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을 공부하며 예라는 것의 출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세속적 생존을 위한 행동규범으로서의 예라는 부제에서 실마리를 찾는다면 결국 예라는 것은 인간다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다움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 더 나아가서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로서의 예. 거기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예는 기존에 우리가 생각했던 단순한 문화적 코드나 위계에서 벗어나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제도, 국가, 법에 대한 대항세력으로 기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시하는 권력으로의 형벌이 자신의 권력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면 예는 힘의 우위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상호적인 관점에서 극복할 수 있는 생존 통로를 마련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위계나 서열의 방식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예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특이성이 반복되는 리트로넬로 같은 것이다. 단순한 반복에 머문다면 예는 하나의 규범이나 제도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결국 형식적인 방식으로 예가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항상 되묻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다.” 강의 말미에 들었던 이 말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의미심장하다.
예는 뒤돌아보기와 응답하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바라스머트가 비버에게 했던 것처럼 몇번이고 몇번이고 경의를 표하고, 또 비버는 거기에 응답헸죠.
예는 낯선 타자와의 관계가 더 이상 위협적이 되지 않도록 상호간의 뒤돌아 보기와 응답하기의 형식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대상화시키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서로 경의를 표하고 응답하는 관계는 주체-대상의 구도에서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렇다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로봇과 인간과의 관계도 어떻게 이들과 예를 형성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아요.
사물과의 예! 함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