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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핵심 논리인 공(空), 중도(中道) 그리고 중론(中論)의 순으로 배우게 되었고, 세 가지 모두는 인연생기(因緣生起)라는 연기법 한 가지로 관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가르주나가 말하는 중도나 중관은 이렇게 망상을 없애고 세상을 보는 방법이다. 처음엔 연기론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我)’라는 존재에 빠져 있었기에 나의 개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연기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연기는 원인이나 조건을 통해서 사물이나 사건이 발생하고 변화하고 소멸한다는 의미다.

중도란 무엇인가(틱낫한 지음)의 책을 읽어보면, “중도는 ‘바른 견해’이고 ‘바른 생각’이다. 중도는 ‘바르다’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바르다’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사실을 달리 보거나 해석하는 것은 ‘바르다’고 할 수 없다. ‘무소유’가 자신이 소유한 것을 하나씩 버리는 것이라면, ‘중도’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견해들을 하나씩 버리는 것이다. 견해를 버리는 것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연기라는 것으로 귀결 합니다.”

중론에서는 모든 삶들은 함께 어울린 것에서 스스로의 삶은 있을 수 있으며(緣起), 어울림을 떠나서 개체 만으로서의 삶은 있을 수 없다(空)는 것이다.

‘공성에 대한 바른 관찰’에서 보면 ‘중中에 대한 관觀’이란 수행자가 그때까지 습관적으로 쓰고 있던 언어 개념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을 멈추기 시작했을 때 시작되는 것 입니다. 이미 말해진 진리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란 무엇인가?’, ‘언어가 진리를 가리킬 수 있는가?’ 등등에 대한 물음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2강에서 배운 오온, 육계에 대한 관찰,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에 대한 관찰 및 삼상에 대한 관찰이다.

우선 개념을 보면 오온은 불교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요소인 4온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오온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가지다.

육계(肉髻)란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요소로서 지. 수. 화. 풍. 공. 식입니다. 세계를 6가지의 구성 요소로 환원하여 보는 것입니다.

삼상은 생生. 주住. 멸滅의 세 가지이다.

 

* 오온에 대한 관찰

오온에는 마음에 해당되는 항목으로 수. 상. 행. 식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 이외의 마음이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이 네 가지 활동, 곧 감각 지각인 수受와 모습을 그리는 상想과 이름 붙일 수 있는 보편성을 형성하는 행行과 알아차리는 인식識이 함께 어울려 마음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의 작용이 마음입니다. 아울러 이 마음도 색을 떠나서는 마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과 색으로 환원되는 순간 일상의 ‘나’를 이루는 마음과 색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온의 관찰은 몸의 흐름을 자세히 보는 것이고 그 흐름을 관찰하여 과거에 익혀온 행의 작용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 것이 마음을 쉬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곧 보고 듣는다는 것이 주시와 집중이라는 조건의 다름에 따라 지금까지의 경험과 다른 상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보고 듣는 대상을 만드는 경험을 통해서 대상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 그와 같이 보고 들리는 것뿐이라는 것을 학습하게 됩니다.수시와 집중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바르게 보게 하고(定見) 해탈로 이끄는 큰 힘입니다. 오온에 대한 관찰 곧 몸과 마음에 대한 바른 주시(正念)가 해탈에 이르는 바른 길이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 육계에 대한 관찰

육계에 대한 관찰은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육계가 세계다’라는 대답에 따라 그렇다면 ‘육계란 무엇인가’라고 다시 묻는 것이라 할수 있다. 육계란 세계를 구성하는 근원적인 요소로서 지. 수. 화. 풍. 공. 식입니다. 세계를 6가지의 구성 요소로 환원하여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과 에너지는 등가라고 하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물질은 에너지의 특별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초끈이론 에서는 에너지와 물질을 이루는 근본 요소로 초끈이라는 것을 상정하고, 그 끈의 진동 패턴에 따라 쿼크라는 소립자가 생성되며, 그 소립자들에 의해서 양성자나 중성자 등이 생성되고 이들이 모여 원자가 생성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곧 초끈이 물질 규명의 최소 단위라고 가정한다면 그 아래는 물질이라고 할 수 없는 영역이 될 것입니다. 물질로 보면 완전한 무(無)의 영역이겠지만 이 영역이 도리어 만물의 모태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무가 특별한 인연의 작용으로 움직이는 순간 초끈이 생성되고 초끈의 진동 패턴에 따라 쿼크라고 하는 소립자가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있음(有) 그 속에 없음이 자리잡고, 없음 그 속에서 있음이 드러난다고 사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주에는 보이는 물질보다 보이지 않는 물질이 훨씬 많으며, 이 물질의 무상한 인연 관계에서의 변화가 시간과 공간이 된다고 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우주가 만들어 내고 있는 하나의 물리량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공간 그 자체나 시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자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물질과 정신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너가 관계없이 나 또는 너로 존립할 수 있는 자성이 없는 것으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전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도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체란 부분들의 집합 이상이지만 그것도 부분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모두는 개체의 정체성을 가진 생명이면서 동시에 법계의 생명이 된 것입니다.

 

* 탐욕과 탐욕에 물든 자에 대한 관찰

중생은 깨달음을 통해서만 자성청정을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깨달음이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어떤 가르침만이 깨달음이란 사건을 경험하게 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 그 자체는 오직 깨달은 사람만의 삶일 뿐입니다. 어떤 가르침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수 있는 근거는 그 가르침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 가르침이 그 사람의 삶으로 표현되었을 때만이 위대한 것입니다.

삶이라는 명사를 쓰고 있지만 삶은 명사의 형태가 아니라 산다는 동사의 활용일 것입니다. 삶은 동일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닌 무상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알아차리는 앎이 생생하게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온 생명의 관계를 떠나서 현재라고 할 수 있는 현재가 없기 때문에, 타자화된 자신만의 현재를 사는 듯한 삶은 분명하지 못한 현재를 사는 것입니다. 현재를 산다고 하면서도 현재를 살지 못하고, 타자를 배제한 차이와 분별로 이루어진 지식 곧 기억된 지식(無名)의 활동(業)으로 사는 것입니다. 무명의 작용은 늘 현재이면서도 그것이 현재를 깨닫지 못한 삶이기 때문에 자성청정한 삶이 중생에게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앎이 곧 삶이 되는 것에서 그 앎의 활동에 온전히 깨어 있느냐 깨어 있지 않느냐는 차이일 뿐입니다.

깨달음으로 알아차리면 삶 전체가 그대로 깨달음이 되는 것이고, 무명의 깨닫지 못한 알아차림도 그 자체로 자신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성된 앎이 시작되는 순간이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탐욕도 잘못된 지(無名)의 활동으로 서로를 배제한 데서 발생한 청정하지 못한 것일 뿐이므로 사람과 탐욕이 각기 자성을 갖는 실재일 수 없습니다. 용수 스님께서는 탐욕과 탐욕에 물든 사람의 자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활동에 그 사람의 됨됨이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어디에도 자성을 가진 법으로서 물든 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삼상에 대한 관찰

그대가 “인연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모든 법은 삼상을 갖는다”라고 주장하는데 생이라는 법이 유의법, 곧 인연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라면 생겨나는 것(生), 머무는 것(住), 없어지는 것(滅)의 세 가지 모습을 가져야 하고, 생이라는 법이 삼상을 갖지 않는 무위법, 곧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어찌 유의법에 포함시키는가?라는 물음을 갖는다.

해석 : 모여 있다면 생과 멸이 같이 있으니 어둠과 밝음이 함께 있는 것과 같아 옳지 않다. 흩어져 있다면 모든 법은 삼상을 갖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곧 생이 있는 곳에 주와 멸이 없고, 주가 있는 곳에 생과 멸이 없고, 멸이 있는 곳에 생과 주가 없기 때문이다. 생과 멸이 성립되지 않으니 주도 또한 없다. 어떻게 삼상을 갖는 유위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새로운 한 생각이 홀연히 일어납니다. 새롭다는 말은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항상하지 않다(無常)는 것으로 변화가 삶의 흐름이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무상은 끊어지지도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는 무상이 됩니다. 현재의 일념一念에 주시와 집중이 된다면 과거도 바뀌고 미래도 새롭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연들이 시공간상에서 서로 어울려 원인으로 결과로 함께 작용하고 있으면서, 무상한 변화를 연출한다는 뜻에서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이 인연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수 스님께서 주창하신 무자성적 사유인 공성의 인연에서 보면 무상한 변화가 개체의 생명 작용이며, 변화의 생명활동이 그대로 공성이 된다는 뜻에서 전체의 인연이 생명이 됩니다.

현대의 시공간이 상대적인 물리량이 된다는 것과 연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간이 상대적인 물리량이라는 것은 모두들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간이 모두의 시간과 얽혀 있다는 데서 보면, 자신의 시간 속에 모두의 시간이 담겨 있으므로 그 시간이 인연의 총상에서의 시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과거가 되면서 미래가 사라지고, 과거가 되는 순간 미래를 걷는 것이 되는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현재를 산다는 것은 시간이 사라지는 곳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빛의 속도로 달릴 때 시간이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를 철저히 사는 것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는 삶인 것입니다.

실체로서의 법은 부정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은 습관적인 인식과 활동인 업의 내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업에 매인 삶을 살면서 끊임없는 생. 주. 멸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연기는  '나我' 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나를 뺀 타인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더불어 삶의 토대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기에 불교 이론의 핵심인 중론의 3강이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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