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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이진경 선생님 두 번째 강의가 있었습니다.

1강 때와 다름 없이 수유너머N의 강당이 가득 찼었답니다.

전 맨 뒤에 앉아서 샘의 열강하시는 모습과 수강생들의 결연한 뒷모습을 3시간에 동안 보았습니다. ㅎㅎㅎ 


1. 이번 강의는 '상이한 세계의 병존'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열었습니다. 

고전 소설에는 천상이나 용궁 등 이계의 인물들이 자주 개입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상계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만능의 해결사(deus ex machina)"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설정은 현대적 관점에서는 소설의 개연성을 해치는 안이한 장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계의 개입을

(1) 서사 전체의 발단과 이유를 제공하는 것,

(2) 서사 안에서 현실과 병존하는 것,

(3) 서사에서 인물들의 출구가 되는 것으로 분류해서 살펴본다면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논지였습니다.


2. <숙향전>에는 위에서 설명한 다양한 방식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우선 (1)번에 해당하는 천상계의 개입, 즉 사건의 발단이 되는 숙향과 이선의 전생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2)번의 현실과 병존하는 이계로, 주인공 숙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숙향을 살려내고 사라지는 방식의 이계가 개입합니다.  

(3)번은 이선이 황후의 병을 고칠 약을 찾아 선계로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이 설명 맞나요? 이 부분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번, 즉 주인공들이 선계 내지는 천상계에서의 전생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그 당시의 해법"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어떤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그 사건의 의미를 해명하는 방식이 이계의 개입으로 재현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고전소설은 당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던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통념을 끌어들이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사건의 비밀, 세상의 비밀을 보여주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인 '리얼리즘'"의 방식, 즉 사건으로 만나게 되는 세계의 비밀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3. 앞에서 말했듯 고전소설에는 천상계와 지상계로 대변되는 두 개의 상이한 세계가 병존합니다.

그리고 이 둘은 천상계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비대칭적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에 존재하는 역학은 교환되거나 등치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천상계가 초월적인 위치에서 지상계에 개입하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숙향전>에서 이선이 황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약을 구하러 선계에 개입하는 사건은 예외적입니다. 

고전소설의 통상적인 결말을 넘어서는 이 부분에서 "새로운 탈영토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부재하는 영토, 선계로의 개입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탈영토화 계수는 매우 높다며

선생님께서는 좋아라 하셨습니다. ^^;


한편 작품 속 주인공 특히 <숙향전>의 숙향은 부모에 대한 정보를 이계의 존재들이 알려줘도

그런 정보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이러한 모습을 선생님께서는 "서술의 암묵적 규약"이라고 부르셨죠.

소설 속에 "서술의 암묵적 규약"이 필요한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사건화하기 위해 천상계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현실계의 인물들이 안다면 소설적 긴장이 약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4. 그 다음으로 논의된 작품은 사랑의 힘에 매혹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운영전>이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담을 넘는 민망함을 무릅쓰게 하는" 매혹에의 휘말림이 등장합니다.

사랑의 매혹은 "'넘어섬'의 힘, '이탈'의 힘, 탈주의 힘"을 지닙니다.

"미친 사랑의 힘"과 목숨을 건 위험한 모험은 강력한 휘말림의 벡터를 만들며 주인공들을 '외부'로 끌고 갑니다.

하지만 <운영전>에서는 재물이라는 현실적 자원이 사랑의 돌파력을 약화시키며,

남녀 주인공을 추적의 그물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이 지점에서 미친 힘으로 "통념과 제도의 벽"을 넘어서는 사랑은 한계를 맞이합니다.


5. 지난 주 강의는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후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러려던 것이 아닌데.. ㅡㅡ;

어쨌든 2강 후기를 마칩니다. 내일 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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