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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수적인 사고를 논하며, 헤러웨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강고한 경계를 가진 것으로서의 호모 사피엔스라든지 유전자라든지 하는 것들로는 더 이상 넘쳐나는 생물학적인 지식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근대 이후, 생명이라는 존재양태에 의해 유기체와 비유기체 사이에는 깊은 단절이 있게 되고, 인간은 노동, 생명, 언어에 제한되는 존재양태이자, 노동, 생명, 언어에 의해 요청되는 존재양태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띄게 된다. 인간중심주의는 존재양태와 결부된 것으로, 그것이 없으면 어떤 사유도 담론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생물학적·사회적 담론들은, 근대에 인간을 규정했던 '노동, 생명, 언어'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곤 한다. 이를테면 근대에 있어 '장애'라는 정체성은, 물질적인 생산을 주된 가치로 여겼던 '노동'에 있어서도, 비장애 이성애자 백인 남성을 정상의 기준으로 삼은 '생명'에 있어서도, 지체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의 경우 사회문화적으로 열세에 놓이기 쉬운 '언어'에 있어서도, '비장애'의 정체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를 점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와 사고방식은 우생학이라던지, 독일 나치 정권의 장애인 학살이라던지, 무수한 반인륜적 행위들을 야기하여, 인간 사회와 역사에 있어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겨왔다.

  '노동, 생명, 언어' 정도로 제약된, 근대가 규정했던 인간상은 이토록 많은 부작용과 폐해로 얼룩져왔다. 그렇다면, 근대의 담론과 사유와는 '다른', 현대의 생물학적인 지식을 토대로 하여 인간의 존재양태를 논하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론이 있을까? 다나 헤러웨이는 한 마리의 거미, 8개의 다리를 촉수로 가진 Pimoa Cthlhu로부터 우리를 새로운 존재양태, Chthulu로 데리고 간다.

 촉수는 몸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고, 촉수는 모든 곳에 뻗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사고는 구체적이지 않고 자칫하면 무력해지기 쉽다. 모든 것이 얽혀 있다면 도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는, 폐기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과거의 편견어린 인습들을 과감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그대로 되풀이할 수 있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는 한편으로, 동일자 중심의 사고방식을 강요하여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의 비동일자를 끊임없이 사회에서 추방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여성은 남성과 다르기에,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기에, 유색인종은 백인종과 다르기에, 성소수자는 이성애자와 다르기에, 연결되지 않고 연결할 수 없는 다른 지점들이 존재하기에, 다수와는 다른 소수자 고유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곳에 살지 않는다. 우리는 특정한 곳에 산다. 특정한 가치를 공유하고 향유한다. 저것이 아니고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연결은 필연적이지 않고 전적으로 우발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소수자의 입장에 처할 수 있고,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끼리끼리 만날 수 있고, 연대할 수도 있다. 촉수가 있다는 것은, 이 모든 구체적인 삶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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