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불온한 페미니즘 : 다나 해러웨이와 그 친구들' 네 번째 시간 공지입니다!
강의는 4월 1일 월요일, 늦은 7시 30분부터 2층 대강의실에서 진행되어요.
(수유너머 오시는 길: http://www.nomadist.org/s104/index.php?mid=board_YQeO19&document_srl=1503)
지난 시간에는 해러웨이의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읽었어요.
과학 담론은 여성과 birth의 관계를 자연적이고 결정론적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성/젠더나 여성 문제에서 과학은 논외였다고 해요. 당연한 것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으니까요.
이때 페미니즘 진영에서 과학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제기되었어요.
한 쪽은 과학이 진보를 이룰수록 과학 기술의 힘을 빌어서 자연학적인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성/젠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다른 쪽에서는 과학 담론은 남성 중심의, 나쁜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었다고 보았어요.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과학 기술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남성이잖아! 순진한 소리라고 비난했다고 해요.
해러웨이는 이들과는 또 다른 입장에 서요. 앎는 구성되는 것이고, 해방적인 세계를 위해서 다른 과학을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요.
해러웨이는 앎이 어떻게 억압의 기제(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가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그 앎으로 어떻게 해방적인 관계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지금의 과학을 완전히 부정하는, 반(反)테크노 사이언스가 아니라 테크노 사이언스 내부에 어떻게 구멍을 낼 것인가, 동시대적 내파를 통해서요.
테크노 사이언스에 대한 앎을 이용해서 어떻게 인종, 성, 계급들을 다르게 재배치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질문을 던진 것이죠.
(후기를 위해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오는 네 번째 시간에는 샌드라 하딩의 <페미니즘과 과학> 1장, 5-7장을 읽어요.
발제는 소라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어요. 많은 양인데 단독 발제를 하게 되셨네요.
간식은 조금씩 다 함께 준비하면 좋겠어요. 그럼 오는 월요일 저녁에 뵈어요!
반장님이 지난 시간 리뷰를 잘 해주셨네요.
지난시간에 본 것처럼, 테크노사이언스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은 양분되어 있었어요.
임신출산의 자연학적인 한계를 테크노사이언스가 해결해 줄것이라는 계몽적인 기획과
임신출산의 권리마저 남성적 권력인 테크노사이언스에 빼앗기면 여성의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 없다는 비판.
전자의 기획의 대표적인 예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인데 금방 후자에 의해 반박당합니다.
그런데 "테크노사이언스 만세"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거울쌍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봐 주세요.
지난 시간에 좀 아쉬웠던 점은,
맑시즘 사전속의 젠더에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하는 바람에 정작 <사이보그선언>의 중요한 부분을 많이 못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사이보그선언>의 내용은 계속 다루어질 것이에요.
<선언>에서 아직 뿌연 것들은 앞으로의 시간들에서 점점 명료화 해 보도록 해요.
하당의 <페미니즘과 과학>은 해러웨이의 사이보그선언에 대한 논평이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이책에 대한 논평을 포함하는 글이 해러웨이의 <상황에 놓은 지식들(Situated Knowledges)>이고요.
<페미니즘과 과학>에서 하딩은 자신의 인식론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도래할 페미니스트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이후에는 자신의 인식론을 <입장론(standponit theory)>로 명확하게 정리하죠.
<페미니즘과 과학>에서 페미니스트 경험론과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자세하게 다루고, 그것에대한 포스트모던의 비판도 다룹니다.
페미니스트 경험론의 문제의식과
페미니스트 입장론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