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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논리]계열 27 구강성 발제

compost 2021.01.28 14:28 조회 수 : 54

[의미의 논리 강독강좌, 계열 27 구강성 발제, 최유미, 2021-01-27]

 

1. 동적발생

언어는 그것을 다른 것과 구분해 주는 것ㅡ음성과 물체의 분리는 언어의 요소로서 소리를, 먹기와 말하기의 분리는 말을, 명제와 사물의 분리는 명제를 가능하게 한다. 요컨대 표현된 것이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말하기가 먹기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표면 자체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비물체적 사건은 물체의 상태들로부터 어떻게 나오는가라는 물음이다. 이는 무엇들이 가능한가라는 물음과는 다른 물음이기에 정적발생(입이라는 물체의 표면에 있는 이미 분리된 두 개의 사건, 먹기와 말하기라는 가능한 두 계열)으로 해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문제는 사태들로부터 사건들로, 혼합물로부터 순수한 선분으로, 심층들로부터 표면들의 생산으로 직접 나아가고, 다른 발생들을 함축해서는 안 되는 동적(dynamic-물리학적인 의미에서 dynamic은 평형(즉, 대칭적인 힘, 정적static인 의미)이 아니라 힘 혹은 에너지의 비대칭적인 이동, 즉 정향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함) 발생의 문제이다.

 

2. 멜라니 클라인의 위치들-분열적 위치와 우울증적 위치

< >, 입과 젖가슴은 바닥없는 심층이다. 젖가슴과 엄마몸 전체는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으로 나뉜다(포만감을 주는 젖과 그렇지 못한 젖). 젖먹이 몸으로의 부분적인 대상의 투입은 이 내적 대상들에게 공격성이 투영되고 엄마 몸으로 이 대상들의 재투영이 동반된다. 이러한 투입과 투영의 체계는 심층에서 일어나는, 또는 심층에 의한 신체들의 소통이다. 또한 구강성은 식인과 항문성으로 자연스럽게 연장되는데, 이들에게 있어 부분적인 대상은 배설물들이다. 투입되고, 투영되며, 음식물이기도 하고 배설물이기도 한 이 내적인 부분대상들의 세계, 우리는 그것을 시뮬라크르들의 세계라 부른다. 멜라니 클라인이 말하는 유아의 편집적-분열적 위치는 바로 여기다. 이 위치로부터의 진전이 유아의 우울증적 위치이다. -분열적 위치는 구강적-항문적 심층, 바닥없는 심층과 얽힌다. 그런데 이 심층은 두가지 대립적인 심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조각들이 선회하고 폭발하는, 파편들의 혼합물인 텅빈 심층이고, 다른 하나는 액체적이고 완전한, 부분도 변질도 없는 충만한 심층이다(똥이 기관들이자 조각들이라면, 오줌은 세분을 극복할 수 있는 액체성이다) 편집적-분열적 위치에서는 모든 것이 심층에서, 의미의 영역 아래서, 순수 소음의 두 무의미, 신체의 무의미와 파열된 말의 무의미, 또는 신체 덩어리의 무의미와 모호한(inarticulate, 혹은 절합되지 않은) 말들의 무의미 사이에서 발생한다.

 

좋은 대상은 심층이 아니라 상층의 차원에 속한다. 상층은 대상을 주파하는 심급으로 그것을 점유하는 대상의 본성에 의해 구분되는 독자적인 차원이다. 수퍼에고는 클라인 생각처럼 투입된 최초대상들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상층의 좋은 대상들과 더불어 시작된다. 좋은 대상은 완전한 대상이다. 그것이 생생한 잔혹함만이 아니라 사랑과 보호까지 같이 드러낸다면, 심층으로부터(분할된 것들)가 아니라 그 모든 현시가 보다 상위의 통일성으로부터 나오는 좋고 완전한 대상인 한에서이다. 좋은 대상은 두 심층인 부분적 대상들의 극으로부터는 힘을 추출하고, 기관들 없는 신체로부터는 완전성/통합성을 추출한다. 그래서 좋은 대상은 부분적 대상들의 저장소로서의 이드와 (기관들이 없는 완전한 신체로서의) 에고와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좋은 대상은 우울증적 위치의 전개 내에서 형성된다.

 

유아의 몸은 좋은 대상을 공기 중에서 꽉 잡으려 애쓰는 투입된 야생동물들로 가득한 구멍과도 같다. 좋은 대상은 이들에 대해 (자신을 다 내어주는)불쌍한 희생물로 행동한다. 에고는 한편으로는 좋은 대상 자체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사랑의 모델로 모방하며, 내적인 대상들에 대한 그 잠재력과 증오에 동시에 참여하고, 나쁜 대상들이 가져오는 그 상처와 고통에까지 참여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에고는 좋은 대상을 움켜잡으려는 나쁜 부분적 대상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이들에 도움, 연맹, 동정까지도 제공한다. 이것이 이드-에고-수퍼에고의 회오리이고 각각은 자신이 분배한 만큼 타격을 받는다. 이 회오리가 집착증적-우울증의 위치를 결정한다.

 

좋은 대상은 본성상 잃어버린 대상이다. 이미 잃어버린 것, 잃어버렸던 것으로서만 나타나며 밝혀진다. 사랑과 미움이 완전한 대상의 통일성을 표현하는 것은 이것으로 부터다. (좋은 대상이 그의 사랑을 되찾은 것으로서만 발견하는 자ㅡ그것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에고ㅡ에게 주고, 그 미움을 그것을 발견된 어떤 것으로 공격하는 자ㅡ내적 대상들 쪽에 서는 에고ㅡ에 주는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것인 한에서이다. 좋은 대상이, 잃어버린 대상으로서, 사랑과 미움을 분배하는 것은 불만과 더불어서 이다.

 

좋은 대상에 의해 결정되는 집착증적-우울증적 위치는 갖가지 새로운 특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편집적-분열적 위치에 삽입된다. 이는 시뮬라크르들의 심층세계가 아니라 상층의 우상의 세계이며, 투입과 투영의 세계가 아니라 동일시의 메커니즘이다. 우울증적인 분할은 동일화의 두 극-내적 대상에 대한 에고의 동일화와 상층 대상들에 대한 에고의 동일화 사이에 존재한다.

 

분열적 위치에서 모든 것은 투입과 투영의 메커니즘 안에서 실행되거나 겪은 공격성이며, 조각난 부분들과 기관들 없는 신체의 긴장관계에 있는 능동과 수동, 심층에서의 신체들의 소통, 공격과 방어이다. 반면 우울증적 위치는 편집적-분열적 공격성과 구분되는 잔혹성을 가진다. 잔혹성은 좋은 대상에 의해 주어진 사랑과 미움의 계기를 함축하지만, 이 좋은 대상은 또한 후퇴하는, 그리고 그것이 주는 것을 되돌려주게만 하는 잃어버린 대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조히즘은 우울증적 위치에 속한다. 반면 사디즘은 분열적인 위치에 의존한다.

 

3. 동적발생의 첫 번째 단계: 소음에서 목소리로

요동치는 심층은 구강적-항문적 게걸스러움을 증명해 주는 음향적 체계를 형성한다. 이 분열적 체계는 먹음과 배설함으로부터 언어가 마름질 되리라는 예견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언어 형성의 첫 번째 단계는 상층의 우울증적 위치의 좋은 대상이다. 심층의 소음들로부터 하나의 목소리를 추출해 내는 것은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유아에게 있어서 언어로의 최초의 접근은 청각각적 기원을 모델로서ㅡ선재하는 것으로, 이미 거기에 존재하는 것(전통을 나르는 가족적 목소리)의 모든 영역의 근거로서 제시되는ㅡ포착하는데 있다.

 

이 목소리는 일정한 방식들로 조직된 언어의 모든 차원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언어로 만들어주는 이 조직화의 원리를 여전히 포착하도록 해 주지는 못한 채로, 한 조직된 언어의 차원을 제시한다. 또한 우리는 의미의 바깥에, 상층들의 선-의미 안에 존재한다. 목소리는 그것을 언어로 간주하는 일의성을 사용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 현저함에 의해서만 통일성을 가지고, 그 지시 작용들의 다의성, 그 기호작용들의 유비, 그 현시작용들의 다가성에 얽힌다. 목소리는 대상이자 동시에 추락의 법칙이자 추락자체이다. 목소리는 수퍼에고로서의 신의 목소리이며, 금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금지하는 목소리다. 이것이 목소리의 역설이다. 목소리는 언어의 차원들을 가지지만 그 조건들을 가지지 않는다. 목소리는 그것을 언어로 만들어줄 사건을 기다린다. 그것은 소음이기를 그쳤지만 아직 언어는 아니다. 적어도 우리는 구강적인 것 위에서의 음성적인 것의 발전을, 분열적 음향체계와 관련하여 이 우울증적 목소리의 시원성을 측정할 수 있다. 우리는 소음에서 목소리로의 이행을 꿈 속에서 다시 체험한다.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는 분열증 환자이지만 깨어나면 집착적 우울증 환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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