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감정이입>
감정이입충동이 인간과 외계 현상 사이에 행복한 범신론적인 친화관계를 조건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추상충동은 외계 현상으로 야기되는 인간의 커다란 내적 불안에서 생긴 결과이다.
추상충동에 있어서는 자기포기의 강도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철저한 것이다. 이 경우 감정이입의 욕구에서처럼 개인적 존재를 포기하려는 충동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 확고부동한 것을 관조하므로서 인간존재 일반에 있어서의 우연적인 것, 즉 일반적인 유기적 존재에 나타나는 자의(恣意)를 포기하려는 충동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다.
Q: 개인적 존재 포기가 아니라, 자의의 포기라면, 개인적 존재와 자의(제멋대로 하는 것?)는 어떻게 다를까요?
외계의 개체를 그 자의성(恣意性)과 외견적(外見的) 우연성으로부터 추출해서(: 자의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대상을 순화(純化)한다.) 이것을 추상적 형식에 맞춤으로 영원화하며, 그래서 현상의 흐름 속에 정지점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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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충동 = 미적 향수 = 유기적인 것 = 객관화된 자기 향수
*추상충동 = 자기미(自己美) = 무기적인 것, 결정적인 것 = 추상적 합법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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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망망하고 엷은 먹빛의 세계를, 몇 줄기의 은전(銀箭)이 엇비슷이 달리는 속을 흠뻑 젖어서 가는 나를 나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생각한다면 시도 되고 하이쿠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잊어버리고 온전히 객관으로 눈을 돌릴 때 비로소 나는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자연의 경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20)
Q:: 여기서의 작가는 ‘추상 충동’을 말하는 듯 합니다. 특히 “자기를 잊어버리고 온전히 객관으로 눈을 돌릴” 때는 ‘객관적인 자기 향수’를 넘어선, 철저히 ‘객관적인 향수’로 “무기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기적인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일부,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Q:: 감정이입충동에 따른 결과가 ‘인정’이라면, 추상충동에 따른 극점/상태는 ‘비인정’이라 할 수 있나요?
Q:: 인정/비인정/몰인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인정이 인간사의 세속적인 것이라면, 비인정은 사물화된 상태, 추상적인 상태, 인간 너머의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까요? 몰인정은 흔히 사용하듯 인정이 없음이라고 보면 될까요?
Q:: 제목 ‘풀베개’는 “몰인정한 나”가 “비인정의 여행”을 다니는 것을 뜻하는데, 비인정의 여행이 찾는 것은 그림 대상이 아니라 그림 자체가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듯 합니다. 이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문명비판, 도쿄비판, 전쟁비판을 전제하고, 자연을 통한 비인정의 세계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그 가능성을 인간의 연민/동정/“애련”에서 찾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