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1강] 토론주제 :: 7.9(금)
범위 : 3부 1.방랑자 ~ 8.배신자
물음 :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동안 이런 물음을 제안합니다!
3-1. 방랑자
Q1. 방랑과 산오르기는 무엇에 대한 비유인가?
(3-1. 방랑자) 나는 방랑자요, 산을 오르는 자다. 나는 평지를 좋아하지 않고, 오랫동안 한곳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든, 내가 무엇을 체험하게 되든, 그 속에는 방랑이 있고 산 오르기가 있으리라. (···) 거기에다 나 또 하나를 알고 있으니 그것은 ‘내가 지금 마지막 정상을, 더없이 오랫동안 내게 남겨진 것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 나는 더없이 험난한 나의 길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아, 나는 더없이 외로운 방랑을 시작한 것이다! (···) 아, 운명이여, 그리고 바다여! 나는 이제 너희에게 내려가야 한다! 나는 지금 올라야 할 더없이 높은 산과 떠나야 할 더없이 긴 방랑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3-4. 해뜨기 전에) 나는 홀로 방랑길에 올랐지. 밤마다 길을 잃고 내 영혼이 애타게 그리워했던 것은 누구였지? 나는 산에 올랐지. 네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를 나는 산 위에서 찾았던 것이지? 나의 방랑과 산 오르기는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서투른 자의 미봉책이었을 뿐이다. 내 의지 전부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나는 것, 너의 품속으로 날아드는 것 그 하나뿐이니!
Q2.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다. 모든 것은 끝내 내게 되돌아올 뿐이다!?
(3-1. 방랑자) “나 무엇을 체험하게 되든, 그 속에는 방랑이 있고 산 오르기가 있으리라.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할 뿐이니. [···] 되돌아올 뿐, 끝내 집을 찾아 내게 돌아올 뿐이다. 나 자신의 자기, 그리고 그 자기를 떠나 오랫동안 낯선 곳을 떠돌고 모든 사물과 우연 사이에 흩어져 있던 것은.”
Q3. 산정과 심연은 하나가 되었다. 더없이 높은 산은 더없이 깊은 심연에서 솟아왔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이러한 시간을 모면하지 못하리라.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시간을. ‘이제야 비로소 너는 위대함에 이르는 너의 길을 가고 있구나. 산정과 심연은 이제 하나가 되었구나.’ (...) 나는 지금 올라야 할 더없이 높은 산과 떠나야 할 더없이 긴 방랑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먼저 내가 일찍이 내려갔던 것보다 더 깊이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 더없이 깊은 심연으로부터 더없이 높은 것이 그의 높이까지 올라왔음이 틀림없으렷다.”
Q4. 마지막 정상과 마지막 심연에 관한 차라투스트라의 운명이란 무엇인가?
"나 자신과 나의 별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지, 그것만이 나의 정상이렷다. 바로 그것이 내가 오를 마지막 정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 나는 이미 각오가 되어 있으니. 방금 나의 마지막 고독이 시작되었으렷다. 내 일찍이 내려갔던 것보다 더욱 깊이 고통 속으로, 그 고통의 더없이 검은 밀물 속으로! 나의 운명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좋다! 나는 각오가 되어 있으니."
3-2. 환영과 수수께끼
*영원회귀에 관한 :: 하나의 수수께끼(1.난쟁이의 주사위놀이)와 두개의 환영(2.성문, 양치기)
Q1-1. (수수께끼) 난쟁이의 수수께끼는 무슨 의미인가?
난쟁이 (그는 비웃듯이 한 마디 한 마디 속삭였다) : “오 차라투스트라여, 너 지혜의 돌이여! 너는 위를 향해 너를 던져 올렸겠다. 위로 던져진 돌은 어김없이 도로 떨어지기 마련이거늘! / 오, 차라투스트라여, 너 지혜의 돌, 투석용 돌이여, 별을 깨부수는 자여! 너는 너 자신을 그토록 높이 투척했던 것이다. 위로 던져진 돌은 어김없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늘! / 오, 차라투스트라여, 너는 네 머리 위로 떨어져 너를 박살내도록 되어 있는 돌을 멀리도 던져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돌은 다시 네 머리 위로 떨어지고 말 것을!”
Q1-2. (수수께끼) 이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해제(용기)는 무슨 의미인가?
차라투스트라 : 내 안에는 용기라고 불리는 어떤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것이 나의 온갖 낙담을 남김없이 죽여 없애왔던 것이다. 그 용기가 마침내 내게 멈춰서서 말하도록 명했다. “난쟁이여! 너! 아니면 나다!” / 용기야말로 더없이 뛰어난 살해자다. 공격적인 용기야말로. 모든 공격 속에는 진군의 나팔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Q2-1. (성문의 환영) 난쟁이의 시간의 둥근 고리는 무엇인가?
(3-2. 환영과 수수께끼) 난쟁이는 경멸조로 중얼거렸다. “곧바른 것이란 하나같이 속임수다. 진리는 하나같이 굽어 있으며, 시간 자체도 일종의 둥근 고리다.”
(3-13. 건강을 되찾는 자) 차라투스트라 : 삶(생)의 대변자이자 고통의 대변자이며 둥근 고리의 대변자이기도 한 나 차라투스트라가 너를, 나의 더없이 깊은 심연의 사상을 부르고 있으니!
Q2-2. (성문의 환영) 이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해제는 무엇을 의미하나?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성문과 앞으로-뒤로 이어진 영원'은 무엇을 말하나?
우리는 어째서 이미 존재했으며, 어떻게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가?
Q3-1. (양치기의 환영) 뱀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 간 양치기 환영은 무엇을 의미하나?
Q3-2. (양치기의 환영) 이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해제(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어라!)는 무슨 의미인가?
3-3. 의지에 반하는 행복
Q1. (3-3.의지에 반하는 행복)에서 차라투스트라는 1부와 2부의 자기행로를 어떻게 검토하고 있나?
Q2. 제목 '의지에 반하는 행복'이란? 우리인생의 목표는 행복이다!?
Q3. 그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완성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들은 무엇의 비유인가?)
“그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자기 자신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3-4. 해뜨기 전에
Q1. 제목 ‘해뜨기 전의 시간(아침놀)’은 차라투스트라에게 어떤 시간인가?
“너(티없이 맑은 하늘)는 해 뜨기 전에 더없이 고독한 자인 나를 찾아왔겠다.”
Q2. 티없이 맑은 하늘과 떠도는 구름은 무엇의 비유인가?
“그것은(*티없이 맑은 하늘) ‘일체의 사물 위에 그 자신의 고유한 하늘로서, 그 자신의 둥근 지붕으로서, 그 자신의 파란 종으로서, 그리고 영원한 안전망으로서 펼쳐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 모든 사물은 영원이라는 샘터에서, 그리고 선악의 저편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선과 악 그 자체는 단지 중간에 끼어든 그늘, 축축한 슬픔, 그리고 떠도는 구름일 뿐이다.”
"오, 내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여, 너, 티없이 맑은 자여! 드높은 자여! 내게 있어서 너의 티없는 맑음, 그것은 네게는 영원한 이성이라고 불리는 거미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거미줄도 쳐 있지 않다는 것이다. / 내게 있어서 너는(*하늘) 신성한 우연이란 것을 위한 무도장이며, 신성한 주사위와 주사위놀이를 즐기는 자를 위한 신의 탁자라는 것이다!"
Q3. ‘방랑ㆍ산오르기’와 ‘나는 것’은 어떤 관계에 있나?
“나의 방랑과 산 오르기는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며, 서투른 자의 미봉책이었을 뿐이다. 내 의지 전부가 바라고 있는 것은 나는 것, 너의(*하늘) 품속으로 날아드는 것 그 하나뿐이니!”
Q4. 난쟁이의 주사위놀이와 차라투스트라의 주사위놀이는 어떻게 다른가?
(3-2. 환영과 수수께끼) 난쟁이의 주사위놀이 “주사위는 다시 떨어지게 마련인데, 던지는 게 무슨 소용? 아무리 주사위를 던져도, 똑같은 것만 반복하게 될 것”
(3-3. 해뜨기 전에) 차라투스트라의 주사위놀이 “내게 있어 너는(*티없이 맑은 하늘) 신성한 우연을 위한 무도장이며, 신성한 주사위놀이를 하는 신의 탁자다."
3-5. 왜소하게 만드는 덕
Q1. 왜소하게 만드는 덕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군중을 왜소하게 만드는가?
Q2. 현자와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군중에 대한 퍼스펙티브)
(2-8. 이름높은 현자) 차라투스트라 : 군중의 대변자로서 너희는(*현자) 언제나 나귀처럼 완고하기도 했고 교활하기도 했다. 그리고 군중과 좋게좋게 지내기를 원한 많은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준마 앞에 작고 예쁜 나귀를, 말하자면, 이름 높은 현자 한 사람을 매어놓곤 했지.
(3-5. 왜소한 덕) 차라투스트라 : (1) 나는 군중을 가로질러 간다, 두 눈을 뜨고서. 나는 군중을 가로질러 간다, 많은 말을 떨어뜨려가며. (2) 나는 저들의(*군중) 덕을 시샘하지 않거니와, 그런 나를 저들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 저들은(*군중) 나를 물어뜯는다. 내가 ‘왜소한 인간들에게는 왜소한 덕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왜소한 인간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 저들은 ‘내가 음욕과 악덕을 비방하기 위해 오지 않은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지. 나는 진정, 좀도둑이나 조심하라고 일러주기 위해 오지 않았거늘! / ②(나는 군중을 더 영리하게더 예리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저들의 영리함을 더욱 영리하게 하고 더욱 예리하게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니와, 저들은 그것을 기이하게 생각하지.
Q3. 우연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태도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우연이란 것 모두를 나의 그릇 속에 넣고 삶아댄다. 제대로 익은 후에야 나는 그것을 나의 먹을거리로 반긴다."
3-6. 감람산
Q1. 차라투스트라는 왜 겨울을 공경하는가?
“그는 고약한 손님, 가혹한 손님이다. (···) 나는 여전히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그가 내 집에서 파리들을 쫓아내는가 하면 허다한 작은 소란들을 잠재우고 있으니. 그는 윙윙 울어대려는 모기라면 단 한마리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두마리가 윙윙댈 때에야.”
Q2. 영리한 자와 더없이 영리한 침묵자는 어떻게 다른가?
(1. 자신을 흐리는 영리한 자들) 영리한 자들을 나는 그토록 허다하게 발견했으니. 그 누구도 자신을 간파하거나 내려다보는 일이 없도록 얼굴을 면사포로 가리고는, 자신들의 물을 흐려놓는 자들 말이다. / 그러나 바로 그런 자에게 보다 영리한, 의심 많은 자와 호두까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고는 그런 자가 숨겨놓은 고기를 낚아 올린 것이다! /
(2. 더없이 영리한 침묵자들) 그런 자들이 아니라 밝은 자, 과감한 자, 투명한 자들이 내 보기에는 더없이 영리한 침묵자들이다. 저들에게 있어, 저들의 밑바닥은 너무나 깊어 가장 맑은 물조차 그 깊이를 드러내지 못하니 말이다.
Q3. 고독은 어떤 사람에게는 '병든 자의 도피'다. 고독은 또다른 사람에게는 '병든 자로부터의 도피'다!?
"고독은 어떤 사람에게는 병든 자의 도피다. 또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병든 자로부터의 도피다. / 겨울추위에 덜덜 떨며 한숨짓는 내 소리를 저들이, 내 주위에 있는 이 모든 가련한 사팔뜨기 악한들이 듣는다면 좋으련만! 그같이 한숨짓고 덜덜 떨면서, 나는 저들의 후텁지근한 방에서 도망을 치고 있으니."
"나의 동상을 두고 저들이 측은하게 생각하고 더불어 한숨지어도 좋다. “깨달음의 얼음이란 것으로 그는 우리까지 추위에 떨게 만든다!” 이렇게 저들은 불만을 터트린다. / 그사이에 나는 따뜻한 발로 나의 감람산을 이리저리 거닌다. 나는 나의 감람산 양지바른 곳에서 노래를 불러가며 연민이란 연민은 다 비웃어준다."
3-7. 그냥 지나가기
Q1. 큰 도시는 무엇의 비유인가? 어릿광대는 어떤 존재를 비유하는가?
Q2. 차라투스트라는 어릿광대의 위선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어떻게 비판하는가?)
Q3. 어릿광대의 ‘그냥 지나가기’와 차라투스트라의 ‘그냥 지나가기’는 어떻게 다른가?
어릿광대 “이 도시를 향해 침을 뱉고 발길을 돌리십시오.”
차라투스트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곳이라면, 들르지 말고 그냥 지나가야 한다!”
“나의 경멸과 경고의 새는 늪으로부터가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날아올라야 한다!”
3-8. 배신자들
Q1. 차라투스트라가 배신자라고 부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Q2. 그들은 왜 배신자가 되었나?
Q3. 배신자들은 어떻게 행동하나?
Q4. 신은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는가?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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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안녕하세요, 선생님! : )오랜만에 니체와 함께하는 나날들이 기대됩니다!
3. 의지에 반하는 행복에 대하여 에서 '욕망하는 것, 그것은 내게 이미 나 자신을 잃어버렸음을 뜻한다. 나는 너희를 갖고 있다. 나의 아이들아! 이러한 소유에서 모든 것은 확실해야 하며, 그 어떤 욕망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욕망함으로써 현재의 나를 극복하였기 때문에 이미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해석해도 될지, 혹은 다른 해석이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엇에 대한 비유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구절을 읽으니 더 알쏭달쏭할 따름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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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있는) 뭔가를 열망한다는 것, 그것은 이미 나 자신을 잃어버렸음(*그것이 나에게 없음)을 의미한다. 내 아이들아, 나는 너희를 소유하고 있다! 이 소유에서 모든 것은 틀림없어야 하며, 열망의 여지가 남아있어서는 안 되겠다." 진영샘! 저도 이부분에 대한 해석이 까다로워서, 여러 번역본을 찾아보았네요. ㅎㅎ 이 해석의 포인트는 진영샘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내 아이들'에 대한 해석입니다.
자세한 것은 강의시간에 말하겠지만 요약하면, 내 아이들이란 '현재의 자기 몰락 이후에 생성될 미래의 자신'입니다. 결국 차라투스트라는 또다른 자기를 낳는 존재이지요. 그런데 미래의 자신을 낳기 위해서, 그 아이는 이미 자신이 잉태하고(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나는 내 아이들을 소유하고(잉태하고) 있다"고 말하지요. 차라투스트라의 이러한 태도"나는 나를 낳는다"는 "나는 나를 기다린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면(그것을 의지하고 그렇게 되기를 실천하고 있다면) 그것을 열망할 이유는 없을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열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자기내부에서 생성하지 않고, 외부에서 찾는(욕망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4부에서 위대한 인간을 찾아 차라투스트라에게 오는 우월한 인간들(보다 지체높은 인간)이 이런 사례가 되겠지요. ㅎㅎ 위대함을 욕망하는 자는 스스로 위대하게 되어야 합니다. 차라투스트라처럼 말이지요. 차라투스트라는 위버멘쉬를 가르치다, 결국 스스로 위버멘쉬가 되는 존재이지요. 위버멘쉬를 가르치는 과정 = 위버멘쉬 되기의 과정!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자기 내부에서 생성하는 것, 현재의 자신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극복'의 의지와 그 방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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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줄곧 저의 욕망을 바깥에서만 찾다보니 '나는 무엇을 욕망해야 하나' 늘 고민이었었는데, 큰 가르침과 새로운 생각거리를 얻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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