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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x철학] 4강 메데이아 _강좌후기

생강 2024.01.30 16:07 조회 수 : 108

'괴물-되기' 한 언니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뛰게 한다. 이번 주 강의에서는 남성들의 영웅서사 속 비극적 히어로가 아닌 마녀, 악녀로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알려져온 메데이아를 만날 수 있었다(내가 어렸을 때는 메디아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원어 발음을 살려 메데이아로 표기하나보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등과 함께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비극작가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는 비극의 완결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문제를 던져주는 데 주력하는 점이 다른 작가들과 구별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만남, 이아손의 배신, 메데이아의 복수로 이어지는 드라마는 원안이 된 신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난 시간에 공부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드러난다. 

송하얀 강사님은 에우리피데스의 문제제기적인 극을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개념과 연결하여 여성의 성차 개념과 연결하여 새로이 문제제기를 하는 게 이번 강의의 포인트였다. "과정 중인 주체, 돌연변이, 대타자의 타자이자, 본질적 변신을 이미 겪어낸 주체, 여성 형태로 주조되어 체현된 주체인 포스트 대문자 여성”(변, p.31)이다. 우리는 이러한 체현된 주체로서 ‘메데이아’를 살펴볼 것이다."

지난 해 8월 조지아 흑해 항구도시 바투미에 갔었는데, 유럽광장이라는 곳에서 '이아손과 황금양털' 동상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날씨에 먼 발치서, 아 저게 황금양털이구나...사진만 찍고는 그 동상이 이아손인 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강의를 듣고 그 사진을 다시 찾아보니, 다행히 황금양털을 들고 있는 동상은 메데이아를 조형해놓은 것이었다! (왜 여행지 안내에서는 이아손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거지? 그 양털을 손에 쥐게 한 건 메데이아였는데 말이다...)

황금양털.jpg

내가 멀리서 찍은 건 여인의 뒤태 뿐이어서, 동상 앞면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메디아 앞면.JPG

흑해 바투미는 옛 콜키스(Kolchis)왕국의 공주 메데이아의 고향 땅이었다. 그런데 저 슬픈 표정을 보라...사랑하는 이를 위해 친척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여성. 그는 하지만 사랑의 배신을 겪으며 변신을 거듭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를 통해 이아손을 신에 대한 맹세, 정의를 저버린 자, 친구를 배신한 자로 전락시킨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비극을 통해 시민이 칭송할 영웅이 과연 존재하는가 묻게 하고, “영웅주의”에 대해 다시 재고하게 만든다.

《메데이아》에서는 또한 신화 속, 혹은 공동체 속 “남성 중심주의”와 “그리스 중심주의”를 흔들고 있다. 비극은 축제 속에 진행되었고, 시민의 공동체적 덕성을 기르기 위해 극을 권장하는 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그리스 한 복판에서, 그리고 남성들만이 시민으로 승인된 그리스 세계에서 큰 두 축을 흔드는 작업을 《메데이아》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가 과연 이런 의도를 가지고 이 극을 썼는지는 나로서는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왜냐면 그의 극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읽는 우리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나는 시민으로서 기득권자인 남성 작가가 왜 이런 여성 캐릭터를 이런 방식으로 그려냈는지 상상해보았다. 다른 동물, 노예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신분은 고대 그리스에서 철저히 타자였다. 하지만 그 타자가 어떤 능력(신화에서 메데이아는 마녀, 마법사로 표현된다)이 월등할 때 두려움이 발생하고, 그 두려움과 공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극의 주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여성, 마녀, 광인, 장애인, 이주인, 난민 등등을 타자화시키는 수많은 드라마들...

"당신들에게는 이 도시와 아버지 집, 인생의 즐거움과 친구들의 교분이 있지만, 나는 외톨이로 나라도 없이, 남편에게서 학대를 당하고 있으니까요, 다른 말을 쓰는 나라에서 붙들려 와서 이 재앙을 피해 찾아갈 어머니도, 형제도, 친척도 없이 말이어요."                                                                                                                                                                                            (메, p.29)" 

메데이아의 이 대사를 보면, 오늘날 한국에 결혼이주한 여성의 말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러한 메데이아가 처한 몇 겹의 역경 속에서 '암사자' 같은 격정과 분노를 절제하라고 말하는 이아손의 대사 역시 낯설지 않다.

헌데, 브라이도티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을 분석하며 쓴, "그녀 속에 있는 생명의 부분은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문화적으로 여성성으로 구성되는, 감성적이고 실용적이며 다수로 묶인 심리적 실재였다. 이제 생명은 그녀에게 문명화된 중립성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한다. 생명은,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제방처럼 그녀로부터 터져 나온다. …돌아오는 이 생명은 …너무나 강렬하여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기도 한다. 인간이 생명 흐름에 불필요하다는 깨달음은 그녀를 두렵게하고, 생명의 원기는 무섭다." (변, p.315)

그리고 강사님은 "위의 ‘그녀’는 메데이아이기도 하다. 메데이아는 대문자 여성, 대문자 여성의 맥락에서의 모성을 뛰어넘는 격정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격정을 따라 인간적 가치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란 자이다. 우리는 메데이아를 인간적 범위를 넘어선 조에, 되기를 수행하며 생명의 무서운 힘, 흘러넘침을 감당하고 변신하고자 하는 주체의 잠재성의 형상이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적 가치란 무엇일까? 자애로운 어머니, 순종하는 아내?  이제 우리는 가부장제를 뒤흔들고 여성주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되기 뿐 아니라 동물-되기, 괴물-되기를 해보자고 제안한다. 

"메데이아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나의 아이들이 적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고, 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다’. 김혜순 식으로 말하자면 ‘이 지옥에 사는 것은 나만으로 족하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인간중심주의 안에서의 왜소해지는 인간적 신체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강사님 안에서 들끓는 격정이 느껴지는 강의안이 아닐 수 없다. 

메데이아를 이 사회의 규범, 도덕, 이성 안에서 그대로 가치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메데이아 역시 하나의 메타포이지 않은가. 들끓는 격정도 사라진지 오래인 나는  다만 그가 보여주는 변신, 생명력, 용기를 추앙할 뿐이다.

그나저나, 코러스가 함께 하는 이런 비극 공연이 해가 뜰 무렵 코러스와 함께 펼쳐졌던 그리스, 그곳에 언젠가 가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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