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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14장 발제

조영권 2019.11.04 17:15 조회 수 : 80

14장.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유한양태의 표현적 삼항관계(첫 번째): 본질, 관계, 외연적 부분들

유한양태의 표현적 삼항관계(두 번째): 본질, 변용 능력, 변용들

 

신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신체의 변용 능력의 본성과 한계들이다. 

 

실존 양태와 신적 실체의 차이는 무엇인가? 첫째, “무한히 많은 방식”과 “매우 많은 방식” 둘째, 신은 그의 모든 변용의 원인이고, 그 변용들은 겪을(수동) 수 없다. 그러나 실존 양태의 변용은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동이다. 셋째, 신의 변용 관념은 원인으로서 신의 본질을 표현한다. 그러나 양태의 변용 관념은 원인, 즉 외부 물체의 본성 혹은 본질을 표현하지 않는다. 우리 신체의 변용은 단지 신체적 이미지일 뿐이고, 우리 정신 안에 있는 그 변용에 대한 관념은 단지 부정합한 관념 혹은 상념일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변용 관념에서 필연적으로 정서 affects 혹은 감정 affectus 이 파생한다.

 

우리가 갖는 관념은 사실은 우리 신체 구성의 현실적 상태를 지시한다. 우리 신체는 실존하는 동안 지속하며 지속에 의해 정의된다. 우리 신체의 상태를 지시하는 모든 관념에는, 그 상태와 과거 상태와의 관계를 함축하는 다른 종류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감정은 그 자체로는 관념인데, 지속하는 실존 양태의 변화를 함축한다.

 

따라서 양태에게 주어지는 변용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신체의 상태 혹은 그 상태를 지시하는 관념이고, 다른 하나는 신체의 변화 혹은 그 변화를 함축하는 관념이다.

 

인간에게 먼저 주어지는 관념들은 수동적 변용들이며, 부적합한 관념들 혹은 상상들이다. 그것들에서 파생하는 감정 혹은 느낌들은 정념들, 그 자체로 수동적인 감정들이다. 부정합한 관념은 우리가 원인이 아닌 관념이다.

 

적합한 관념들을 갖는 한에서 우리 정신은 필연적으로 어떤 것들에서 능동적이고, 부정합한 관념들을 갖는 한에서 우리 정신은 필연적으로 어떤 것들에서 수동적이다. “우리는 어떻게 능동적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윤리학 고유의 문제는 “우리는 어떻게 적합한 관념을 산출할 수 있는가?”라는 방법론적 문제와 연결된다.

 

--

 

유한 양태의 변용 능력이 수동적인 변용들에 의해서 실행되는 동안 그 능력은 겪는(수동적) 힘 혹은 역량으로 나타난다. 신체의 겪는 역량에 상당하는 영혼의 역량은 상상 역량과 수동적 감정을 느끼는 역량이다.

 

수동적 변용과 능동적 변용의 비율과 관계없이 변용 능력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첫째, 변용 능력이 동일한 가운데 수동적 변용과 능동적 변용의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 두 역량의 비율이 달라지면서 두 역량이 변용 능력을 구성한다. 둘째, 변용 능력은 동일한 가운데 겪는 역량과 작용 역량이 반비례 관계로 구별되는 원리를 형성하는 것은 변용 능력의 양단의 한계 내에서만 그렇다.

 

라이프니츠는 “파생적 힘”이라고 하는 물체의 힘은 이중적이라고 제시한다. 작용하는 힘과 겪는 힘, 능동적 힘과 수동적 힘. 수동적인 힘은 능동적인 힘으로 긍정되고 표현되는 본질의 제한을 의미한다.

 

스피노자 역시 겪는 힘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긍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무능, 우리의 예속, 즉 우리의 작용 역량의 최저 정도이다. 실존 양태에서 본질은 작용 역량과 동일한 것이고, 작용 역량은 변용 능력과 동일한 것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두 가지 기본적 착상이 양립한다. 첫째, 자연학적 착상.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변용 능력은 동일한 본질에 대해서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러나 둘째, 윤리학적 착상에 따르면 변용 능력은 양단의 한계 내에서만 일정하다. 따라서 유한 양태의 표현적 변화는 변용 능력의 역학적 변화이기도 하고, 본질 자체의 “형이상학적” 변화이기도 하다. 즉, 양태 자체가 실존하는 동안에, 어느 순간 그것에 속하는 변용들에 따라서 그것의 본질 자체가 변할 수 있다.(본질의 변용)

 

따라서 윤리학적 물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변용들을 할 수 있는지, 우리의 역량이 어디까지 이르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는 추론을 통해 작용 역량이 우리의 본질의 유일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앎은 추상적 앎에 그친다. 능동적 존재가 되려고 구체적으로 시도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

 

라이프니츠는 피조물을 무능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스피노자 체계의 특징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양태 관념 자체는 결코 피조물의 고유 역량을 박탈하는 수단이 아니다. 신의 본질 자체가 인간의 본질에 의해서 설명되는 한에서만 인간의 역량은 신의 역량 혹은 본질의 한 “부분”이다.

 

->라이프니츠의 비판과 그 비판의 애매성에 대하여

->실존 양태의 변용은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 수동이다.(p263) 그런데, 신의 역량 혹은 본질의 한 부분인 인간의 역량이 수동일 수 있는가?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는 하나의 기획을 공유한다. 데카르트에 반대하는 새로운 자연주의 기획.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자연에서 모든 잠재성, 모든 내재적 능력, 모든 내속하는 존재를 박탈함으로써 자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존재를 자연 밖에서, 자연을 사유하는 주체 안에서, 자연을 창조하는 신 안에서 찾는다. 

 

반대로 반데카르트주의적 반발에서는 힘 혹은 역량을 지닌 자연의 권리를 복권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모든 역량은 현실적이고 현행적이지 신비한 실체에 기대는 잠재성, 혹은 그것을 실현하는 영혼 혹은 정신들에 기대는 잠재성이 아니다. 

 

라이프니츠의 경우, 새로운 계획은 세 가지 다른 수준에서 실현된다. 기계론, 힘, 본질.

 

우선 물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형태와 운동을 통해 기계적으로 일어난다. 운동들 자체는 힘들을 전제하며, 그 힘들이 없이는 물체들이나 그 모양들이 서로 구별되지 않을 것이다. 파생적인 힘은, 일종의 근원적 힘 혹은 개체적 본질에 해당하는, 순간들-계열의 법칙에 준거한다. 그 본질들은 결국 진정한 자연의 형이상학을 형성한다. 그것은 자연학에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그 자연학 자체에 대응하는 형이상학이다.

 

-> 개체적 본질에 해당하는 순간들-계열의 법칙이란? 형이상학은 자연학과 어떻게 구분되나?

 

스피노자에서도 기계론, 힘, 본질의 세 수준에서 자연주의적 계획이 실현된다. 두 철학자의 진정한 대립은 스피노자주의가 피조물들의 모든 능동력과 모든 활동성을 박탈한다고 주장하는 라이프니츠의 일반적인 비판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 실천적인 이유이며, 악과 섭리와 종교 문제에 관한 것이고, 철학 전체가 맡아야 할 역할의 실천적 개념화에 관한 것이다.

 

-> 실천적인 이유, 철학이 맡아야 할 역할의 실천적 개념화란 무엇인가?

 

핵심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코나투스 개념에 있다. 라이프니츠에게 코나투스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자연학적으로, 물체가 운동하려는 경향이며 형이상적적으로, 본질의 실존 경향이다.

 

스피노자에게 코나투스는 그럴 수 없다. 양태의 본질들은 실존으로 이행하려는 어떤 경향도 함축하고 있지 않다. 양태는 외연적 부분들이 그를 특징짓는 관계 아래 들어가도록 외부에서 결정될 때 실존하게 된다. 그때, 오직 그때만 양태의 본질은 코나투스로서 결정된다. 실존 물체를 고려하면, 코나투스는 운동하려는 경향일 수 없다. 단순 물체들의 운동은 외부에서 결정된다. 

 

코나투스의 역할적 특징은 기계론적 특징들과 연동된다. 합성된 물체의 코나투스는 그 물체가 매우 많은 방식으로 변용될 수 있게끔 그 물체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코나투스는 매 순간 경험하는 변용들과 분리될 수 없다. 이로부터 두 가지 결과가 뒤따른다.

 

어떠한 변용이든, 그것이 코나투스 혹은 본질을 결정한다고 이야기된다.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주어지는 변용 또는 감정에 의해 결정되는 한 코나투스는 “욕망”이라 불린다. 그러한 것으로서 코나투스는 필연적으로 의식이 수반된다. 

 

-> 주석 33. 욕망의 명목적 정의, 실재적 정의에 대하여

 

우리의 변용 능력이 수동적 변용에 의해 실행되는 동안 코나투스는 정념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우리의 작용 역량은 작동하는 중이다. 수동적 변용이 무능력의 증거이지만, 비록 낮은 정도라 하더라도 우리의 작용 역량의 어떤 정도를 함축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코나투스는 언제나 작용 역량 자체와 동일하다. 코나투스의 변화는 작용 역량의 역학적 변화이다.

 

-> 수동적 변용이 작용 역량을 함축한다? 코나투스는 욕망(수동 역량)이자 작용 역량이다?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의 실제 차이, 실천적 대립의 원인이 되는 이 차이는 무엇인가?

 

기계론은 한편으로는 작용하는 역량과 겪는 역량의 변화에 의해서 정의되는 변용 능력의 역할에 관련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량 정도들로서 정의되는 개별적 본질들의 자리매김과 관련된다.

 

라이프니츠가 사물들에서 내속적이고 고유한 힘을 인식할 때, 그는 개체적 본질들을 그 수만큼의 실체들로 만들어서 그렇게 한다. 스피노자는 반대로 개별적 본질들을 양태들의 본질로 정의해서,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물들 자체를 유일 실체의 양태들로 만들어서 그렇게 한다.

 

라이프니츠에서 기계론은 기계론을 넘어선 것에, 부분적으로 초월적인 어떤 목적성의 요구들에 준거한다. 본질들이 실체들로서 규정되고, 본질들이 실존으로 이행하려는 경향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는, 본질들이 목적성의 질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본질들은 신에 의해 선택되고 이러한 선택에 종속되기도 한다. 

 

스피노자에게 기계론도 기계론을 넘어선 것에 연관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내재적인 순수 인과성의 요구들에 대한 것이다. 내재적 인과성의 관점에서 양태들은 힘과 본질이 결여된 가상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역학과 “본질주의”는 어떠한 목적성도 단호하게 배제한다. 양태의 완전한 삼항관계는 1) 양태의 본질은 특징적 관계 속에 표현된다. 2) 이 관계는 변용 능력을 표현한다. 3) 그 관계가 계속 교체되는 부분들에 의해서 구현되듯이, 변용 능력도 가변적 변용들에 의해서 실행된다.

 

자연 안의 모든 것은 “자연학적”이다. 양태의 본질에 대응하는 강도량의 자연학, 외연량의 자연학(그것에 의해서 양태들 자체가 실존으로 이행하는 기계론), 힘의 자연학(그것에 의해서 양태들 자체가 실존으로 이행하는 기계론), 힘의 자연학(그것에 의해서 본질이 작용 역량의 변화에 따라 실존상에서 긍정되는 역학). 자연에서의 표현은 결코 목적론적 상징작용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인과적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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