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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차이의 정치] 1강 후기

이재훈 2023.07.19 11:10 조회 수 : 56

페미니즘 강의 첫 시간에는 오지호 선생님께서 '인정이냐 분배냐'는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낸시 프레이져의 이론을 소개해주셨다. '인정이냐 분배냐'는 문제의 한편에는 찰스 테일러와 악셀 호네트가 각자 발전시킨 인정의 정치철학과 1970년대 컴바히강 집단에서 등장한 정체성 정치가 놓여있고, 맞은 편에는 분배라는 경제적인 문제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흐름이 존재한다. 프레이져가 보기에 서로 다른 맥락을 갖는 이 두 흐름은 페미니즘 정치의 이론적인 차원이나 실천적인 차원 모두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호배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를 비판하며 프레이져는 젠더 문제에서 분배와 인정 둘 다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이슈들이기에, 이 둘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차원적 정의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프레이져는 특히 악셀 호네트와 논쟁을 벌이며 이 이차원적 정의관이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이는 인정의 정치철학이 자칫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져 사회구조적인 문제(특히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프레이져는 이차원적 정의관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대안으로서 99%를 위한 페미니즘을 주장한다. 99%를 위한 페미니즘은 우리를 온갖 다양한 이슈들(그야말로 99%의 삶에 관여한 오만가지 이슈들)로 이끌며 99%의 연대를 제안한다.

프레이져가 말하는 이차원적 정의관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우선 그것의 명료함이었다. 인정 대 분배라는 선명한 틀을 가지고 이론적, 실천적 논의의 지형을 설명하는 것은 명쾌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어려운 중간지대를 놓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수업시간에도 질문했었지만, 내 경험으로는 인정 문제와 분배 문제에 동시에 문제의식을 갖는 운동 집단이 없지는 않았는데, 그런 운동을 인정 대 분배 중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만약 그런 운동이 있다고 한다면, 문제는 왜 그런 흐름이 힘을 얻지 못하는지 아닐까 싶다. 관련해서 한 가지 떠오른 것은 프레이져의 이차원적 정의관이 인정 문제와 분배 문제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다. 인정과 분배의 문제를 단순히 동시에 강조하는 것과 그러면서 둘의 관계를 적절히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서, 강의시간 질문 중에 99%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낸시 프레이져가 매우 다양한 이슈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실천에서 운동이라는 것이 하나의 초점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느냐하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틀림없이, 하나의 이슈에 강하게 힘을 집중하는 것은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를 고려해보면 프레이져의 말처럼 다양한 이슈에 (강사님의 표현처럼) '바쁘게' 관심 기울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한 가지는 운동은 항상 매우 다양한 영역들에서 수많은 집단들에 의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하나의 이슈가 사회 전체를 집어삼켜서 거기에 사회운동들의 거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거기에서 아주 중요하게 대두된 단일한 이슈만이 문제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는 반근핵 탄핵 국면 당시의 범국민행동 집회나 최근 기후정의행진에서 잘 나타난다. 박근혜의 퇴진 요구가 주된 이슈이자 핵심 구호였음에도 거기 모인 사람들이 박근혜 쫓아내자는 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 하나 정권 하나 바꾸는 것을 넘어서는 사회개혁의 요구들도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거기에 힘을 보탠 수많은 기성의 운동 단체들은 자신들이 기존에 내왔던 목소리를 함께 내었다. 기후정의행진에서도 기후위기라는 이슈 아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를 촉발시킨 하나의 의제에 힘을 집중시키면서도, 그 지점에 모여드는 사람들 혹은 집단들 각자가 가진 맥락과 문제의식이 있다는 점에 주목해 폭넓은 연대의 네트워크를 창안해내는 것 아닐까. 이렇게 본다면 수많은 이슈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자는 (시작도 전부터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프레이져의 요청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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