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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나

<변신>을 다시 보니...

 

<카프카의 일기> 27쪽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코미디언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재능이 없는 사람들만이 코미디를 연기한다" 카프카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코미디를) ...! 꿈을 꾸었을지도. 바로 다음 일기에선 쓰러진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도저히 피로를 이길 수 없는, 게다가 상사의 괴롭힘을 견딜 수가 없는 이  끔찍한 이중생활이라 쓰고 정신이상만이 출구라고 쓴다. 누가 봐도 이 때 <변신>의 모티프가 태어난다. 그리스 고전처럼 사건의 중심으로 바로 가버려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팔다리를 만들고, 악마를 부르기도 하고, 사표 내는 날을 꿈꾸며 파격의 변신을 한다. 봉준호의 <괴물>에서 초반에 시원하게 괴물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 설정의 전승일지도 모르겠다. 

블랑쇼의 말 중 두 가지가 꽂힌다. 발제에선 이 부분들을 축소했다. 여기서 얘기하려고.

<카프카에서 카프카로>

81쪽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글조차 궁극의 가능성을, 미지의 승리를, 다가갈 수 없는 요구의 빛남을 표현하기 위해 글의 흐름을 뒤집을 준비가 되어 있다. 부정적인 것을 파고 들었기에 그는 거기에 긍정적인 것이 될 기회를, 단 한 번의 기회를, 실제로 끝내 실현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반대되는 것이 끊임없이 드러나 보이는 그러한 기회를 부여한다. ... 엿보이자마자 빠져나가고, 거짓처럼 보이고, 새로이 긍정을 가능하게 하면서 긍정으로부터 배제되는 긍정."

 

잠자의 극도의 고난. 벌레처럼 그의 등에 얹힌 가족들. 그들과 역전되는 상황을 만들고 끔찍한 상황에서 그의 혼자만의 희극. 낙천적 여유, 발랄한 호기심.(동생은 언제 저렇게 옷을 빨리 갈아입었을까? 등), 벽타기 놀이, 유일하게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생물. 실소를 자아내는 희비극. 정신 이상의 출구가 아닌 몸으로의 탈출, 글을 쓰는 탈출, 탁월한 수단이다.  빛과 어둠의 교차 속에서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고, 희망과 절망의 끝없는 응답의 교류.가라앉는 회오리. 실존. 떨어짐. 추락 속에서도, 먼지 속에서도, 창고가 된 서식처에서도 이어지는 삶과 탐구. 바닥과 벽과 천장을 넘나드는 갇힌, 닫힌 경계 안에서의 경계의 확장. 탐구와 유영의 놀이의 삶

 

86쪽 "희망은 금지되지 않기 때문에 희망에 가장 처절하게 고통을 가하는 작품." 

있으나 없는 것.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 극한의 벼랑에서도 희망으로 떨어진다. 죽는다. 불가능성의 가능성. 희망을 진정으로 절망하지 않아 절망도 희망도 없다. 목표가 없는 고통.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계속되는 실존에 오늘의 잠자들은 그의 마지막 숨을 계승하는 운명인가? 

 

질문:  예전엔 마지막  누이 장면에서 이제 부모가 이 아이에게 의지해서 살겠구나. 그러나, 얘는 아예 잠자처럼 혹사당하기 전에 일찌감치 부모와 분리를 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86쪽

"여동생의 몸짓은 생명을 깨우고 환희를 부르며, 더 없이 소름끼치는 혐오의 극치를 가져다준다. 이것은 저주 자체이고 갱생이자 희망이다."

잠자와 누이는 이 비정한 부모에겐 자식이란 같은 지위가 있다. 

그녀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가. 그녀는 제 2의 잠자가 아니라 다른 육체인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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