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자료 :: 강좌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들뢰즈와 영원회귀] 4강 후기입니다.

태준건 2023.02.16 15:59 조회 수 : 126

 

#1 말하기는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정치적으로 한 물 간 인물을 예로 들자. 그래야 비교적 덜 위험하다. '이명박'이라는 인물이 있다. 우리는 그가 평생 어떤 문제들을 제기해왔는가를 대충은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기업을 발전시킬 것인가? ' , '어떻게 하면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할 것인가? ',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되어서 국토를 더 풍요롭게 할 것인가? ' 이런... 문제를 설정하고 나름대로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불도저처럼 내달린 결과.. 그는 막대한 금액을 횡령한 죄로 감옥에 갇혔고 그 생활마저도 충실하게 하지 못한 채 나왔다. 입지전적인 대기업 총수에서 서울 시장, 그리고 대통령을 거쳐 횡령범에 이르는 그의 삶의 궤적은 한편으로는 드라마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궤적마다 표현을 변주하며 그가 던졌던 문제의 근저에는 어떤 완고한 물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건 문제와 문제로 이어지는 계열을 미분함으로써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령 한 문제에서 다음 문제로 이행하는 습관, 그리고 거기서 선택의 항을 구성하는 습관, 그리고 그 중 매번 선택하게 되는 항의 속성 등에서 우리는 그가 어떤 물음에 이끌려 그런 반복되는 행동을 보이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위해 평생을 운전을 하거나 가사일을 도와 준 사람들에게 보인 참 얄팍하고 쫌스러운 모습은 .. 아무리 훌륭한 기업인이고 정치가이고 신앙인이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수백억을 횡령해 착복했으면서도.. 자기 곁에서 일을 돌보아 주는 분들에게조차 몇 푼 아끼려는 것을 보면... 수천억이건 수천원이건 ... 그 액수의 많고 적음을 초월하여 그는 기회만 되면 언제든 자기의 이익을 조금이라고 향상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그냥 그지다. 즉 액수의 많고 적음을 초월하여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그것을 채워야 한다는 그지같은 강박이 그의 이념의 장이며 그의 '있음'의 세계, 즉 '온톨로지'에 대한 그의 이미지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세계에는 온통 큰 거지들과 그리고 작은 그지들만 있을 뿐이다.

 

# 2 문제의 계열을 통해 물음의 자리를 거슬러 갈 수도 있지만 물음의 장에서 문제로 현시되는 장엄한 광경을 볼 수도 있다. 석가모니는 어째서 나고 병들고 죽는지, 생명이 짊어져야 할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물음에 사로잡혔다. 참 대책이 없는 물음이다. 이 물음은 자기 세계라고 여겨지던 궁궐 밖으로 나간 순간 던져진다. 낯선 세계와의 마주침 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신이 속해 있던 궁궐의 선택지로는 그 답을 찾을 수가 없는 물음에 사로잡힌다. 물음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강렬하고, 강렬하기에 삶을 내몬다. 그리고 실제로 가출하셨다. 나는 이 물음의 답이 어떠한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어린 석가모니의 역량에만 관심이 있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얼렁 궁궐로, 자신이 있던 세계로 되돌아가자고 하지 않고 해결도 요원한 그 물음을 틀어쥐는 역량! 정말 쓰잘데기 없는 그 역량에 관심이 있다. 어찌어찌해서 그 물음의 장은 우주만큼 넓어졌고,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들의 고통에까지 가 닿았다.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금강경]의 첫머리에 있는 한 장면에서는 새로운 문제 설정의 장을 열어 젖히는 석가모니의 모습이 보인다. 제자인 수보리 장자는 그날 저녁 무언가 강렬한 힘에 이끌려 갑자기(?) 석가모니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면서 묻는다. 그렇다면 현세와 내세에 올 무수한 보살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석가모니는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야, 그 문제 제기 좋다! 무릇 보살들은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남김없이 구제하리라는 마음을 내어라. ' ... 

그때 그 석가모니가 수보리와 함께 했던 순간도, 지금 내가 이 후기를 쓰고 있는 순간도 부처님이 말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므로 영원히 반복되는 '이 순간'에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남김없이 구제하리라는 마음을 내는 것, 그것은 크로노스적인 시간이 아이온의 시간에 응집되면서 동시에 또 다른 크로노스적 시간으로 분기 되어가는 바로 그 영원 회귀의 순간에 삶의 특이성을 결행하는 사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고 마음을 내는 것은 물음의 장에서 펼쳐지는 이념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그 순간을 자기 삶의 한 사건으로 ,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이에게 그 순간은 무수한 중생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과 성질에 따라 그 구제의 방식을 달리 고민하고 모색해야 하는 문제 설정의 장을 활짝 열어 제끼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석가모니는 당시의 제자들들 뿐만 아니라 도래할 '보살'들 모두가 자기 삶의 어떤 한 순간을 그렇게 윤리적 사건이 되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3 무수하게 제기되는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로부터 물음의 장으로 치고 나아가는 역량이 있는 반면, 자기가 설정한 문제들의 장 안쪽으로 동일한 문제들을 무수히 반복하려는 습관이 있다. '이명박'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신이 허락한 거주지 안에서 그 자신이 어떤 이념의 장에 있는가를 알지 못한 채 그지로 살다가 그지로 죽는다. 왜 그런가? 자신이 제기했던 무수한 문제들을 전체로서 꿰뚫고 그 계열의 미분 계수를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가 설정한 문제들의 장으로서의 '이념'을 알아차리는 것은, 의지적으로 되기보다는 다만 항상 보던 것들에서 어떤 격렬한 차이를 감지했을 때, 그 익숙하던 것들이 온통 낯설고 타자적인 것들로 되돌아올 때 열린다. 물론, 그런 순간 평소에 단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습관처럼... 자기 궁궐로 되돌아가려 할 것이다. 그 궁궐에는 답이 있고, 때로는 답을 낼 필요도 없는 것들로만 나를 둘러싸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과 같은 사람들의 윤리적인 한계는 자신의 문제를 물음으로까지 몰고 가지 못하는 무능에 있는 게 아닐까? 언제나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동일성 안에 새로운 경험을 끼워 넣고, 그 익숙한 선택항의 차이들 안에서만 어떤 행위를 하는... 그래서 모든 경험을 계산 가능한 지점으로 끌어 와서 유효성이 입증된 알고리즘만을 작동시키는.. 무능은 그를 언제나 노예적 인간으로 살게 할 뿐이다.

 

 

# 4 우리는 누구나 살아 본 경험을 최대치로 해석해서 삶을 달관하는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뭐 살아보니 별 게 없어, 내 나와바리는 딱 여기까지이니까 이만큼 하고 말지 뭐. 애쓰지 말고... ", "그래봤자 안 바뀌어. 원래 삶이란 게 그래 억울하면 그렇게 태어나든가? "... 이 선지자적인 관점들은 무능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설령 선택지가 봉쇄된 상황에 대한 뼈저린 자각과 그 속에서 자신이 설정했던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의 결과, 자기 삶의 이념을 표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 지라도 ..그 경험은 새로운 문제 설정의 차원을 열고 그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물음의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물음의 장에서 문제 설정의 장들이 열리는 방식은 오로지 그 물음의 강렬도에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강렬한 물음은 무한하게 열리는 새로운 문제 설정의 장으로 우리의 운명을 끌고 간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기존 세계가 와장창 무너지거나 폭발적으로 들끓는 경험을 수반할 것이다. 그래야 기존 문제의 설정이 무화되고 새로운 문제 설정이 가능한 배치가 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음에 휘말리는 사건은 느긋하고 평화로운 선정 삼매에 들어 무한한 안정감에서 벌어지는 그런 사건이 아닐지 모른다. 설령 겉은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을 지라도 그 안에서는 매우 짧은 순간마다 접히고 펼쳐지며 들끓고, 그로 인해 기존 세계의 형상들을 시시각각 위협하는 순간이 지속될 것이다...

횡단선을 주욱 그으면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되돌아갈 것인가? 그런 점에서 물음의 역량은 답을 찾는 역량이 아니라 문제 설정의 장을 부단히 갱신해가는 역량이며, 자기 소굴로 되돌아가지 않고 무수한 해를 쓰고 지우기를 기꺼이 반복하는 방법으로 응답하는 역량이다.

 

# 4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는 답이 없거나, 선택지 자체가 봉쇄되었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아 차리는 순간, 물음은 늘상 반복되는 계기들 속에서도 우발적으로 던져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물음은 " ~까?"와 같은 통사적 구문의 형식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지각의 혼동, 또는 시선의 열림, 또는 '...어?' 하는 충격의 형태로 던져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물음의 장 안에서 홈 패인 공간을 따라 삶을 질서화했던 욕망의 회로는, 가동을 중단하고 부글부글 끓는 것으로, 즉 잠재성의 계기들이 폭발하듯 충만해지는 것들로 지각되며, 이 물음의 힘에 이끌려 기존의 문제들이 참으로 가볍게 , 종잇장처럼 가볍게 펄럭거린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의 장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자, 이제 어디로?

우리 소설에서는 영원 회귀를 긍정하는 순간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로 읽어 낼 수도 있는 명장면이 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작가 이상은 니체를 깊이 읽고 자기 나름으로 소화했다. 그런데 워낙 근성이 비뚤어져서인지, 아니면 식민지 청년의 자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니체의 '독수리'를 자기 작품에서는 '닭'의 표상으로 비틀어 표현하기 일쑤였다. 이상한테는 니체조차 너무 젊잖았다. 그런 이상이 '날개'에서는 드디어 그 '닭'을 다시 날게 만들려고 시도한다. 신이 준 날개가 아니라 '인공의 날개'를 만들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우리는 이 익숙한 장면을, 현실 도피적인 어쩌구 저쩌구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를 살아 내는 한 청년의 횡단적 결행이 발휘되는 순간의 장면으로.. 또는, 도시의 홈패인 공간을 따라 흐르는 '걸음을 멈추고' 오늘은 부재하는 '날개'를 다시 창조해내려는 그런 순간으로 읽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 5 辨 > 쓰다 보니 마구 내지르듯이 썼습니다만, 강의를 마구 듣지는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치밀하게 점검하며 문제 의식을 진전시켜 가는 선생님의 강의에 좋은 자극을 받고 또 이래저래 곱씹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8 [다시,자본_후기] 4강 자본주의 노동과 번아웃 [3] 진작 2023.02.08 51
87 선불교를 철학하다 4강 후기 아무 2023.02.08 57
86 [다시,자본_후기] 4강 자본주의 노동과 번아웃 [2] 라라 2023.02.10 39
85 [선불교를 철학하다 5강 후기] 민선정 2023.02.10 332
84 들뢰즈 3강 후기 및 질문 hongmin 2023.02.10 70
83 [다시,자본_후기] 4강 자본주의 노동과 번아웃 [2] 이주명 2023.02.11 44
82 들뢰즈와 영원회귀 4주차 후기 싸미 2023.02.12 88
81 들뢰즈와 영원회귀 4강 후기와 질문 윤춘근 2023.02.14 70
80 [다시,자본_후기] 5강 정보자본주의와 고용없는 착취 [2] file punctum 2023.02.14 73
79 [선불교를 철학하다] 5강 후기 노은석 2023.02.15 53
78 사건의 윤리학과 이터널션샤인(들뢰즈와 영원회귀 4강후기) 안영갑 2023.02.15 80
77 [정화스님의 반야심경] 5강 후기 : 중생인 부처, 부처인 중생 file 유택 2023.02.16 116
» [들뢰즈와 영원회귀] 4강 후기입니다. 태준건 2023.02.16 126
75 [들뢰즈의 영원회귀] 간단후기 오나의고양이 2023.02.17 238
74 [정화스님의 반야심경] 5강 후기 김은진(2) 2023.02.17 102
73 정화스님 반야심경 5강 후기 민선정 2023.02.17 80
72 <정화스님의 반야심경> 제 6강 후기_공空의 깨달음과 지금 여기의 삶 [2] 최영미 2023.02.22 118
71 [다시, 자본 후기] 7강 자본주의 운명과 노동의 종말 [2] Siri 2023.03.04 82
70 [다시,자본_후기] 7강 자본주의 운명과 노동의 종말 [3] 드넓은 2023.03.04 110
69 철학 - 개념의 성좌 제 1강 쪽글 [1] 초보(신정수) 2023.04.08 8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