 ‘선자(파친코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커다란 대중적 성공을 거둔 시대가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개념은 2000년 이후부터 다문화주의와 함께 학술적 용어로, 각종 논문의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시선에 의한 문화읽기나 다문화주의는 인종, 성, 계급 등 제국주의 비판에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성을 띠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문화운동이다. ‘파친코’의 첫 문장에서와 같이 역사가 망쳐놓았지만 개의치 않았던 사람들, 외부의 억압과 폭력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를 지키며 살아온 소수자들의 삶은 푸코가 ‘주체의 해석학’에서 전개한 자기배려와 주체성, 삶의 미학적 완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민진은 특히 이민자 사회의 기독교 신앙의 힘을 소설 전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푸코가 정리한 기독신앙적 자기와 진실말하기의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살펴볼 지점이다.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해석에서 푸코의 주체성이론은 페미니스트들의 지속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고대 그리스,헬레니즘 시대의 자기배려의 양식은 특권적 남성에 해당되는 사안이었으며, 푸코의 성이론과 주체의 해체는 페미니즘 이론이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남성과 구별되는 여성의 특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푸코가 지향하는 윤리적 관계 양식은 그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전체했을 때 정확히 주체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시대적 문학적 배경을 뛰어넘은 고정된 윤리 법칙이란 푸코 윤리에서는 존재할 수 없고 다만 그 삶을 지속하는 주체를 통해 윤리는 규범으로 실행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또 고대의 여성 주체가 비록 가정 공동체라는 테두리에서만 논의되고 있지만 그녀들이 전 생애를 통해 윤리적 삶과 미학적 삶이라는 두가지 테마를 실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성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윤리적 힘을 키우고 자기 삶의 아름다움을 윤리적 기술을 실천하는 것으로 완성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파친코’를 이끌어가는 것은 선자이다. 그리고 선자의 엄마 양진, 형님 경희를 주축으로 선자의 삶이 조명된다. 1910년 일제시대 부산 영도에서 유부남 한수의 아이를 가진 채 목사 이삭과 결혼 후 오사카로 이주한 선자는 가난과 차별에 맞서 가족을 보살핀다.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제한적이었으며 남편 이삭이 투옥된 후 선자는 김치를 팔며 시아주버니 요셉의 힘으로만은 모자란 가계를 꾸려나갔다. 일차원적으로 보면 선자의 삶은 남을 돌보다 늙어간 자기희생적인 평범한 어머니의 전형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여성의 자기배려란 이타적이고 희생적으로 해석되었으며 ‘파친코’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남편과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여자의 인생은 남편에게 달려있다, 이말이라. 좋은 남자를 만나면 근사한 삶을 살게 되고, 나쁜 남자를 만나면 저주받은 인생이 시작되는 거레이.”(시장상인이 선자에게) / “옛날이라면 아이를 못 낳는 나 같은 여자는 버림 받았을걸/ 난 남편 말을 따라야 해. 남편이 항상 날 잘 돌봐주니까”(경희) / “고통스럽게 사는 게 여자의 운명인갑다. 우리 여자들은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다 아이가”(양진)

선자가 태어난 1900년대 초반 한국과 일본은 여성의 주체성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였다. 선자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였으나 삶의 변곡점 앞에서 중요한 선택을 했다. 선자는 임신 후 고한수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스스로 자기를 돌보지 못한 것을 책망 한다. 그것은 가난한 장애인이었지만 결핍없이 온전한 사랑을 쏟아준 아버지 훈이 때문이었다. 훈이는 가난 때문에 자신에게 시집온 양진을 극진히 대했다.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게 아내와 딸과 함께 밥상 앞에 앉고 겨울에는 아내의 솜옷을 먼저 챙겨 주었다. 장애인의 나쁜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시집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선자는 충만한 사랑을 받았다. 부유한 한수가 첩의 삶을 제안했을 때 고민없이 즉각적으로 거절을 선택한 것은 선자였다. 선자는 한수를 사랑했고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것은 자신을 자기의 가치관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였다. 또한 요셉의 빚을 갚기 위해 경희와 전당포에 가서 협상을 한 것도 선자이며, 이삭이 투옥된 후 생계를 위해 김치수레를 끌고 길거리로 나간 것도 선자의 결정이었다. 미군 폭격시기에 가족을 살리기 위해, 아들 노아의 와세다 대학 입학을 위해 고한수의 물질적 금전적 원조를 받은 것도 선자의 의지였다. 선자는 도덕적으로 손가락 받을 수 있는 선택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고, 또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선자 주변의 많은 여성 캐릭터들은 시대적 한계성을 대표하지만 선자는 헌신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여성으로 표상된다.

이는 페미니즘적 자기배려를 설명하는 길리건의 3단계 배려의 발달단계로 볼 수도 있다. 배려의 첫 번째 발달단계는 자기의 생존이 중시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배려가 타인에 대한 선, 자기에 대한 희생과 동일시 되고, 세 번째 단계에서 자기와 타인을 모두 배려의 대상으로 고려하는 단계로 발달하게 된다. 푸코 역시 ‘주체의 해석학’과 ‘진실의 용기’를 통해 자기배려에는 타자배려가 동반됨을 이야기 했다. 자기배려는 자기와 타인의 상호의존성을 고려하면서도 자기를 하나의 권리를 가진 독립된 존재로 이해하고,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기를 존중한다. 선자는 훈이를 통해 자기배려를 배웠고, 자신의 가족을 배려하고 보살핌과 동시에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선자의 삶은 결국 신에게 구원 받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렇다. 선자와 양진에게 목숨을 빚진 목사의 청혼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그순간, 이삭은 자신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양진과 그 딸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삭의 행동은 성경 속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녀와 결혼하여 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보았던 선지자 호세아에 빗대어 정당화 되었다. 그리고 선자의 아들들은 노아와 모자수, 손자는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자와 그녀의 어머니 양진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이삭의 배려와 희생에 감사했지만 신이 존재한다고 믿기에는 그녀들의 삶은 너무도 가혹했다.

이삭의 삶은 신앙적 파레지아로 파국을 맞는다. 신사참배 중 하나님께 기도를 한 동료와 함께 투옥 후 집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는다. 그의 삶은 조선인 교회에서 순교로 받아들여 졌다. 자기배려의 해석으로 본다면 푸코가 구분지은 기독교적 자기포기의 전형이다. 선지자 호세아의 삶을 따라 이삭이 사랑한 아들 노아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일본인이 되길 남몰래 꿈꾸게 된다. 고한수가 자신의 친부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 그는 선자를 떠나 일본인으로 위장한 가족을 꾸린다. 그는 십수년 뒤 엄마인 선자가 찾아오자마자 스스로 삶을 져버린다(노아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조선인이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되고 싶었다.”). 이삭의 형 요셉은 가족을 돌보는데 최선을 다하는 기독교인 이었지만 전형적으로 가부장적인 남자였다(요셉은 경희가 돈을 벌려고 일하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 돌아갔을 때 예쁜 아내가 저녁을 준비해놓고 활기차게 자신을 맞이해주기를 바랐고, 그게 바로 남자가 열심히 일하는 이상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는 전쟁의 폐허속에서도 온전히 혼자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는 자신, 종전후 원폭 후유증으로 가족에게 짐이된 말년 자신의 모습까지 일평생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불행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한국인 교회가 갖는 신앙 공동체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민자의 차별적 삶을 인내하고 민족적 결속력을 다지는 데 신앙의 힘을 빌려 온 것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이삭과의 결혼을 통해 선자와 양진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녀의 아들들 또한 모두 기독교인이다. 많은 인물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 살아가지만 삶의 궤적은 각기 다르다. 요셉과 노아는 자기를 포기했다. 여기서의 자기포기는 이삭의 순교적 자기포기라기 보다는 자기 현실 앞의 주체성의 포기이다. 그들은 자기를 배려할 줄 아는 법을 몰랐다. 자기배려는 타자배려를 동반해야 한다. 요셉은 일방적 책임이라는 자기고집에 빠져 아내 경희와 선자는 물론 자기자신도 돌보지 못했다. 노아는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완벽히 자신을 속이는 삶을 살아보았지만 결국 생을 포기했다. 기독교 신앙은 이민자 가족 공동체를 지탱하는 커다란 힘이지만 가족 구성원 개개인 모두를 구원하지 못했다.

이민진의 소설을 다순한 기독교적 구원 스토리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일차원적 해석이다. 푸코는 자기배려의 중요한 양식으로 진실 말하기를 강조했다. 운명은 예언적 말하기로, 존재는 현자의 말하기로, 테크네는 교사의 말하기로 표현되지만, 푸코가 주목한 것은 윤리적 진실 말하기 이다. 이 양식들은 각기 다른 인간형을 수반하며, 서로 다른 말하기 양식을 필요로 하고, 서로 다른 영역과 관련된다. 파친코의 인물들은 다양한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선자는 부모님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스스로에게 떳떳한 엄마로서, 이삭은 절대자에 복종하는 순교자로서, 솔로몬은 조선인의 정체성과 부모의 삶을 인정하는 후손으로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냈다. 근대 이후 윤리적 말하기(파레지아)는 독자적으로 발현되기 보다는 다른 세가지 예언, 존재, 테크네 양식을 수반한 채 등장한다. 파친코의 말하기는 이민자들의 기독신앙이라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운명적이면서 동시에 윤리적인 삶을 보여준다. 선자는 자신의 굴곡진 운명을 반추 할 때 마다 늘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질문한다. 유부남이면서 떳떳하게 자신을 사랑한 고한수와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신앙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하겠다한 목사 백이삭과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첫사랑 한수를 생각하고 한수 또한 선자를 원하지만 선자는 마지막까지 이삭과 꾸린 가족들의 어른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선택했다(“그럼에도 한수는 요즘 젊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돈을 받지 않는 선자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에서는 프랑스 향수 한 병이나 이탈리아 구두 한 켤레로 여자를 살 수 있었다.”). 이것이 선자의 윤리적 자기배려 였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파친코 사업으로 상징된다. 야쿠자라는 오해와 수전노라는 멸시의 대상인 파친코 사업에 한국인이 많이 포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아는 와세다대학 캠퍼스와 가족에서 달아나 조선인임을 숨기지만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은 결국 파친코 가게 직원이었다. 모자수는 아버지와 형과 같이 훌륭한 조선인이 못됨을 인정했지만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파친코 사업을 선택했다. 노아와 모자수의 다음 세대인 선자의 손자 솔로몬은 1980년대 후반 미국 컬럼비아대학 졸업후 영국계 금융회사 일본지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당해고를 겪은 이후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을 결심을 한다. 파친코는 이민자 하층계급에게 주어진 일이지만 결국 세대를 관통하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인정하게 하는 자기인식의 과정처럼 보인다.

소설의 1부 Hometown은 1910년부터 1949년까지 선자의 일본 이민 정착기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민진 작가는 자신의 부모님 세대 이민자 1세대의 희생을 선자에게 투영했다. 2부 Motherland(1950년 ~ 1989년)에서 선자의 아들과 손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져 자이니치 3세대의 정서를 묘사하지만, 미국인인 작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또한 제3의 시선으로 배치시킨다. 솔로몬의 여자친구 피비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피비는 작가 이민진의 분신처럼 등장한다. 피비는 미국계 한국인이지만 일본 이민자 가족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그러나 일본은 너무 다르다. 피비에게 자이니치가 당하는 차별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가족은 부담스럽게 끈끈하며 가부장적이다. 결국 피비는 솔로몬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다. 피비에게 솔로몬은 미국인과 너무 다른 일본인일 뿐이었다(“전 피비와 결혼할 수 없어요. 전 일본에서 살거라고 피비에서 말했어요. 파친코에서 일할 거라고요.”).

 작가 이민진은 일본내 자이니치 고등학생의 이지매 자살사건을 기사로 읽고 충격을 받고 이를 토대로 소설 ‘파친코’의 구상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일본에서 3년을 거주하며 느꼈던 개인적 경험과 감정을 이민자들의 수많은 인터뷰와 자료조사를 통해 글쓰기로 완성했다. 작가는 자신의 디아스포라 감수성을 이민자 여성 선자와 주변의 다양한 인물을 통해 표출했다. 선자의 가족과 친분을 맺은  일본인들 또한 사회적 소수자이다.  소설속에서 한국인 고등학생의 자살사건을 맞닥뜨리는 이는 모자수의 일본인 친구인 하루키 이다. 그는 친구가 한국인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한 형편의 집에서 장애인 동생을 돌보며 자랐다. 경찰이 된 하루키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지만 여전히 동생을 책임져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감추며 살고 있다(“어이, 삶은 원래 괴로운 거야.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 모자수와 재혼한 일본인 애쓰코의 딸 하나는 이혼으로 헤어진 엄마에 대한 애정결핍과 반항의식 끝에 매춘부로 일을 하다 에이즈로 사망한다.

선자 곁에는 이민자, 여성, 하층계급, 성소수자, 장애인들의 삶이 촘촘히 엮여 있다.  한국의 일본 이민자 가족의 4대 이야기를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식민지 시대의 차별이 일상화된 일본의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 이민진은 일본계 미국인들로부터 혹은 일본 독자로부터 불편한 질문을 계속 받는다. 21세기의 새로운 민족주의 선동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그녀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이것은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파친코’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이 한국인이 되어보길 희망한다. ‘파친코’ 속 한국인들은 단순히 특정지어진 한 무리가 아닌 주류 사회에서 소외받는 모든 존재를 대변한다.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잘못은 시대적 비극이다. 소설속 일본인들은 한국인 차별에 익숙한 보통사람이다. 그 차별의식은 개인의 악이 아님을 작가는 곳곳에서 묘사한다. 선자가 길거리에 처음으로 김치수레를 끌고 나간 날 그녀의 김치를 나서서 사준 것은 옆자리 일본인 백정이었고 그는 김치를 맛있게 먹으며 선자의 장사를 응원했다. 이민진은 다수의 공개석상에서 식민지 역사를 가진 나라를 모두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리석다 했다. 진짜로 잘못된 것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부정직함이다. ‘파친코’의 역사는 한국인들도 일본인들도 모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정직히 진실을 말해야 하며, 이를 통해 화해와 연합을 이룰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녀는 ‘파친코’를 읽는 독자들이 글 속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내길 원하며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상처가 있다면 자신과 타자를 모두 용서해 보라고 권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토대로 이야기를 쓰고 왜 이런 이야기를 써야만 했는지 설명하는 이민진의 태도는 소설 속 선자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기 삶으로 살아낸 이민진은 ‘파친코’라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배려와 타자배려를 실천하는 윤리적 진실말하기를 완성한 것이다.

 

※참고자료

[주체의 해석학] 미셸푸코 / 심세광 / 동문선 / 2007

[진실의 용기] 미셸푸코 / 연구공간우리실험자들 / 2017

[파친코] 이민진 / 이미정 / 문학사상 / 2018

[딕테] 차학경 / 김경년 / 어문각 / 2004

[여성 윤리 주체의 자기 체현 기술, 자기 배려주체와 성담론을 중심으로] 김분선(중앙대학교) /한국여성철학 제29권 / 2018

[자기 배려의 도덕교육]고미숙(한남대학교) /윤리연구 제80호 / 2011

[딕테에 나타난 디아스포라 의식] 이덕화 / 한국문예비평연구 / 2009

[하버드 방문한 이민진 작가 인터뷰] https://youtu.be/AbiccoRW5JM

[이민진 작가가 한국인들에게 인정받았을 때 가장 기뻤다고 말한 이유] https://youtu.be/VyKEUFomw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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