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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min

<1912년 9월 24일 – 선고가 쓰인 2일 뒤의 일기>

내 누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집은 우리 집과 매우 비슷하네.”

내가 말했다. “어째서? 그런 곳에서라면 아버지는 변소에 사셔야 할 텐데.”

(나는 카프카의 의문이 짗궃은 농담처럼 들렸다. 독일 사람들의 농담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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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 선고 속의 아버지는 아버지(타인)가 아니다. 아버지는 곧 ‘나’의 일부이며, 나의 심연(어두운 방과 더러운 옷, blank-it을 뒤집어쓴)이며, 무의식이며, 퇴폐적인 인간이며, 동시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길이다. 그는 작품을 쓰는 오른손이며, 아내는 죽었으며, ‘나’의 어두운 에로스(욕망)를 꿰뚫으며, 그의 친구는 망했으며, 늙었다(죽음에 가깝다).

 

 

게오르크는 ‘나’가 아니다. ‘나’의 일부이며, 우정을 나눌 친구가 있으며, 성스러운 약속을 한 상대가 있으며, 성공했으며 풍족하다. 그는 작품을 쓰지 못하고 구겨버리는 왼손(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이며, 젊은이의 욕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나는 마지막의 교량에서의 낙하하는 자신의 젊음과 저주해야 마땅할 사람을 향해 끓어오르는 사랑은, ‘나’안의 타인(사르트르적 지옥 혹은 저세상)과 ‘나’안의 세상(혹은 공동체)간의 피할 수 없는, 끊임없는(unending), 필연적인 교차 혹은 교류(블량쇼에 해석에 따르면 창작)를 말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후에 질문을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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