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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강독] 21일 후기

멜로디 2014.03.27 07:47 조회 수 : 2805

게으름에 후기가 늦어 죄송합니다~

이번 주엔 휴강이라죠? 

날씨도 좋은데, 주말도 즐겁게 보내시고요, 다음 주(혹은 다다음주)에 뵐게요^^


Friday, March 21, 14 강독 후기

 

<  Overdetermination   >

--> 과잉결정’ over determination  <-> under determination

1)    프로이트의 작업에서 나온 말로, 하나의 상징이 몇 개의 독립된 또는 관계된 원인들의 결과라면 그것은 과잉결정(중층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의 상징이 중층결정된 것이라고 보았는데, 그것에 대한 온전한 설명은 단순히 하나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상호연관된 자료와 의미들을 고려해야했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는 꿈의 어떤 요소들은 그 위에 수많은 꿈의 생각들이 모아지고, 그것들은 꿈에 대한 해석과 연결되어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고 했는데, 여기서 꿈의 내용의 각각의 요소는 과잉결정(중층결정)’된 것으로 보았다.

2)    이 용어는 1960년대에 알튀세르가 모순과 과잉결정이라는 에세이에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진다. 알튀세르에 의해 선도된 이 용어의 사용은 보다 역사-정치적인 것이었다. 즉 일련의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결과적으로 정치혁명과 같은 하나의 과잉결정된 사건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 용어는 조야한 경제 결정론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중층결정 대신 과잉결정으로 용어를 교정하는 이유는 알튀세르가 underdetermination에 반하는 용어로 사용한 바 있으며,  중층결정이라고 하면 마치 층들 사이의 결정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마치 층들이 고정되어있고 그것들로 인한 것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잉결정 좀더 여러 가지를 내포하는 느낌이고 정세적으로 느껴진다.

 

<  모순  >

-       알튀세르는 생산과 생산관계에서의 경제적 모순 이외에도 정치, 사회 등 이러저러한 다양한 모순들이 있다고 보았고 다양한 모순들의 관계 맺음을 헤겔과 다른 맑스적인 방법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알튀세르는 마오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주요모순, 부차적 모순, 기본 모순, 모순의 주요한 측면, 부차적 측면, 비적대적, 적대적 모순 등의 용어를 발견한 것은 마오였다. 이것은 맑스적 변증법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놀라운 사건이었다. 이에 따르면, 모순은 하나가 아니다. 기본 모순으로 다른 모순들이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잡 다양한 이질적 모순들은 어떻게 관련을 맺느냐?  이 문제가 맑스적인 변증법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       헤겔의 변증법을 단순히 뒤집거나 해체 deconstruction를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 구축해야 한다. 목표는 헤겔의 변증법을 뒤집는다고 맑스적이 되는 것이 아님. 신비한 외피(관념 역사, 사변철학)에서 추출하면 변증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탈구축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그 핵심은 모순과 과잉결정 이라는 논문에 1단이 나오고, 그 다음에 유물론적 변증법에 관하여에 가면 훨씬 구체적인 형상들 나온다.(아직까지는 과잉결정이 뭔지 정확히 나오지 않음)


질문) 굳이 모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  모순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대립하는 항이 있기 때문에 힘이 아니라 모순이라는 용어를 쓴 것. 사회적인 적대라는 것이 이사람에게 중요했고, (사건의 철학에서 보자면) 사건들 사이의 단순한 우연적인 마주침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알튀세르는 포스트모던한 사고들, 특히 천박한 포스트모던한 사고들에서 말하듯, 이러저러한 차이들만이 있다고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이고 이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적대와 그 사이에 모순들이 있고, 그것들이 평등한 방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모순들이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 해명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질문) 모순들 사이의 관계는 동급인가? 최종 심급은 계급갈등을 내재하는가?

-       최종심급의 의미도 초기와 후기에 변한다. 경제가 여기서는 최종심급이나, 나중에는 계급심급으로 의미가 변한다. 최종심급을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후기 인터뷰에서 최종심급을 거의 폐기하는 듯한 말을 한다. 원래는 지배를 갖는 구조라고 하면서 지배적 심급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최종심급과 다르다. 이것을 구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 구별로서만 엥겔스가 헤매는 것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열리는데, 마지막에 가면, 죽기전 인터뷰에서는 최종심급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따라서 지배적 심급이라고 할 수 있다라면서 최종심급과 지배적 심급을 폐기한다.

-       계급적인 것이 중요시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폐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최종심급을 유지했고, 지배심급과 지배를 갖는 구조를 예기하는 것은, 심급들이 위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심급들은 동둥한 게 아니다. 이 관계에는 과잉결정최종심급두가지가 모두 필요. 최종심급이 없으면 위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의 결정이 되는 식으로 되어버려서 엥겔스의 우연적 사건들의 연속과 최종심급의 경제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과잉결정최종심급’,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ex. 변증법에 대한 문제제기. 맑스를 그것의 전도로서 파악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제기)

 

< 최종심급과 지배적 심급 >

-  최종 심급이 있어야지 지배적 심급을 결정을 해준다. 그러나 최종심급 자신이 지배적 심급이 아니야. 자신이 지배적 심급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 최종심급이 있어야지만 위계가 생기는 것은 맞는데, 최종심급이 지배 심급이라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다른 이들이 하는데, 알튀세르는 이를 비판한다. 최종 심급이 하는 일은 여타 심급들 가운데 어떤 것이 지배 심급이 되는 것을 결정한다면서, 경제환원주의를 근본적으로 잘라내려는 의도이다. 최종 심급은 오직 지배 심급이 무엇이될지를 결정하는지의 차원에만 놓여 있다.

 

질문) 최종심급이 정세적 상황에서 지배 심급을 파악하려나?

-       어떤 사회든 역사든 그것 안에 구조의 현존을 보장하는 것이 최종심급이다. 만약에 최종 심급이 없다면 구조도 없는 것이고, 역사를 인식할 가능성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와 정세라는 문제는 어떻게 보면 대립될 수 있어 보이는데, 알튀세르가 이 문제를 정확히 푼다고 할 수는 없다. 어디서는 구조를 강조하고 어디서는 정세를 강조하고. 발리바르는 우리 가운데, 구조의 알튀세리앙과 정세의 알튀세리앙이 있었다는 회고를 하기도 한다.

-       알튀세르 같은 경우에는 구조와 정세를 대립시키려는 것은 아니고 (다른 개념들로 전위를 시켜보면) 구조는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반복되는 것이고 변하는 것. 변한다는 것은 운동을 표현하는 한에서 모순을 내포하고 동일성의 반복만이 아닌 차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구조             ------       정세

반복 , 재생산             모순,  차이

 

<  차이와 반복, 구조와 모순  >

-       차이와 반복을 단순히 생각하기도 하는데, ‘들뢰즈’, ‘알튀세르’, ‘데리다등은 반복이 차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데리다는 철학의 여백에서 반복을 얘기하는데, 여기서 반복은 타자(iter)를 통해서만 반복 혹은 차이를 통한 반복을 말한다.

-        차이’, ‘반복이 둘을 대립시키지 않고 함께 사유하려는 경향이 알튀세르에게도 있다. 이는 구조와 정세, 구조와 모순을 대립시키지 않으려는 경향 있다. 천박한 구조주의는 구조를 반복과 재생산으로만 생각하며, 그것으로부터의 변화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구조가 아닌 대립되는 항을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구조와 주체를 대립시키는 것, 구조와 단절된 주체를 만들고 주체로서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알튀세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반면 모순을 구조보다 중심에 두고 얘기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자본주의에 살고 있음에도 모순 속에서 우리가 이미 공산주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미 있다고(네그리에게 그런 경향 있음). 아무튼 구조와 주체를 완전히 대립을 두면 결단주의적인 경향으로 놓여질 위혐이 있는데, 지젝이 그런 경향이 있는듯. 라캉은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       바디우 같은 경우에도 구조라는 것이 있고 그것에 절대적 타자로서의 진리적 사건이 있어서 그것으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 여기서는 구조와 구조의 타자(차이, 모순, 사건 등등)가 굉장히 외재적 방식으로 대립하는데, 들뢰즈나 알튀세르, 데리다는 구조와 그 대립물을 내재적으로, 서로 섞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차이를 통해서만 구조가 생성되기 때문에, 재생산이 위기를 극복함으로써만 재생산을 할 수 있고, 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그런 복잡한 내재성 속에서 사고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바디우처럼 진리적 사건으로 혁명을 생각하면, 개혁 등은 말이 안되고 메시아적인 것과 그것에 충성하는 주체들만 남게 된다. 알튀세르도 혁명주의적이었지만, 그런식으로 단순히 생각하지는 않았음.

 

< 모순과 차이 >

모순은 대립적인 항들 사이의 대립을 강조하고, 그렇다면 과거의 변증법적 형상들에 묶인 사고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면 차이의 논리들에 들어서게 되는 것.

 

질문) 알튀세르 자신에게 모순과 변증법이 중요한건가? 아니면 맑스를 재정립하려는 것인가?


     맑스가 묘사적으로 사고하는 변증법을 분명히 규명해서 이론적 개념화를 시키려는 것이다. 맑스에게 분명한 변증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맑스가 자신이 사고한 변증법, 특히 최종심급과 다른 모순들과의 관계의 개념적 수단을 맑스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맑스를 도와주려는, 맑스가 실천적으로 사용해도 개념적 발견을 못했던 것들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이다. 맑스가 모순에 대해서 계속 사고를 했는데, 그것을 보다 명확하고, 급진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알튀세르가 계속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알튀세르의 모순 >

- 알튀세르에게는 불균등성이 항상 문제이다. 대립물들이 있을 때, 균등한 방식으로 사고 하지 않았다. 비록 하나의 단순한 모순이라도 - 물론 그런 단순한 모순은 그에게 없지만 /, /.. 이런 식으로 균등한 방식으로 사고 하지 않음. 둘이 정확히 상반된다는 의미에서의 모순이 아니라, ‘그 둘이 서로를 배재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모순이다. 배재하고 싶어도 배제할 수없다는

 

< 모순과 규칙과의 관계 >

-       맑스가 헤겔 변증법을 전도시킨다고 했을 때이를 위해서는 변증법 자체의 구조들을 변형시킬 수밖에 없었다러시아 혁명의 예외적 상황들, 레닌을 통해 맑스를 돌아오자는 주장을 살펴보자. 러시아 혁명이 왜 예외이냐? 기본모순의 발전적 상황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런 혁명이 자본주의가 발전한 영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 나와야하는데, 가장 후진적인 러시아에서 터졌다는 것이 예외였다. 그러한 예외는, 우리가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예외 또한 규칙이 아닌지를 생각해보게 만들지 않는가? 우리는 항상 예외에 있지 않은가? 여러가지 사건들이 모순과 발전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모든 예외가 아니었는가?

-       모순은 항상 과잉결정되어 있다. 예외적인 상황이 오히려 규칙이다. 오히려 반대로 기본모순의 발전과 폭발이 예외이고, 역사 속에서 그런 것을 생각해봐도 없었다는 것이다. 예외는 자기자신을 규칙으로, 규칙의 규칙으로 드러낸다(p124)

 

§  < 과소결정 >

-  모순들이 관계를 맺으며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 혁명이 일어나잖아. 그런데, 있어야할 요소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음.

 

질문)  p109 ‘하나의 사슬의 가치는 그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약한 고리에 연결된 다른 고리들은 무엇이고 약한 고리가 알튀세르 사유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는?


-       러시아가 약한 고리들이라면 옆에 있는 것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를 의미한다. 사슬이 가장 강한 국가가 아닌 가장 약한, 자본주의가 가장 덜 발달한 러시아에서 끊겼다는 것, 약한 러시아에 모순들이 결합되면서 혁명적 상황을 발생시켰다는 것.

-  1) 정신분석학 ’-  전위’displacement응축 condensation’

2) 언어학의 환유은유’ (야콥슨)

è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서 정신분석학적으로 푼 것이 라캉’. 그런데 알튀세르도 이것을 사회적 모순들의 관련을 생각하면서 전위’, ‘응축을 가지고 와서 생각한 것. 그러나 라캉에게서는 은유가 새로운 구성적인 수립을 의미하지만, 알튀세르는 응축혹은 은유가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을 의미한다.  사슬 안에 모순들이 있다고 했을 때, 모순들이 사슬을 따라서 전위될 수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에게 모순이 사슬을 따라 이동을 하면,  즉 전위되면 모순은 폭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순이 다른 것들과 융합을 하면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응축이자 은유’. 모순이 응축이 될 때 폭발이 된다고 본 알튀세르. 그것이 폭발하면 혁명이라고 생각. 라캉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했음.

 

<  에세이모순과 과잉결정의 포인트 >

: 헤겔의 변증법을 뒤집어서(전도시켜서) 맑스의 변증법이 나올 수 없다.

-       왜냐하면 전도한다고 해도 똑같다.

-       P127 참고

-       용어들과 그 관계가 변함.

헤겔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별하고, 시민사회를 그 당시 정치경제학을 수용하면서, 시민사회를 필요사회, 경제적 인간들이 만든 사회로 설명. 그런데 맑스가 국가와 경제의 관계를 단순히 뒤집었다고 말한다면, 정치경제학을 비판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맑스는 호모에코노미쿠스를 비판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더이상 human being을 가운데 두고 인간학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려는 (심리학인 인간이든 경제적 인간이든) 인간 중심주의 방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달라짐. 그에게 국자는 착취자, 지배자에 봉사하는 강제의 도구로 생각된다.

-       용어들 -> 항들

-       p130 참고!


§  < 알튀세르 관점에서 헤겔의 변증법 >

-        circle과 중심. 부정. 부정의 부정. 다음 단계.

-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사고.

 

§  < 알튀세르 관점에서의 맑스 > 

-       건축물 : 토대와 상부구조

-        더이상 원 안에 있지 않음. 불균등한 관계 맺음

-       상부구조들은 단순히 하부구조의 반영이나 하부구조에 소급될 수 없고, 그것이 나름대로의 내적 논리를 가지면서 관계를 맺고, 그 관계 맺음으로 변화하여 재구축되는 운동들이 맑스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 오비오 논쟁 >


- 오비오가 1978년에 맑시스트 컨퍼런스에서 맑스주의에는 국가 이론이 없다.’라고 말했다.

- 맑스에게는 국가에 대한 이론, 상부구조에 대한 이론이 없었다는 맹점이 있다. 맑스가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상부구조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 그래서 상부구조에 대한 연구와 그것이 하부구조와이 관계 맺음에 관한 연구가 필요. 그래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에 대한 연구를 한 것. 상부구조에 대한 연구하려던 알튀세르의 목적. ‘재생산에 대하여의 원래 제목은 상부구조…’  알튀세르가 상부구조에 대한 이론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  알튀세르의 구조주의와 역사적 사건 >


-  알튀세르는 역사적 사건이 특별히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사회의 구조와 관계 속에 삽입이 될 때, 그래서 그것이 이전의 것과 다른 성격의 것으로 변하게 될 때, 그것이 사건이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엥겔스를 비판하려면, 관계 내지 더 나아가 형식을 사고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것은 형식’이었다. 최종심급의 결정은 내용결정이 아니라 형식결정이다. 최종심급이 하는 일은 위계 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 내용은 결정할 수 없다. 어떻게 결합되었는지 봐야할 때, 그것은 형식이고, 그 형식을 최종심급이 결정하는 것. 그러니까 경제적 반영이라고 보는 논리는 알튀세르에 대한 입장은 말이 안된다. 같은 이유로 왕이 왕이 된 것을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하는 것은 말도 안됨. 상부구조의 내용을 경제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심급들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경제(토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 역사적 사건은 형식들, 구조와 상부구조의 형식들 속으로 삽입된다.

 

<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


-       브레히트는 중국 연극(아마도 경극)에 대해서 쓴 글에서 역사적 사건이나 배경들로 처리되는 것을 오히려 중심으로 놓았을 때 소격효과-거리 두기가 나타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소격효과를 통해 관객이 드라마 바깥으로 벗아나서, 드라마에 대한 객관적 심판자가 되도록 하려는 것은 브레히트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의 의도는 무대 자체(이데올로기적 공간)에 공백을 통해 균열을 도입하는 것이 었다. 이를 통해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날 수 있다고 본 것이고, 드라마적 공간 외부의 관객의 삶(삶도 무대이므로)에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새로운 관객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연극우리들의 밀라노와 맑스의 인식론적 단절 >


- 마지막니나의 반항의 의미 : 전복의 순간이지만 이것은 멜로드라마적 전복이 아닌, 실재 속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연극의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설명되어지는데, 드라마적이지 않은 시공간에 대한 형상화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밀라노 지방의 서브프롤레타리아트들빈민들그들의 정치에 관한 대화를 비롯한 행위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텅 빈 시간’, 무의미한 시간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이다. 그리고 그 실재를 가운데 만들어내는 한에서만, 니나의 전복적 행위가 가능했다.

- ‘텅 빈 공백’,  이데올로기적 공간 안에서 어떻게 공백을 가시화시킬 수 있을까? 균질적 공간의 파열로만 이데올로기를 파열시킬 수 있다. 실재가 무대 안으로 침입하도록, 난입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청년 맑스에 대한 텍스트 안에 인식론적 단절, 관념에 침입하는 현실적, 역사적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연극 안에서는 토카스나 아버지의 갈등 상황을 보자.  니나가 둘 중 어느 쪽 편에서던, 동일한 변증법의 두 항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빙글빙글 돌 뿐이다. 그래서 관념에서 나와 단절을 만들기 위해서 맑스가 프랑스로 가서 공부하고 엥겔스가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을 체험한 것 처럼(인식론적 단절), 연극은 텅빈 공간을 가지고 와서 의식의 공간을 가장자리에 놓고, 중심에 서브프롤레타리의 삶을 텅 빈 공간으로 가져다 놓은 것 아닐까?. 관념적인 발전으로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깨뜨리는, 충만한 관념에 균열을 만들어내어 실재(현실)의 침입을 통해야만 비로소 이론적 작업, 비판적 의식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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