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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게 고독은 운명인가? - 운명이 되는 고독이 뭔가?

그것은 ⟪프락시스praxis적 고독⟫입니다.

 

 

  강의 제목에서 눈에 띄는 ‘고독’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 자체로 아우라고 뿜고 있는듯해요. 김수영 시인이 황량한 거리에서 바바리코트를 입고 상념에 잠겨 혼자 걷고 있는 모습이라던지 심보선 시인이 『H.A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세계로부터 고독하게 떨어져 나와 혼자 방안에서 H.A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진은영 시인이 강의에서 말하고 싶은 문학의 고독은 그런 고독이 아니었죠. ‘프락시스적 고독’이었어요. 프락시스적 고독이 바로 문학 활동의 핵심에 있는 것이라고요. 강의에서 시인은 한나 아렌트의 ‘프락시스’개념으로 한나 아렌트의 예술관을 비판했습니다.

 

  먼저 한나아렌트의 예술관을 정리하면, 그녀는 인간의 활동을 3가지로 구분해요. 노동, 작업, 행위로요. 그리고 그는 예술활동을 ‘작업’에 포함시킵니다. 강의안에 있었던 아렌트가 세넷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예술관이 드러납니다.

 

‘만드는 것이 의자든 바이올린이든 예술작품이든, 인간의 활동은 완성된 생산물, 혹은 작품에 따라 그 위대함을 평가받는 것이네’

 

  또한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개념을 빌려옵니다. 그것은 포이에시스poiesis와 프락시스praxis. 포이에시스는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사물들을 생산하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결과를 염두해둘 수 밖에 없구요, 아까 그가 분류한 인간의 활동에서 ‘노동’과 ‘작업’이 바로 이 포이에시스 활동개념에 속합니다. 반면 프락시스는 행위 자체의 독특성으로 주체를 환하게 드러내는 활동입니다. 인간의 활동 중에서 ‘행위’가 이 프락시스적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작업’에 포함되는 예술활동과는 다른 프락시스적 활동이 위대한 인간활동의 영역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이 부분에서 진은영시인을 비롯해 아마 강의를 듣고있던 사람들 모두 궁금증이 생겼을 거에요. ‘예술활동이 작업의 영역에 포함되는 걸까? 포이에시스적인 활동이야?’ ‘프락시스적인게 아닐까?

 

  다시 한나아렌트의 이론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예술활동의 고립감․고독감에 대해 얘기합니다. ‘제작은, 비록 그 결과가 기술이나 예술작품일지라도 항상 공동의 관심에서 벗어난 고립 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요. 그리고 이와 반대로, 행위는 고립적인 예술활동과는 달리 타인의 행위와 말의 그물망 속에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단서는 프락시스praxis의 어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프락시스 말의 뜻에는 원래 ‘시작하다’와 ‘완성하다’가 둘다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즉 행위하는 자는 시작하는 자이지만, 행위가 완성되는 것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뜻도 변화하면서 행위가 ‘완성하다, 성취하다’ 뜻만을 가지게 된 것이죠. 프락시스에서 포이에시스로 변화하게 된 것입니다.

 

  강의에서 진은영 시인은 한나아렌트가 말한 예술활동의 고독감이 사실은 포이에시스적 고독이 아니라 프락시스적 고독!이라고 반박합니다. 한나아렌트는 프락시스적 행위(시작+완성)가 포이에스적 모델(only완성)로 변화하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 대해 안타까워 했지만, 진은영 시인은 오히려 예술활동의 프락시스적 고독(시작+완성)이 존재하며, 이것이 자신이 시를 쓰는데 있어 핵심이라고 하였어요. ‘예술은 아렌트가 생각했던 제작의 과정처럼 어떤 관념의 설계도가 있고 그것이 그대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예술가가 그 관념의 실현을 위해 고독한 사투를 벌이는 활동도 아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시를 쓰기가 어렵다고요. 오히려 작품을 쓰는 동안 작가는 작품으로부터 추방당한다고요.(릴케) 예술가의 가장 큰 고독이 발생하는 순간은 바로 자신의 작품 앞에서라고요.

 

진은영 시인의 <물속에서>라는 시를 첨부할게요. 시인의 말대로 시인이 그의 의도대로 펜을 놀려서 시를 쓰는게 아니라는 걸 <물속에서> 시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

물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

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

 

(그런 일이 너무 춥고 지루할 때

내 몸에 구멍이 났다고 상상해볼까?)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

점점 부풀어오르게

잠이 잠처럼 풀리고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

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

 

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걸 잠시 잊어버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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