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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둔자는 고독자, 창조자, 그리고 시대와 거리 속에서 자기가치를 창조하려는 자

Einsiedler(hermits)를 정동호는 '은자'로, 이진우는 ‘은둔자’로 번역했네요. ㅎㅎ 직역하면 숨어사는 자를 의미하며, 비유하면 시대(대중과 명성, 시대적 가치)로부터 떨어져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은자는 세상이 싫어 단지 숨어지내는 자도 있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시대와의 거리 속에서 자기고유의 덕(가치와 스타일)을 창조하려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언급하고 있는 은자는 이들의 스펙트럼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들 은자 가운데, 신을 믿는 성자(서문2, 4-6.실직)와 차라투스트라가 있습니다. 성자와 차라투스트라를 제외하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은자는 맥락에 따라 해석하면 될 거 같습니다. 이들 은자들도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고독자ㆍ창조자의 고독과 위험을 가지고 있겠지요.

 

[2] 숨어지내는 은둔자의 특성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가 [1-14.벗], [1-19.살무사의 기습]입니다. 

[1-14.벗: 은자에게 벗은 제3의 인물] “내 주변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더 있다.” 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언제나 하나에 하나를 곱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둘이 되고 마는구나!” 늘 그렇지만 나와 또다른 나(*Ich and Mich, I and me)를 상대로 대화에 너무 열성적이다. 만약 한 사람의 벗도 없다면 나는 그것을(*또 다른 나)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은자에게 벗은 언제나 제3의 인물이다. 이 제3의 인물은 두 사람(*나와 또다른 나)의 대화가 심연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막아주는 코르크다. 아, 은자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심연이 존재한다. 그 까닭에 그들은 벗과 그 벗의 높은 경지를 동경하는 것이다.

[1-19.살무사의 기습: 은자에게 불의를 자행하지 말라!] “너희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되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 대신에 그가 너희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적이 저지른 악을 나에게 유용하게 만들어라. "나는 우연한 나쁜 경우를 자기에게 유용하게 만들어낼 줄 안다." [이 사람]) [...] 너희에게 커다란 불의 하나가 자행되면, 서둘러서 작은 불의 다섯개를 저질러 응수하라! 혼자서 불의에 눌려 괴로워하는 자는 보기에도 끔찍하다. 그리고 불의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그 불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작게나마 앙갚음을 하는 것이 앙갚음을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인간적이다. [...] 형제들이여, 은자들에게 불의를 자행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은자가 어떻게 잊을 것인가! 은자가 어떻게 그것을 되갚을 것인가! 은자는 깊은 우물과도 같다. 그 속에 돌을 던지기는 쉽다. 그러나 말하라. 그것이 밑바닥에 가라앉은 다음에는, 그 누가 나서서 그것을 다시 끌어올리려 할 것인가? 은자를 모독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이미 모독을 했다면, 차라리 그를 죽여버려라!”

 

[3] 은자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말라!

시체님의 요약처럼, [살무사의 기습]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은자는 자신이 당한 불의를 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되갚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은자에게 불의를 저지르면 안된다"고 합니다.

불의란 어떤 것일까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비방이나 공격들 같은 것이고, 은자에게는 그를 모독하는 것이지요. 이것에 앞서 차라투스트라는 우리에게 불의가 자행되면, 1. 불의를 유용하게 만들고, 2. 불의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불의를 받아들이고, 3. (불의를 견뎌낼 수 없는 사람은) 작게나마 응수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불의를 견뎌낼 수 없는데도 응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불의에 눌려 괴로워하게 되는데, 이러한 괴로움에서 타인을 원망하는 '원한의 감정'과 나를 탓하는 '자책의 감정'이 생기지요. 니체는 우리의 힘에의 의지를 퇴화시키는 가장 나쁜 감정으로 이 2가지를 지적합니다.

이처럼 니체는 신체의 강도에 따라 불의에 대한 다른 퍼스펙티브를 제안합니다! 니체는 ‘불의에 응수하라’고 말함으로써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퍼스펙티브조차 긍정합니다. 물론 불의에 응수하는 것보다, < 불의를 견뎌내는 것이, < 불의를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높은 위계에 있습니다! 불의에 응수하는 것은 반동적 힘이며, 우리가 불의를 견뎌낼 수 있거나, 불의를 유용하게 만들 수 있다면 불의는 더이상 불의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은자는 사람들과 떨어져있고, 가치창조의 보다 높은 정신성을 추구하는 자이며, 자기고독과 많은 심연을 가진 자이지요. 그러므로, 그가 불의를 견뎌낼 수 없는 경우, 1.높은 정신성을 추구하는 그는 잊을 수도 없고, 2.사람들과 떨어져있으므로 응수할 수 없도 없습니다. 여기에 3.많은 심연을 가진 그는 "혼자서 불의에 눌려 괴로워하는, 보기에도 끔찍한" 위험에 처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은자를 모독했다면, 차라리 죽여버리라고 까지 말합니다!!

 

[4] "차라투스트라도 원래는 은자였던 셈인가요? 속세에 지치면 다시 은자가 되는 건가요? 이런 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건가요?"

차라투스트라도 시대(대중, 명성, 시대적 가치)와 거리를 통해 고독 속에서 자기가치를 창조하려는 은자이지요. 다음 에피소드에서 지칭되는 은자는 모두 차라투스트라입니다. (4-1.꿀을 제물로 바치다, 4-2.절박한 부르짖음, 4-3.왕들과의 대화, 4-9.그림자, 4-12.최후의 만찬, 4-19.몽중보행자의 노래)

차라투스트라의 몰락(하강)과 상승은 차라투스트라 4부까지 계속되며, 상승과 하강이 반복될 때마다 차라투스트라의 신체는 보다 강해지고 위버멘쉬를 향해 갑니다. 이 가운데 대중에게 지치고 배신당하기도 하는 것은 모두, 차라투스트라의 위버멘쉬-되기를 위한 시련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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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님이 텍스트를 열심히 읽으시니 기쁩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보여주는 '신체강도에 따른 불의에 대한 퍼스펙티브'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시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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