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를 처음 접한 것은 영화에서였다. 올랜도는 1928년에 버지니아 울프가 쓴 책이지만, 70여년을 살아남아 1992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올랜도는 그의 미모에 감탄한 엘리자베스의 명령에 따라 400년을 살아가면서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달라지면서 겪는 혼란과 모순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을 읽은 것은 이번 강의의 주제가 <올랜도>였기 때문이다. 읽은 내용을 선생님이 강의를 통해 다시 요약해 주셔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게 가장 다가온 말은 ‘시대정신’이었다. 올랜도는 400년이란 시간을 살아가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14명의 왕을 겪었다. 올랜도는 시대정신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도, 자신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시대정신에 동의하지도 않았지만, 그 정신에 의해 자신에게 적용되는 가치가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겨우 60여년을 살아온 나도 그런 경험에서 비껴갈 수가 없다. 나는 가부장제가 기승을 부리던 1960년에 태어나, 20년 이상을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군부독재시대에서 성장하여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죽어갔던 이승복을 닮아 그렇게 죽어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과 북한의 최고 통치자가 만나면서 공산당과의 화합을 넘어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이 강조되는 ‘시대정신’이 한반도를 휩쓸었다. 1980년대 아직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겪었고, 2000년대 그 권력이 역전되는 시대를 살았으며, 가부장제에서 횡행하던 여성을 성적 대상화로 한 농담이 2010년대에는 폭력이 되고 성희롱이 되어 처벌받는 시대정신도 겪었다.
이렇게 짧은 시기에 통치이념이, 가정의 권력이, 농담의 소재가 바뀌는 시대정신은 누가 만들고 어떻게 퍼져나가며, 나는 왜 영향을 받아 가치관과 신념이 바뀌어가는지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된 유익한 강의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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