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도 ‘어펙트’ 라는 개념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용선쌤의 열강을 듣고 있는 처지다. 첫 시간에 이 강의를 듣기로 결정한 동기나 자신이 천착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하자는 용선쌤의, 어쩌면 당연한 말씀을 들었는데 갑자기 당황했다. 언제나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이것저것 산만하게 뒤적인다, 라고 생각하는 나의 공부 동기에 어쩌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그저 혼자 산만하게 부유하는 사람이다, 라는 정체성의 문제 같은 것.
지난 시간에는 보들레르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는 <민중의 아름다움> 이라는 글이 기억에 남았다. “3일 전부터 파리 주민에게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만한 것이 있다. 계속 되는 철야와 피로가 신체를 약화시킨다. 그러나 제 권리를 다시 획득했다는 감정이 신체를 바로 세우고 머리를 높이 치켜들게 만든다...” 박근혜 탄핵을 외치던 몇 해 전 겨울의 광화문에서 마주친 나의 세대 아저씨 아줌마들에게서 어떤 신체적 고양감 같은 것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벤야민의 “군중은 경멸받은 사람의 가장 최근의 안식처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버려진 사람들의 가장 최근의 마약이기도 하다. 거리 산보자는 군중 속에 버려진 사람이다.” 라는 언급에 이어, 보들레르의 시대에 산책과 여행은 노동자에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며, 예술가나 룸펜에게나 가능했으리라는 용선 쌤의 말씀을 들으면서, 요즘은 산책과 여행이 소비를 위한 ‘상품’이 되었으니, 여전히 노동자에게는 빈둥거림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생생하고 맛깔스런 후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