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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영원회귀 2강 2023.1.28.

 

2강 : 일의성의 존재론과 영원회귀

강의를 사정상 참여하기가 어려워 이렇게라도 강의록을 남기는 방식으로 참여하겠습니다. 직접 강의에 참여해 질문을 남겨야하는데... 열심히 준비한 강의 참여 못해서 미안합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직접 가서 질문을 던지도록 해볼게요.

지난 1강에서 들뢰즈의 철학적 기획과 더불어 효영 선생님이 들뢰지언(?)이 자주 범하는 “잠재성과 현행성의 이분법과 현행성에 대한 혐오”를 들어, 그들의 철학으로부터 들뢰즈의 철학을 구출(?)하려는 기획을 동시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이번 강의록에서는 들뢰즈 철학에서의 현행성이 가지는 의미와 반복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네요. 제가 효영 선생님의 글에서 배운 점을 정리하는 겸, 저도 가끔 들러서 정리한 글을 볼겸 해서 올려봅니다. 안 풀리는 의문은 나중에 영상을 보면서 확인해볼게요!

 

1-1.1. 하이데거와 들뢰즈의 영원회귀의 대비

하이데거는 니체의 5가지 핵심 개념(힘에의 의지, 허무주의, 영원회귀, 초인, 정의)에서 힘에의 의지를 존재자의 존재로/존재자의 본질로, 영원회귀를 존재자의 존재방식/존재자의 실존으로 규정하였다.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를 존재자와 관련지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Q1. [하이데거 존재자 개념 비판에 대하여] 하이데거의 영원회귀가 존재자의 존재방식이 존재자와 관련되어 비판된다는 뜻으로 저는 강의록을 받아들였습니다. 독해력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가 모르는 다른 철학적 논의가 있는 건지, 존재자의 존재방식이 뒤의 들뢰즈와 니체의 논의에서 동일자(존재자)가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회귀한다라는 말과 실질적으로 같은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들뢰즈의 하이데거 존재자 개념 비판의 요점을 잘못 잡겠네요. (하이데거도 들뢰즈도 몰라서 그른가바요.):/

 

그러나 들뢰즈는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를 존재자에게 귀속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힘에의 의지가 힘으로 환원할 수 없는 힘간의 관계, 힘들의 계보학적(양적차이)라는 것과 영원회귀가 사변적/실천적 종합으로서의 생성하는 존재을 생각한다면, 들뢰즈는 하이데거보다 차이라는 개념을 존재라는 개념을 더 극한으로 밀어붙인 것처럼 보인다. (맞나? 맞겠지?) 같은 차이의 철학이지만, 회귀하는 것이 생성된 존재자에 의해서/동일자 간의 차이에 의해 언명되느냐와 차이의 일차성 속에서 생성하는 존재에 의해서 언명되느냐는 시작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제 설명이 왠지 하이데거의 철학을 내려치기 하는 듯한 느낌 듭니다...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겠죠. :/)

 

1.2. 반복의 위상

그렇다면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세상을 구성 하는 것들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 차이뿐이라면 어떤 것도 모든 것은 카오스에 갇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영원회귀가 하나의 종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리라. 차이나는 것을 통해서 생성되는 존재, 이 생성의 과정을 들뢰즈는 ‘반복’이라고 봤습니다.

 

《중간정리》 존재를 부정(Nicht)의 형식이 아니라 순수 긍정으로부터 존재를 도출한다는 것과 ‘물음’이라는 차이나는 것의 반복운동을 존재론의 심급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와의 차이점이 분명해진다.

하이데거

존재자

재현에 종속된 ...

존재 (힘에의 의지)

차이 – Nicht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있는가?”

들뢰즈

물음이라는 차이나는 것의 반복운동을 통해서 생성되는 동일자

존재 – 물음, 이념

차이 - positivie

 

1.3.-1.4. 연속성의 지대로서의 물음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과제는 차이의 긍정성(affirmation)과 물음의 실증성(positivite)의 입증이다. 이 말은 각이한 잡다를 모아 동일성에 대비되기에 차이라고 규정짓는 것에 대항하고자 한다.

 

차이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차이를 동일성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차이를 규정하는 것이며, 차이는 이때 잡다한(Diverse) 것이 된다. 이들을 통일한 일관성 없이. 이렇게 되면 허무주의적인 문법이 완성된다. “이것도 저것도 ... 똑같이 무가치하다.” 고귀한 것, 저속한 것을 구분하는 눈을 가질 것을 요구했던 1강의 “평가와 해석”의 챕터를 떠올리면, 어떤 것이 가치를 지니는지 구분하는 가치 부여(evaluation)가 되려면 일관성 혹은 자족성이 필요하다. 그러한 일관성을 만족시켜주는 연속체가 필요하다. 그것을 바로 들뢰즈는 “이념적 객체들”, “물음”이라고 불렀다. “이 문제들 안에서 반복해서 차이나는 존재자를 분배하는” 반복이라는 활동을 통해 차이나는 것만이 되돌아 온다는 점을 보이려고 한다.

 

“영원회귀의 반복은 하나의 물음이며, 반복은 물음과 하나의 실체를 이룬다.”

 

2. 유비의 존재론

2.1. 보나벤투라 : 분유의 유사와 표현의 유사

① 분유의 유사 → 신의 부분 혹은 양태로서 유사 → 범신론이 되므로 거부

② 표현의 유사 → a:b=c:d 로서 공통적인 제 3의 것인 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비될 수 있음.

2.2. 토마스 아퀴나스 : 비례의 유사와 비례성의 유사

① 비례의 유사성 ex) 8과 4의 관계

② 비례성의 유사성 ex) 8:4=2:1 → 신은 비례성의 유사에 따라 추론될 수 있을 뿐.

 

둘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공통된 인상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권리상 이해되지도 말아야 할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중간항으로 유비의 존재론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비의 존재론은 1) 모방과 재현에 따른 존재론이며, 2) 상이한 등급이 분배된 존재의 위계(존재의 의미)를 특징적으로 드러낸다. 유비의 존재론은 삼각형의 존재, 플라톤의 존재, 천사의 존재 등이 신이라는 완벽한 존재자에 의해서 분배되어 존재의 차원에서 서로 다른 존재자의 위치들을 갖게 된다.

 

3. 일의성의 존재론

3.1. 존재의 정착적 분배와 유목적 분배

위의 정착적 분배와 달리 유목적 분배는 분배되는 것은 존재자 쪽에 있다.

 

들뢰즈의 유비 판단 모델을 삼항 “표현하는 것-표현 자체-표현되는 것”으로 대체하려 했다.

 

3.2. - 3.2.2. 둔스 스코투스 : 형상적 구별의 도입

둔스 스코투스의 과제

시대적 요구 : ① 신의 불가지론 극복, ② 범신론에 빠지지 않기

문제의식 : 보편자의 독립적인 실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것의 실재성을 보여주기. 단일한 의미 속에서 각각을 구별할 것인가??

둔스 스코투스의 존재 : 유한자/무한자의 개념(일단, 존재자겠지요...?)에 앞서 있는 무규정적인 존재의 개념이자 중립적이고 중성적인 신이라고도 할 수 있음.

둔스 스코투스의 구별 : 형상적 구별

① 실재적 구별 ② 사고상 구별

 

3.2.3. 개체화의 원리

보편적이고도 중립적인 둔스 스투코스의 신에게서 개체들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보편적 본성(equinita/horseness)에 이것임(특개성/haecceitas)을 부여하여 개체화한다.

보편적 본성을 통해서, 말과 플라톤을 구별할 수 있는 연속적인 보편이 주어지고, 이 위에서 개별은 정당한 차이를 확보한다. 그리고 보편은 개별에 있으므로 보편은 목표 ①인 신의 불가지론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목표 ②에 의해서 현세의 존재자들에게는 가닿을 수 없는 점에선 여전히 제한점을 가지고 있다.

 

3.3. 스피노자 (강의안에 3.2. 라고 되어 있네용?)

일의적인 존재를 중립적/무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순수 긍정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획을 가지고 있음. 스피노자의 존재자는 둔스 스코투스의 존재자와는 달리 신의 표현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3.3.1. 실체와 양태, 그리고 속성

실체(substance) : 자기 자신 안에 있으며 그 자체에 의해 파악되는 것

양태(mode) : 실체의 변용(affection),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

실체와 양태들에 대해서 공통적인 속성(attribute) : 각 속성은 실체의 본성/본질을 표현한다.

 

3.3.2. 속성의 두 활동 : 실체의 구성과 양태의 생산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내재성을 속성에서 찾았다. 한편으로 실체를 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태를 생산함으로써 공통적인 ‘활동’이 됨.

 

3.3.3. 표현의 세 삼항성

삼항성의 종류

노트

삼항성 풀이?

실체-속성-본질

“실체는 자신을 표현하고, 속성들은 표현들이며, 본질은 표현된다.”

표현하는 실체

표현 자체인 속성

표현되는 본질

완전-무한-절대

데카르트의 “무한하게 완전함” : 무한성에 절대성이 없으니 상대적/ 명목적일 수 있음.

→ 절대성이 요구됨!

→ 무한한 절대성

표현하는 절대

표현들인 무한

표현되는 것인 완전

역량으로서의 본질 -

역량으로서의 본질이 자신의 본질인 것 -

변용 능력

실체의 본질은 역량이다.

역량으로서의 본질이 자신의 본질인 것은 실체와 양테 모두다

절대적으로 무한한 역량

(공통항) 본질로서의 역량

변용 능력에 따른 역량

 

▶ Q2. 안티를 읽으면서 찾은 유사성(:/)

대지(earth) -표면에 기입..? -영토(Terra)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3.3.4. 존재론적 평등성과 역량에 따른 비동등성

실체의 변용인 모든 양태들은 존재론적/잠재적/절대적으로 완전한 역량을 가진다는 점에서는 동등하다. 그러나 현행적으로 그 역량이 어떻게 능력으로서 발휘되느냐에 따라서 구별된다는 점에서 비동등하다.

 

3.3.5. 실체와 양태간의 무관심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양태와 무관하게 스스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실체와 양태 사이에는 무관심이 존속하고 있다고 말해질 수 있다. (이게 과연 내재성이란 말인가?) 이는 양태들이 실체에 대해서, 실체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인과론적이고 상대적인 해석이 나오게 만든다. 들뢰즈는 말년의 저작 속에서 스피노자의 내재성 안에 실체와 양태 모두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 Q3. [내재성, 잠재성, 현행성] 실체와 양태가 모두 내재성 안에 있다는 말과 같이 잠재성과 현행성도 모두 내재성 안에 있다고 말해질 수 있나요?

 

‘표현(expression)’이라는 개념을 ‘생산(production)’으로 대체하는 맥락도 여기에 있다.

▶ Q4. [신체적/비신체적 구별] 표현이라는 개념이 실체와 양태를 분리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시체를 표현하는 상이한 표현들만이 나올 뿐 지시체 그 자체를 표현하는 말은 없다. 붕어빵이란 말에는 붕어도, 빵도, 붕어빵도 없다. 말은 먹을 수 없다? 표현이 가지는 비신체적인 것과 언표적인 특성을 극복하기? 예전에 노마디즘을 들으면서 내용-표현의 본질적 구별과 그 구별의 세 가지 유형이 생각나네요.

 

3.4. 니체

3.4.1. 생성의 동일성으로서의 반복운동

양태(다자)를 통해 언명되는 실체(일자)를 언명하기.

생성의 존재 : “동일성(회귀)은 차이(힘에의 의지)를 통해서만 언명된다.”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의, 존재의 세계에 대한 극한적 근접이다.”

 

차이나는 것을 통해 언명되고 차이나는 것의 둘레를 도는 동일자이다. 차이에 의해 산출되는 이런 동일성을 ‘반복’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으로 인해 생성된 존재는 이전과는 다른 존재이기에 차이를 생산한다. 영원회귀란 지속적인 차이(강도)의 생성 활동이다.

 

3.4.2. 동등하지 않음의 동등-함

3.4.3. 일자-다자에서 다양체로

연속성의 장/물음/이념의 장으로서 다양체로 나아가기. 헥헥.. 힘들다. 어라 왜 요약이 5페이지?

 

▶ Q5. [영원회귀, 반복] 저는 읽으면서 반복이라는 게, 잠재성에서 현행화되는, 개체화되는, 무규정적인 것에서 완결된 규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개체화하는 것과 규정을 만들어내면 낼수록 차이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영원회귀는 차이나는 것만이 회귀한다는 점에서 다시 잠재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현행적인 것이 잠재적인 것에, 양태들이 실체에 변용을 가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효영 선생님이 스피노자와 니체의 차이에서 드시려는 점이 이 점이 맞는지 제 식으로 확인 하고 싶어서 질문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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