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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4강 후기)

조지아 2017.08.08 09:49 조회 수 : 143

루쉰은 '논쟁'가 이다. 좀 더 정확히는 논쟁의 대가이다.

그러나 분열과 파괴, 그리고 퇴행의 방향이 아니라, 우정을 위하여 그리고 상대에 대한 애정과 성장의 방향으로 이끄는 논쟁가이다.

최진호선생의 강의안을 요약해본다.

 루쉰이 1927년 광저우를 떠나 상하이에 정착한 이후, 창조사와 태양사의 문학청년들은 아Q시대의 종언을 고하면서 루쉰을 공격했다. 그러나 루쉰은 이들의 빈약한 비판과 게으름에 분노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혁명의 전위대를 자처했으나 현실의 노동자나 농민의 삶에는 무지한 프티부르조아였던 것이다. 잡문을 많이 썼던 루쉰은 수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다. 그는 전투적인 작가라면 반드시 논쟁에 치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기쁨, 웃음, 분노, 욕설이 다 문장이 되도록 해서 적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죽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루쉰의 삶은 논쟁속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는데 묻는 것은 중요하다. 물음이라는 것은 낯선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쉰은 매우 집요하고 성실하게 문제에 집중하며, 상대가 포기하겠다고 하는 순간에도 논쟁을 계속한다. 루쉰은 천위안과의 논쟁에서, 상대를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느낄 만큼 몰아간다. 그는 천위안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태도가 현실 긍정 혹은 현존하는 권력에 대한 긍정으로 낙착한다고 보면서, 양비론의 결과에 대해 비판한다.  루쉰은 천위안을 끝까지 몰고가나 싸움이 끝난 뒤에는 깨끗이 떠난다. 루쉰은 비평에 있어서 반드시 분명한 옳고 그름의 감각과 열렬히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문인은 서로 타협할 수 없으며, 옳다고 보는 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않은 바를 공격하고, 사랑하는 바를 힘껏 끌어안는 것처럼 더 강렬하게 싫어하는 바를 포옹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마치 헤라클레스가 거인 안테우스의 늑골을 끊어버리기 위해 꽉 껴안은 것과 마찬가지로라고 비유한다. 루쉰은 비평을 하는 사람은 마땅히 '구경꾼의 기분'을 버리고 분석을 가해 결국 어느 쪽이 보다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루쉰은 자기를 포함한 구시대와도 반목했고, 후계자인 청년들에게 마냥 관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한편으론 비판하면서 또 한편으론 끊임없는 노력과 성장을 권유했다. 어떤 환상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두 발로 길 위에 서라는 것이다. 그는 습속의 틀을 깨라고 주문한다.  적들과의 논쟁속에서 그들을 진흙탕으로 몰아갔고 그 속에서 자신들이 의식 못했거나 지나쳤던 욕망을 직시하게 했다. 그는 그들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깨게 했고, 본인 역시 자기자신의 껍질을 깨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그는 화합의 자리에서 조차 상대를 비판하는 말을 계속하는데,  진보혁명세력이라고 할 지라도 특정한 태도와 스타일을 고집하면 쉽게 우경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루쉰의 논쟁은 오히려 우정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루쉰의 논쟁적인 태도는 분명히 당시의 지식인들을 자각케했다. 

그러나 현실속에서 루쉰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까?

그는 상대에게 고통, 자괴감, 열등감, 분노 등을 일으켰을 것이다. '애'와 '증'이 교차하는 인물일 수 있다.

유교의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언행일치를 중시하는 바, 그 사람이 비록 바른 말을 할 지라도 그의 행실에 평소에 올바르다면 그의 말을 좀 더 받아들이고, 만약 그가 비록 바른 말을 할 지라도 그의 평소 언행이 부족하다면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루쉰처럼 집요하고 독하게 상대와 논쟁하면서 끝까지 몰아세우면서 진실을 눈뜨게 하는 '논쟁'의 방법이, 과연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용납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루쉰고리'가 있는 샤오싱(소흥)에 다녀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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