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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안녕하십니까, 박소영입니다.

저는 4강 진도 부분 중에서, 특히 6장에 눈길이 많이 갔습니다. 저는 해러웨이의 ‘반려종’이라는 용어가 ‘반려’라는 어휘의 일반 용례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다소간 오인되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종과 종이 만날 때』의 전(前)반부 핵심 내용들이 대부분 인간 이외의 동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해러웨이는 있을지도 모를 그런 식의 오해를 얼마간 불식할 수 있는 이야기로 6장을 꾸렸습니다. 반려종의 함의와 반려종적 사유가 동물, 인간, 심지어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까지 모두 포괄하는 물질(작용)에 관한 철학하기임을 재확인시켜주었다고나 할까요. 제게는 그렇게 읽혔습니다.

저는 해러웨이를 읽을 때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격려와 위안을 받습니다. 그 자유로움을 어떻게 손뼉치고 즐거워하며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지, 어떻게 설명해낼 수 있을지, 아직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안타깝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저의 모자람이 부끄럽습니다.

그나저나 한두 대목을 추리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니요. 안간힘을 써서 두 대목만 선택하였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보았고 경험했던 이런 적극적인 보기/관심갖기(둘 다 라틴어에서는 동사이며, 레스페체레respecere와 레스펙투스respectus가 된다)라는 어조에 이끌리고 있다. 이런 종류의 관심이 갖는 구체적인 관계성이 나의 주의를 붙잡는다: 관심을 갖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중히 여기기, 뒤돌아보기, 계속 관심 갖기, 계속 지켜보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느끼기, 유념하기, 보살피기. 이런 종류의 관심은, 모순어법적이고, 필수적인 ‘관계성 속의 자율성’을 해방하고, 동시에 그 속으로 해방되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205)

“반려종—온갖 종류의 세속성과 신체성 속에서 아래로도 쭉 함께 형성되는—은 그 속에서는 모든 종류의 종이 문제시되는 비-휴머니즘을 위한 나의 어색한 용어이다. 내게는, 우리가 사람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때조차, 동물/인간/살아있는 것/살아있지 않은 것의 카테고리 분리는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는 조우 속에서 풀어져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다. 내가 이야기하고 쓰려고 하는 윤리적인 관심은 다양한 종들의 차이를 횡단하는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다. ... 반려종은 영원히 논증 불가능한 카테고리, 그 관계를 존재와 분석의 최소 단위로 주장하는 ‘의문시되는 카테고리’이다. 캐런 배러드의 행위적 실재론과 내부-작용에 관한 이론에 빚져서 생각하는데, 종이라는 말로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것의 지위가 인공물, 기계, 풍경, 유기체, 인간과 같은 식으로 미리 결정될 수 없는 일종의 내부-존재intra-ontics/내부-익살스러운 행동intra-antics이다.”(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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