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과 함께 레닌을 1강 후기]

여니 2018.01.09 10:26 조회 수 : 213

지젝과 함께 레닌을! 수강신청을 빨리 했던 덕분에 첫 번째 후기를 쓰게 되었다. 나는 지젝도 모른다. 레닌도 모른다. 지젝의 책도 레닌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이 강의를 신청했는가? 러시아를 알고 싶어서이다. 12월에는 베트남 공부를 했다. 중국도 일본도 공부할 기회를 갖고 싶다. 아무튼 이번에는 레닌의 러시아가 눈에 보였다. 그런데 지젝이 정신분석학을 정치철학으로 풀어낸다고 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베트남 농민들의 대단한 저항정신을 보고서 그들을 지배하는 고유한 ‘사회적 무의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심 베트남 농촌의 ‘공유지’에 어떤 혐의를 두었다. 그런데 이 강좌에서 ‘사회적 무의식’을 다룬다고 했다. 궁금했다. 이 강좌를 듣고 나면 나의 생각들이 조금 진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런 고민 없이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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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은 타자들의 믿음’이라고 한다. ‘앎이란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 믿음이다’까지는 내 상식에 속해 있는데 앎은 ‘타자들의 믿음’이라는 말은 낯설다. 이건 뭐지? 일단 선생님의 자료와 설명을 따라 정리해 보자.

 

설명에 따르면, 앎은 믿음인데 나 혼자만의 믿음으로는 안 되고 타자들의 믿음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믿음으로 인정될 수 있다. 앎은 그러한 믿음을 통해서만 실존을 인정받는다. (실존은 명명할 수 있는 것, 가시적인 것)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가시화되기’(실존) 전까지는 ‘앎 비스무리한 것’일 뿐인데 타자들이 함께 믿어주어야 나의 앎이 실존하게 된다. 라캉은 그러한 믿음의 표지들을 상징적인 것이라 불렀단다.

 

랑시에르가 ‘정치’(the politics)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을 구분하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설명에 따르면, 정치는 제도와 규범, 법으로 표명되는 사회적 체제의 전반을 가리킨다.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온갖 가시적인 명명가능성의 총체이다. 정치는 라캉의 상징계와 연결된다. 반면 정치적인 것이란 정치의 가시성과 명명가능성을 벗어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이름붙여지지 않는 것’이란다. ‘외국인 노동자’ ‘헬조선’같은 것들...라캉은 비가시성과 명명불가능성의 지대를 ‘실재’(the Real)라고 불렀는데 ‘실재’는 ‘실존’하지 않을 뿐이지 존재하는 무엇이다. 랑시에르의 ‘정치’는 라캉의 용어로 ‘실존’이고, ‘정치적인 것’은 실재에 해당할 것이다. 실재는 현실 자체와 겹쳐질 수 없는데, ‘현실’(reality)은 보이는 것과 명명 가능한 것들로 이루어진 기호들의 질서로서 모든 기호들의 조로화운 배치는 배제와 포함의 규칙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라 그 규칙을 위반하는 것들을 감춰버림으로써만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헬조선’이란 실재가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사회는 파국을 맞고 혁명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헬조선’이란 명명을 비유와 은유, 유언비어로 가두려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실재를 현실에 이어 붙이려할 때만 기존의 정치는 파열하고 혁명이라는 새로운 정치가 생겨날 수 있다...그렇군!....정치적인 것이란 이렇게 혁명이라는 사건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사건적 차원을 지시한다. 관건은 믿음이다. 하나의 과학으로서 정신분석은 앎이라는 진리의 차원을 탐구하지만 그 탐구의 거멀못은 믿음이라는 정념과 욕망의 지대에 걸쳐있는 탓이다. 믿음이 정치의 장을 구축한다.

 

혁명은 사회의 가시적인 질서에 구멍을 내고 다른 원리와 규범을 도입한다. (벤야민은 ‘창건적 폭력’이라 했다.) 러시아혁명은 구체제의 상징계를 파열시킨 사건이며 ‘다른’ 사회의 질서, 상징계를 구축했다. 1917년 헌법과 제도 규범과 도덕의 변화가 일어났으나 흥미롭게도 사람들의 믿음과 의식은 바뀌지 않았다. 혁명전 러시아 농가의 구석에 러시아정교회의 성상화를 걸어두는 관습이 있었는데 혁명 후에 정부는 성상화 부착을 금지했다. 정부가 허락한 것은 레닌의 흉상과 사진이었고 예수와 성모상은 제거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없앨 수 없었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레닌의 흉상과 사진이다. 헌법, 제도, 규범, 도덕에 변화가 일어났으나 사람들의 믿음과 의례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정부는 성상화라는 상징물(그 총체로서 상징계)은 걷어내었으나 성상화가 있던 ‘자리’, 즉 사람들의 ‘믿음’(숭배의 관념체계)은 바꾸지 못했다. 숭배의 ‘자리’, 즉 믿음의 변화가 없으니 혁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정한 혁명은 믿음을 바꾸는데서 이루어진다.

 

(지난 시간에 여기까지 수업에서 공부한 것 같다. 수업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나누어준 자료에는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이후 정신분석운동의 명멸과정이 설명되어 있다...이 설명을 보면, 혁명이후 초기 러시아 사회 활동가들은 정신분석과 손을 잡고 인민의 믿음, 즉 사회적 무의식을 바꾸는 데까지 밀어붙여 혁명을 완수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믿음’을 바꾸려는 노력들. 사회적 무의식을 탐색하고 형성하려는 노력들...이 노력은 트로츠키의 실각과 스탈린의 집권으로 완전히 막을 내린 듯하다.

 

아무튼 정신분석운동가들의 사회적 무의식을 형성하려는 노력은 곧 문화와 교육적 활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적 무의식의 탐색과 의료영역으로서의 정신분석치료와 사회적 무의식의 관계...뭔가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가로지르는듯한 '사회적 무의식'이 나의 관심사와 맞닿는 지점이 있어보인다.)

 

<꿈의 해석>이 러시아어로 번역되면서 프로이트가 러시아 지식사회에 소개된 1904년 이래 20년대 초에 이르면 러시아에서 정신분석은 열렬한 지지를 확보했다고 한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지도자들은 혁명은 단순히 체제전복과 제도전환이라는 형식적 차원만이 아니라 인민의 욕망구조, 즉 믿음체계 자체를 변혁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이 지점에서 볼셰비즘과 정신분석이 결합했던 것. 인민들의 사회적 무의식까지 변화시켜야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정신분석과 사회혁명의 관련성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수용했던 사람들은 강단학자들보다는 사회 활동가들이었다. 인민들의 무의식 형성에 개입하고자 했던 사회 활동가들은 개인면담 보다는 사회적이고 대중적인 실험을 통해 정신분석의 실천적 효용성을 검증하고 싶어 했다고...무의식은 인간심리의 감추어진 심연이지만 개인의 내면에 온존하는 비밀스런 사적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만들어짐으로써 집단적 차원에서 조형되어야 할 관계의 역학이라는 것이 무의식에 대한 그들의 관점이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러시아 정신분석활동가들의 관점은 개인적 ‘무의식’을 탐색하는 정신분석 보다는 ‘경험’을 탐색하는 심리연구나 교육철학이 더 끌렸던 나로서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나 역시 개인의 무의식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사회적 무의식에는 상당한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회 활동가들의 정신분석운동의 실험은 결국 실험학교를 통해 실천적 효용성을 검증하는 데로 나아갔다니...이건 존 듀이가 자신의 경험철학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실로서 실험학교를 운영한 것과도 거의 유사한 형태 같다...시대가 비슷해서 충분히 영향관계를 고려해 볼 수 있을 듯. 시대적 유행이었을 수도 있고)

 

아무튼 20년대 초까지 볼셰비즘과 결합하여 정신분석운동을 활발히 진행되다가 20년대 중반이후 권력이 서서 스탈린 쪽으로 넘어가면서 30년대에는 정신분석은 비도덕적인 범성애주의 라는 통념에 뒤덮여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스탈린의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의식으로 일치단결하는 획일적 사회를 지향하기에 공산주의 의식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의식의 외부 즉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로서 러시아에서 삶의 비가시적인 측면은 은폐되었고 무의식에 기반한 정신분석적 통찰도 소리 없는 목소리가 되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상 ‘지젝과 함께 레닌’을 첫 수업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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