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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독일비애극의 원천_두번째 시간

쿠다 2014.07.11 11:49 조회 수 : 657


* 일하는 와중에 쓰는 거라, 텍스트가 없네요. 기억에 의존해서....^^ 써보겠습니다.



1. 바로크 주권자와 정치신학



벤야민, 슈미트, 아감벤으로 이어지는 정치신학적 차원에서 주권권력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죠?

아감벤은 <예외상태>에서 벤야민과 슈미트 사이에 주권권력을 둘러싼 논의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펼치죠.

제가 궁금한 것은 아감벤이 독해한 벤야민과 슈미트의 주권권력의 차이입니다.

아감벤은 <예외상태>에서 벤야민이 슈미트를 인용하면서  의도적으로 단어 하나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슈미트의 "결정" 개념인데요. 벤야민은 주권자를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는 슈미트의 정의를 살짝 바꾸어서

예외상태를 배제하는 혹은 차단하는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벤야민의 맥락에서도 그렇고, 일부러 바꿨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싶습니다.

슈미트는 예외상태라는 법의 중단을 통한 법의 재실행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외상태는 배제되어야 할 한시적인 상황이죠.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도 서술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슈미트를 인용하면서 벤야민은 이러한 주권권력을 비판하고 있고,

초월적인 위치로 군주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도 "반동적"이라고 말합니다.


바로크 주권자는 그 자신이 피조물이면서 주권자이기 때문에 (아감벤이 타당하게 지적한 것처럼)

권력과 능력이 분리되어 있지요.

주권자의 위치가 슈미트와 차이가 납니다.

이 때문에 법 밖에서의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로서의 주권자가 아니라,

그 모든 요소들이 모순적으로 "구성적 현재"를 형성하고 있는 현재의 "파국"을 이야기 합니다.


슈미트와 벤야민이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은 예외상태와 파국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파국과 연결시키고 있죠.


아감벤이 나름대로 벤야민의 파국론과 슈미트의 예외상태를 종합해 자신의 이론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예외상태를 파국으로 등치시킨다면 결국 정치신학 차원의 주권이론의 주변을 맴돌수밖에 없을 않을까...생각해 봤어요.

저라면, 벤야민의 파국을 주권의 결정과는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한 독해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벤야민의 전략인 "세속화"를 좀더 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구요.


2. 세속화


세속화라는 개념 대신 고지현 샘이 제안하신 범속화 개념이 흥미로웠는데, 짧게만 말씀해 주셔서 좀 아쉽 ㅋㅋ

세속화는 어쨋든 신학적 차원의 권리의 이행이라는 뉘앙스가 있지만

범속화는 평범함..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단절의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벤야민에게 희미하게나마 대중/주체의 형상이 질료적인 수준에서 떠다니고 있는 만큼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벤야민의 대중 혹은 주체의 형상을 부여잡기 위해서 범속화라는 개념의 문제의식으로

<비애극>을 읽어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3. 역사의 세속화, 영원 그리고 낙원의 무시간성.


괴테의 <서출의 딸>을 예로하면서 역사적인 것의 세속화를 이야기 했었죠.

저는 이 역사적인 것의 세속화를 탈역사화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고지현 샘이 설명해주신 이야기를 듣자니, 고런 것은 아닌 듯. ㅋㅋ.


영원과 무시간성의 차이가 중요한데요, 일단은 이와 대응하는게 루소의 자연과 바로크의 자연개념이죠.

영원이나, 루소의 자연은 역사의 이전, 선사의 상태라고 이해합니다.

즉 시간의 화살이 쭉 뻗어가서 진보적인 시간을 구성하기 이전의 상태인 것이죠. 이는 시간의 초월성을 나타냅니다.

반면 바로크의 자연은 인공적 자연, 혹은 제2의 자연입니다.

이미 역사적으로 구성된 자연이죠.

이러한 상태에서 '낙원의 무시간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는 벤야민이 진보적 시간의 환상을 부수는 작업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시간의 화살은 미래를 향해 뻗어나간다는 일종의 근대적 착각이죠.

하지만 근대인들은 진보적 시간을 믿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시간의 차원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이 무의식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비애극에서 표현된 낙원의 무시간성의 차원이죠.

영원의 시간은 구원의 시간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러한 구원의 시간은 바로크에서는 없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시간조차 세속화의 차원에서 뒤틀어진 상태로 표현하는게 낙원의 무시간성이죠.

이는 시간의 밖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 안에서 공존하는 무시간적 시간이라는 역설을 낳습니다.

이상한 말 같지만, 아주 현실적인 시간의식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시간은 흘러가고 진보한다는 것을 우리는 매번 인식하면서,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갈까요?

오히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그냥 흘려보내는 무심한 일상으로 시간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죠.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벤야민은 혁명을 회전하는 것으로 말하면서 영원회귀적 반복이라 비판하는 대목이 기억나네요.

근대는 혁명의 시간조차 범속화시켜 차이없는 반복의 무한 회전을 하는 시간의 연속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벤야민..ㅎ 

앞으로 나아간다는 착각은 무한한 원의 반복때문에 일어나는 착시죠.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것이 근대적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벤야민은 너희가 진보를 믿고 있다지? 하지만 너희는 또 다르게 동일한 둘레를 회전하는 시간을 살고 있잖아!

바로크 비애극을 보라구!!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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