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자료 :: 강좌의 발제ㆍ후기 게시판입니다. 첨부파일보다 텍스트로 올려주세요!


 

1.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자기 입으로 글쟁이라고 말하는 이들에 대해 감추지 못하는 경멸을 오래 품고 있었다. 평생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감추려 들어서, 어쩌다 남들이 얘는 글 쓴다고 폭로(?)할 때면 콩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경멸과 부끄러움은 순전히 생산하는 글의 완성도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미학적으로 한참 미달인 작품을 쓰면서 글 쓴다는 자부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꼬웠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마찬가지로 아니꼬워 할까봐 감추기 바빴던 것이다. 혐오 중 가장 강한 것은 자기혐오라고. 그 자부심이나 강박 중 밀도 높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지침은, 말하자면 포이에시스적 고독에 한없이 가까울 것이다. (ex; , 민간인들은 나의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나의 외로움은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 같은 고통...! 과 같은 마인드로 또는 기민하게 갈고 닦은 예술가의 촉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거나, 관계의 미숙함에서 오는 고립을 예술가적 성향의 운명인 양 받아들이는?)

 

 

2.

문학과 프락시스 : 문학적 민주주에 대한 몽상강의에서는 독서 체험이 한 이간을 흠뻑 젖게 하고 정연하던 그의 표정을 영원히 뒤바꿔놓는충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독서 치료는 독서 과정에서 작품에 표현된 인물, 감정과의 정서적 동일화를 경험하고 내담자가 자기의 억제된 감정을 분출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고통 받는 사람들이 직접 글을 쓰는 활동을 통해 다른 존재로 변형되는 생산적/ 표현적 활동 역시 치유와 표출의 효과가 있다.

쓰는 활동에서 걸림돌은 자신의 내밀한 고백이 외부에 공개된다는 부담이다. 쓰는 과정에서 자기의 트라우마와 직면하고 분출시키는 것 자체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분출에만 머물 경우 우리의 다층적 트라우마를 사적 영역 안에만 가두게 되는 것이다. 들뢰즈의 지적처럼 가족 문제는 지역이나 민족, 자본주의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처럼 개인적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제안하여 세계를 향해 발화하고, 상호소통의 결과를 공공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때 발화가 반드시 직접적이거나 날것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은유와 상징, 알레고리와 같은 다양한 문학적 표현향식을 활용한 문학적 글쓰기가 자신의 문제를 다루고 표현하는 다양한 유희를 가능하게 한다. 표현형식은 트라우마와의 미학적 거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쓰는 이는 고통에서 기쁨으로 이행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떤 종류의 문제와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와 같은 문학적 글쓰기는 결국 만인의 작가-되기라는 문학적 민주주의를 제안하는 것이다. 문제를 겪는 누구나 문학적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이때 문학의 생산에 필요한 것은 신이 내린 재능도 뼈를 깎는 단련도 아니다. 오롯한 자신의 삶이다.

 

 

3.

만인의 작가-되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나 문학 작품의 완성도이다. 그러나 문학활동을 프락시스로서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도 온전할 수 있는 예술성이 아니다. 한충자 할머니의 시 쓰기 행위는 말할 수 없는 신체를 가졌던 자가 말의 이지와 역량을 작동시켜 자신에게 할당된 감각을 재분할하는 한에서, 자신의 정치를 수행하는 것”(심보선, 그을린 예술, 민음사, 2013, 215)이며 평생을 쫓아다닌 문맹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 말하고 행위 하는 행위를 통해 한 존재의 역량은 확장된다. 영화 에서 주인공은 시 쓰기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윤리적 존재로 거듭난다. 공고 재학생들이 쓴 시를 모아 출판한 담임은 오늘도 울 삘이다는 시집에서는 이제껏 비가시화되었던 (입시에서 소외된 수험생의 발화) 이야기가 싱싱하게 튀어오른다.

이러한 존재 역량의 확장은 문학의 본질이 자기 충족에 있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 세계를 향해 열리는 순간 그와 같은 문학적 본질은 불가능해진다. “문학적 기투의 순간에 모든 문학적 본질은 오염되고 수난을 겪기 때문이다.

 

 

4.

한때 블랑쇼의 ‘work’‘text’의 개념에 심취했는데, 그것은 미학적으로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한없이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다. 내가 손을 뗀 순간 나는 추방 당하고, 그것(작품, text)이 완성되었는지 아닌지, 내가 의도한 메시지로 읽히고 있는지 여부를 전혀 알 수 없을뿐더러 간섭할 수조차 없다. 백 명의 사람들이 백 명의 눈으로 읽고 백 개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작가에게 그처럼 황홀하면서도 무서운 상황이 또 있을까?

그러나 프락시스적 고독은 바로 그 순간 탄생한다. 타인의 말과 행위의 그물망(공적 영역) 속에 던져진 문학작품은, 시작하는 자(작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자에 의해서 완성된다. 따라서 작품은 매 순간 다른 작품으로 완성되고 단 한 번뿐인 문학적 사건으로서의 고독을 누린다. 문학 작품은 오염되고 찢기고 수난을 겪는다. 그러나 오직 나에게만 유효한 문학적 감응, “흠뻑 젖게 하고 정연한 표정을 통째로 뒤바꾸는 만남 역시 그 오염과 찢김, 수난 속에서 탄생한다. 이렇게 문학의 프락시스적 고독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생산된 문학작품의 완성도, 그에 따른 위계짓기, 기지의 예술적 본질의 전달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고독 속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읽히는 것조차 공포가 아니다. 자신의 텍스트가 전혀 겨냥한 적 없는 독자와 만나 일으키는, 상상한 적 없는 문학적 감응의 출현이 된다. 이러한 프락시스적 고독은 비단 문학의 공공성만을 확보하기 위한 관점 전환이 아니라 문학적 활동의 고유성에 다가가기 위한 관점 전환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8 [자크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네 번째 수업 후기~ 성현 2013.07.26 2647
647 [코기토의 귀환] 3강 후기입니다 [9] file 유나 2016.04.22 2518
646 [자크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세 번째 수업 후기입니다! 고태영 2013.07.18 2512
645 [자크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7월 26일 엄청 늦은 후기 면발 2013.08.07 2466
644 <예술의 감각적 선물> 진은영시인 첫번째 강의 후기 [1] 지수 2014.01.29 2437
643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4강 후기 hwa 2013.07.25 2230
» 140203 <예술의 감각적 선물> 진은영 선생님 강의 후기 [1] 짐송 2014.02.10 2202
641 <예술의 감각적 선물> 진은영 시인 두번재 강의 후기 [1] Jae 2014.02.10 2017
640 [자크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2회 수업 후기 [1] 하루 2013.07.06 1993
639 데리다와 현상학 아주 늦은 후기 고진옥 2013.07.10 1882
638 [예술의 감각적 선물] 진은영 선생님 첫 번째 강의 후기 [3] 지영 2014.01.31 1849
637 [니체 혹은 필로비오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2부 발제 [1] 재림 2017.05.12 1719
636 [알튀세르 강독]발제/간식/후기 배분 일정표 [1] 쿠다 2014.03.11 1716
635 <예술의 감각적 선물> 아렌트의 예술론 관련 후기 [2] 큰콩쥐 2014.02.03 1700
634 [예술의 감각적 선물] 1월 20일 강의 후기.. [2] 상빈 2014.01.23 1621
633 [알튀세르 강독 강좌] 4.11 후기 [1] 멜로디 2014.04.16 1573
632 다시 읽은 [홍길동전]에 대한 단상 [2] 달팽이 2014.08.23 1539
631 1월 20일 예술의 감각적 산물 후기 [2] sr 2014.01.24 1494
630 [후기] 고전소설의 철학적 실험 1강 : 소설의 윤리와 내재적 독해 [5] 지영 2014.07.16 1401
629 [해석과 사건] 2주차 후기~ [1] 성현 2014.01.22 139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