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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왜 사람을 낚으려고 하는 걸까요?
곤경에 빠진자, 절망한 자를 구하려는 연민에서 일까요?
아니겠죠.
위버멘시를 향한 마지막 고비가 연민의 극복이라고 하잖아요.
연민이라는 습속을 떨쳐내는 과정이 필요한 거겠죠.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이유는 보다 높은 인간이 갖고 있는 곤경과 절망과 한계 그리고 위선을 낚고 싶은거죠.
보다 높은 인간을 낚을 수록 거리의 파토스는 고양되고 위버멘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열리게 되니까요.
하지만 위버멘시는 확인할 수 없는 어렴풋한 찰라의 꿈같은 느낌이예요.
위버멘시에 도달하려는 순간 차이가 생겨나고, 새로운 차이낚시가 시작되고,
거리의 파토스가 고양되고, 꿈같은 찰라의 순간이 도래하고, 또 다른 차이가 시작되는 영원회귀.
쉼없이 차이를 낚아 위버멘시에 가까워져 가지만 끊임없이 진동하는 차이.
그래서 위버멘시는 도달하고자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유일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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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짧고 임펙트있는 후기입니다, 리흐님 ^^
리흐 "위버멘쉬를 향한 마지막 고비가 연민의 극복"
위버멘쉬와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가치전환의 문제로 생각해보면, 위버멘쉬가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상징한다면, 인간에 대한 연민은 '낡은 가치의 그림자'쯤 되지 않을까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현재 가치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지요.
2015년부터 1인가구가 전체 가구유형 중에 1위(2020년 32%)이고, 2인가구 이하가 대세(60%)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면 3~4인 유형을 떠올립니다. 이것이 여전히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가족인것처럼요! 섹슈얼리티의 경우에도 동성애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형이 등장하고 이에 따라 가족유형까지 달라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성애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유형으로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이처럼 낡은 가치의 습속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요. 낡은 가치에 대한 연민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이런 낡은 가치에 대한 연민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겠지요!
리흐 "쉼없이 차이를 낚아 위버멘쉬에 가까워져 가지만 끊임없이 진동하는 차이"
위버멘쉬를 정의하는 이런 접근도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위버멘쉬란 '완성된 존재유형'이 아니라, '생성하는 존재자'니까요. 자세한 것은 다음주 [위버멘쉬] 강의에서 다루겠지만, 생성하는 존재자라는 관점에서보면, 위버멘쉬는 '위대한 건강의 인격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새로운 자, 이름 없는 자, 이해하기 어려운 자, 아직 증명되지 않은 미래의 조산아인 우리는 새로운 목적을 위해 새로운 수단인 새로운 건강(위대한 건강)을 필요로 한다. 위대한 건강은 계속 획득하고 획득해야 하는데, 위대한 건강은 계속해서 포기되고 포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