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에세이자료집] 2019인사원_니체 :: 너희가 니체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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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acle | 2019.01.31 | 6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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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인문학 강좌후기-이진경 선생님은 지식의 직조술가
[1] | 박여사 | 2011.05.03 | 6821 |
1504 |
불온한 인문학 강좌 후기- 온코마우스,시뮬라크르의 윤리학/ 원본과 복제에 관하여
[1] | LIDA | 2011.05.11 | 6683 |
1503 |
[상상된 도시] 첫 번째 시간 후기!
| 도경 | 2017.09.15 | 3661 |
1502 |
[2016-1학기 인사원] 예술철학 :: 8주차 발터 벤야민(사진의 작은 역사)
[1] | 지훈 | 2016.04.28 | 26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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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한무지 제1권 제18장 ~ 제26장 발제문 올립니다.
| 좋은날떠나요 | 2013.04.15 | 1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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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정치철학] [7주차]쪽글_효영
| 효영 | 2018.04.22 | 1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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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1] | minhk | 2018.10.29 | 1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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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에 관하여 - 레비나스(닉네임:편지)
| 편지 | 2016.09.22 | 1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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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이전/이후] 15강『공산당 선언』 발제(요약)
| muse | 2019.06.26 | 1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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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에세이입니다.
[1] | 노을 | 2021.01.15 | 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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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학기 인사원] 예술철학 :: 13. 빌헬름 보링거<추상과 감정이입>
| 아노말리에 | 2016.06.09 | 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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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하이데거, 『강연과 논문』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 시적으로 거주하다...발제
| 졍 | 2021.05.17 | 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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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학기 인사원] 예술철학 :: 4주차 쪽글: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 지훈 | 2016.03.31 | 758 |
1492 |
[차이와 반복] 10주차- 들뢰즈의 칸트 이념 해석
| 힐데 | 2017.11.16 | 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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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학기 인사원] 예술철학 :: 컴퓨터게임과 공감장치의 발명 (인사웟 엣세이 제출)
| 꽁꽁이 | 2016.07.11 | 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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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학기 인사원] 이데올로기와 주체 :: 인사원 에세이 수정본...
| id | 2016.07.30 | 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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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정치철학] [9주차] 아감벤 <예외상태>
| yeony | 2018.05.14 | 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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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뱅퇴유 소나타의 소악절을 찾아서
[3] | 로라 | 2018.10.17 | 718 |
1487 |
[2016-1학기 인사원] 예술철학 :: 최초의 소음악기, Intonarumoris 1913, 루이지 루솔로 발명
| 꽁꽁이 | 2016.04.22 | 6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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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학기 인사원] 예술철학 :: 에세이_수정본
| 김효영 | 2016.07.31 | 669 |
1. 들뢰즈 철학에 기반하여 '탈식민주의'를 사고하는 시도가 이 책의 6장에서 전개되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패튼의 시도는 최근의 '탈식민주의' 사유의 핍진성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탈식민주의 사고는 사법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인식론적 차원, 실존적 차원에서 피식민성의 내면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들뢰즈가 소용된다면, 이 방면일 것 같아요. 푸코를 넘어 탈식민주의 사유를 전개하자면 더 그럴 것으로 보입니다.
2.라캉과 들뢰즈/가타리의 '대립'이라기보다는 후자가 전자를 이론적으로 포획한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라캉이 끝까지 전개한 구도는 프로이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상당부분 '신플라톤주의적'인 위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욕망을 결여 상태로 놓아 두어야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절대자'(대타자)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후자의 경우 그러한 대타자의 필요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욕망은 그 스스로 생산하고, 변신하고, 사회체의 구석구석에 흘러들어갈 수 있게 되지요. 결과적으로 결여로서의 욕망이란 생산으로서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기계의 어떤 배치에 의해) 빙퉁그러진 상태일 뿐이지요. 이것이 제가 말한 '포획'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 문제는 이러한 들뢰즈/가타리의 '생산하는 욕망'이 현실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