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강 후기 2021.04.30. 황
자유로운 죽음과 창조자의 길:
니체의 죽음에는 지금-여기에서의 죽어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육체적 죽음이든, 비육체적 죽음이든 지금-여기-우리는 죽어감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삶이 태어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저녁놀의 활활 타오름처럼', 하나의 죽어감은 새로운 아이의 탄생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니체의 ‘자유로운 죽음’은 산비탈에 서 있는 위험하고 고독한 ‘창조자의 길’과 함께 읽어진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허다하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덧없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니체의 이 문장을 블랑쇼는 카프카를 빌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내(카프카)가 글을 쓰는 것은 죽기 위해서이다. 죽음에 본질적인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가능성을 통해 죽음은 본질적으로 죽음이요, 불가시성의 근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내면에서 죽음이 글을 쓸 때뿐이다. 죽음이 나를 비인칭이 뚜렷이 확고해지는 공허한 텅빈 지점으로 만들어버릴 때뿐이다.”
니체의 여성상에 대한 얄궂은 의심
우리는 니체의 여성상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데리다에 의하면, 혹은 그날의 강좌에 의하면, 시대에 복종하는 여성상인 거세된 여성, 반시대적인 대결의 여성상인 거세하는 여성 그리고 비시대적인 생성의 여성상인 긍정적인 여성으로 분류된다. 니체는 그녀들을 두려워하기도, 사랑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혹은 나는 신체의 장소와 역사적 입장에 따라 나 자신의 안팎에서 많은 종류의 여성들과 연루되어 있음을 안다. 내 속에서 끊임없이 출몰하는 낙타의 무리와, 의아한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뜬금없는 사자와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길 잃은 아이처럼 그 여성들은 나와 연루되어 있음을 이제 나도 안다.
위험한 놀잇감, 그는 원한다, 표면과 깊이, 혼인, 임신과 출산, 자궁과 불임, 늙은 여인, 젊은 여인, 채찍...
니체의 이 용어들을 다르게 읽는 법을 배웠다. 다르게 시작해 보기로 한다. 차라투스트라처럼, 아이처럼, 길 잃은 사막에서의 모래 장난같은 놀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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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창조의 길에서 허다하게 요구되는 죽음'을 블랑쇼는 비인칭적 죽음으로 정의했지요! 이로써 그들은 죽음이 갖는 종말의 이미지를 밀고 나가, 낡은 것이 몰락하고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삶으로부터 '죽음'의 가치를 강탈하여, '생성과 몰락으로서의 죽음'을 새로 창조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로 하여금, 죽음이 갖는 생성의 이미지를 사유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최상의 덕'이 아닐까요? ㅎㅎ 이런 베품이 물질적이고 직접적인 베품보다 우리 삶을 더 건강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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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혹은 나는 신체의 장소와 역사적 입장에 따라 나 자신의 안팎에서 많은 종류의 여성들과 연루되어 있음을 안다. 내 속에서 끊임없이 출몰하는 낙타의 무리와, 의아한 곳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뜬금없는 사자와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길 잃은 아이처럼 그 여성들은 나와 연루되어 있음을 이제 나도 안다."
니체의 사유가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니 이런 어펙트가 생기는군요~~!! 정화샘의 글들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