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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어긋남의 존재론 혹은...]3강 탈고못한 후기

아노말리에 2017.01.20 11:57 조회 수 : 518

'심연'이라 부르는,

 

심연은 사건이다. 모든 감각이 바뀌는 사건이다. 아름답다고, 멋있다고, 맛있다고, 고귀하다고 여겼던 모든 판단의 근거가 사라지는 사건이다. 더 이상 이전의 기준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건은 매우 직접적인 체험 가능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에서부터, 어떠한 관련도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등에서 겪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에 신뢰하고 꿈꾸었던 것들은 가능하지 않게 된다. 절대적인 믿음까지도 가졌던 가치의 기준들이 모두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통하여, 그 무고한 희생자들을 통하여 기존의 감각이 얼마나 왜곡되게 사물을 감지하고 판단하고 있었는가를 펼쳐 보이고 들이대는 것이다. 심연은 그 사건에 대한 책임과 실천적 답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열리는 새로운 전환의 출구와도 같은 것이다.


한 사건을 통하여서도 기존의 근거들이 파열되고 사라지는, 그리하여 더 이상 이전의 상태로 감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도 기존의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심연에 이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찌보면 심연은 수많은 실패와 무고한 희생의 인연이 선사한 값진 보물과도 같다. 사라진 근거로 모든 판단이 보류되거나 바뀌는 사건을 통하여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기존의 근거를 파열시키고 떠나보내고 떠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건을 통하여 새로운 감각의 세포가 자라, 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관계들에 관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적 이동이나 붙여진 이름들의 개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통한 새로운 존재를 만나는 사건인 것이다. 그것은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기존의 감각적 판단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새롭게 관계를 맺고 새롭게 호명하여 모든 관계들이 새롭게 맺어지는 축복인 것이다. 그것이 또 실패에 이른다 할지라도 기존의 실패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를 잉태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래서 심연은 공간적 추락이나 물리적 어둠의 상징성을 빌어서 표현하기 보다는 오히려 잃어버린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기존의 감각과 모든 판단을 떠나, 즉 사건이 던진 근거에 대한 질문과 성찰, 그 근거라는 것이 얼마나 협소하고 왜곡된 것이었는가를 환히 들여다볼 수 있는 선물인 것이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은 20대 초반으로 접어드는 내게 과연 기존에 자신이 생각하고 믿어왔던 인간과 종교적 구원이 옳은 것인지,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매우 혹독한 질문이었다. 뺨을 세차게 얻어 맞거나 몽둥이로 맞는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강도로 피비린내 나는, 인간이 만든 현실의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고통이었다. 하느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인간이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선의와 사랑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그 순간 세상 모든 것들은 아름답지도, 귀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낯선 것들이 되어 버렸다. 빛나던 별들이 빛을 잃고, 아름답고 향기롭던 꽃과 자연의 빛깔이 모두 더 이상 아름답고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맛있던 음식에서도 아무 맛을 느낄 수 없고, 행복하게 느껴지던 노래의 흥얼거림도 사라졌다. 깔깔대던 웃음과 미소도 사라지고, 모든 이들에게 느꼈던 호의는 사라지고 경계의 대상으로 확장되어갈 뿐이었다. 누가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가려내고 말수를 줄이게 되었다. 나의 뒤에 누가 오는지, 나의 말에 누가 관심을 갖는지, 누가 나를 다른 이들과 구별짓고 색출해낼 것인지를 끊임없이 감지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누군가는 이런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똑같이 보고 느끼면서 나누었던 동일화의 안정감은 여지없이 산산조각나고 똑같은 물리적 거리에서도 가늠하기 어려운 심리적, 감각적 거리가 증폭되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 친구들 모두가 더 이상 이전처럼 대화하고 함께 할 수 없는 괴물이나 원수가 되기도 했다. 딸의 지적처럼,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을 낯설고 기괴한 존재로, 매우 문제가 많은 인간으로 여겼을 것이다. 괴물이 되고 이방인이 되는, 자신이 먼저 추방자가 되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 붙이며 고집하는 사건인 것이다. 기존에 가장 가치있고 고결해 보였던 모든 가치들이 이제는 결코 화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가차없이 버려야할 쓰레기가 되는 순간이다. 쩍 갈라짐으로도, 다이아몬드가 잿더미로 변하는 것으로도, 환한 햇살이 깊은 어둠으로 바뀌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이러한 사건은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고,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뜻을 같이 했던 이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그것은 누군가의 자잘못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미 그 관계 속에 있던 문제들이 소위 일종의 사건이라 불리는 것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다. 나의, 너의, 우리의 결정, 행위들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던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당연지사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건을 무엇이라 이름붙이기 어렵다. 좋다거나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건을 통하여 기존에 붙들고 살아 온, 관계를 유지한 근거에 대하여 다시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끊질기게 물고 늘어져 그 근거를 근본적으로 파열시키는 것이다. 본래 근거라 할 수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로서의 근거란 있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심연은 변화의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남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사건을 무마하고 적당히 둘러대고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심연이란 있을 수 없다.

 

심연은 되돌아갈 수 없음이다. 되돌릴 방향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해지고 의지할 방향이나 근거가 파열되는 것이다. 처음으로, 혹은 다시 근거를 마련하고 길을 내어야 하는 질문이고 책임을 답하는 사건이다. 새로운 가능성,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가치들을 발견하는, 마치 이전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열리는 사건인 것이다. 기존의 근거들,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 어찌보면 오히려 더욱 자신이 적극적으로 초래한 노력들의 결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낯선 괴물같은 존재로 기존의 가치체계와 관계 속에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고통이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선택이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고자 하는 고집스러운 버티기이다.


심연이라 불리는 사건의 중심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감각, 새로운 만,남은 예측하여 계획하거나 의도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의 장 속에서 벌어지는 관계에서의 사건들이 서로 다시 교류하고 맺어지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흐름이 열리는 것이다. 매우 매력적이고 두렵기도 한 사건인 것이다. 그 과정들이 어떤 세상을 볼 수 있는 신체, 관계를 만들어줄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열리는 세상을 겪으며, 또 다시 도래할 수 있는 사건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용기, 기대, 고집할 유일무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리하여 절대적 진리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만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의 것이 아닐까.


심연은 축복이다. 복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다. 본래 무한하고 무상한 변화를 놓치고, 고착된 근거들에만 의존하여 세상을 감각하고 판단하고 지어내는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그 기회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열리는 것이라기보다는, 무한한 변화 속에서 열리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고착되고 상주하려는 것들에 와서 부딪히고 파열하는 특이성의 강도들로 인하여 생성되는 새로운 장이다. 80년 광주에서 탱크가 무참하게 살아 있는 자들을 뭉개고 지나가며, 무차별 총살을 하는 것만으로는 하나의 사건일 수 없다. 그 참혹한 공포와 억압에 저항하는 연대와 용기의 강도, 그 특이성이 내는 파열의 틈인 것이다. 제압하는 강도를 넘어서는 강도로 목소리를 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틈새의 빛, 그 강도에 이끌여 모여드는, 적극적으로 그 틈새의 흡인력으로 빨려 들어갈 준비와 노력을 하는 새로운 특이성의 강도가 만나 벌어지는 사건인 것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특이성의 강도들이 내어준 심연의 틈을 통하여 스승이라 불리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새로운 문들을 늘 열어 젖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파열의 강도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자 하는 할수록, 기존의 근거들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매달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눈오는 아침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부당하게 겨눠진 총구 앞에서 누군가의 생이 마감되는 것이고, 기쁘게 웃는다는 것은 아직도 바다에서 건져올려 장례지내지 못한 딸과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다. 보스톤의 맑고 푸른 하늘과 오래되어도 품위를 잃지 않는 건물들 속에서 치열하게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입국이나 출국의 절차나 자격 심사조차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바다와 추위와 굶주림에 떠돌며 죽음에 내던져지는 것이다. 캐나다 기러기와 회색빛 다람쥐가 잔디와 나무와 호수 사이를 평화롭게 거니는 찰즈강과 월든 펀드의 겨울 한낮의 아름답다고도 느껴지는 풍광은, 여전히 수천억, 수조의 국민들의 피땀을 갈취하고도 죄를 문책당하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로 맞닿아 숨쉬고 있다. 그 풍광과 그 사건에 대하여 보이지 않는 연관을 드러내고 가려진 덮개들을 걷어내며 그 하나로 연결된 길들이 어떻게 창공과 지상과 지하와 감각하지 못하는 통로들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감각하고자 하는 것, 기존의 근거가 아닌 다른 연관을 향한 강도를 증폭시키는 것, 그 특이성의 자리에 심연은 늘 언제나 열려 있다.


시인 김시종의 특이성, 시인의 감각으로 발견하고 관계를 맺은 수많은 특이성들이 강사 이진경 선생님의 특이성, 그 감각을 통하여 새로운 심연으로 내딛을 수 있는 틈, 그 빛자락을 열리고 있다. 밤새 시인 김시종의 시어의 바다에서 들려오는 낭랑하다고 평가받으시는 강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웅성거려 결국 졸린 눈을 부비며, 탈고도 못할 말들을 쏟아 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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