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1강후기] 호명에 관한 두가지 퍼스펙티브 / 류재숙
1강의 주제가 '호명'이었지요. 그래서 호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호명에도 서로 다른 종류의 '이름 부르기'가 있고, 이것을 '호명에 관한 두가지 퍼스펙티브'로 말할 수 있겠어요.
먼저, 우리에게 시대적 가치를 따르도록 요구하는 호명, 즉 지금의 내 존재를 강화하는 호명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선생님은 학생을 호명하면서, 대체로 '공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요구하지요. 그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부모에게 착한 아이, 선생님에게 좋은 학생, 곧 시대적 존재가 됩니다.
한편, 우리를 시대적 가치로부터 이탈하게 하는 호명, 즉 지금의 나와 다른 존재로 생성하는 호명이 있습니다. 일자리와 상관없는 공부, 돈 버는 일과 관계없는 '무용한 것'들로부터의 호명이 있습니다. 시나 문학, 음악과 미술, 춤과 노래를 포함하여, 시대적 가치에 비추어 '쓸모 없는 것'에 우리가 매혹될 때가 있습니다. 시가 나를 덮쳐올 때, 음악이 춤이 나를 부를 때, 우리는 그 목소리에 끌려들어가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 그것이 가져다줄 이익이 분명한 것으로부터 점차 얼굴 돌리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런 것들의 호명에 응답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낯선 것,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것이 있다면 기꺼이 그 호명에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그런 목소리를 외면하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찰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방물'이나 '왕의 스캔들을 알고 있는 대숲의 나무' 혹은 '날카로운 이명에 발목 잘린 바람' 그리고 '떨어져나간 시계바늘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시간들'을 쫓아, 우리 생애 한번은 물방울 같은 것, 나무 같은 것, 바람 같은 것, 시간 같은 것이 되어보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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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숙샘 멋지고 깊이 있는 후기 고맙습니다.
혹시, 미스터 선샤인이란 드라마보셨습니까?
김태리와 정혼한 지주의 아들 변요한이 반복해서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무용한 것들 앞에 걸음을 멈춘 채 넋을 잃고 바라보고,
돈도 밥도 되지 않는 걸 끄적대는 거 그게 시일 겁니다.
그동안 유용함에 휘둘려 살았다면 이제 무용함이 호명하는 소리에 대답하고
어우러지는 삶으로 조금씩 마음의 배치를 바꿔가는 것도 멋진 삶의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여보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죽어가는 게의 꿈벅거리는 눈을 보고 올래?
제목이 109인 황지우 시인의 시 전문입니다.
죽어가는 게의 눈을 보러 시장에 가는 게 대체 무슨 소용에 닿는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게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마음이
끔찍하게 가기 싫은 회사를 가야만하는 영업사원의 마음과 같을 리 없겠지요.
저한테 해탈이냐 해찰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해찰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딴짓도 좀 하고 덕후도 되어보고 그러는 거죠.
해탈이야 죽고 난 다음 이야기니까 그 때 가서 생각해보는 거고요.
4강에서 무용함을 예찬하는 변요한과 황지우를 만나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