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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대안의 미래 2강 "우리들" 후기

이파리 2010.04.27 00:45 조회 수 : 5849

 

"나를 운동하게끔 추동한 것은 그 어떤 이상향의 유토피아보다는 현실의 부조리한 디스토피아였다"

 

 몇 달 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징역살이의 고초를 겪은 분이 하셨다는 이같은 취지의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제 머리 속에는 이 문장의 잔상이 꽤 오래 남더군요. '그렇다면 내게 있어 일종의 반시대적인 사고를 강제하게 하는 건 과연 어느쪽인 걸까?'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일종의 낭만주의 속 태양과 같은 이상을 쫓아야하는 건지, 아니면 더이상 막장이 따로 없어보이는 MB정부 같은 디스토피아를 거부하고 버텨내야하는건지.. 나아가 우리가 꿈꾸는 혁명이란 이들 중 어느 쪽에 기대야하는건지..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싶었습니다.

 

 <1984>,<멋진 신세계>와 함께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불리운다는 자먀찐의 <우리들>에 관한 소개글을 읽고 급 구미가 당긴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이였습니다. 복도훈 선생님께선 이 소설을 구소련 체제를 풍자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평하는 독법이 많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저 역시 소설을 읽고나니 복선생님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차가운 유토피아'와 '뜨거운' 유토피아 사이의 민감한 충돌..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는 동전의 양면을 함께 보여주는 애매한 소설.. 이란 표현만큼이나 <우리들>은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은 아닙니다.

 

I : 당신은 그럼 도대체 어떤 마지막 혁명을 원하는 거죠? 마지막이란 없어요. 혁명이란 무한한 거예요. 마지막 혁명이란 어린아이들을 위한 얘기죠.  (...) 아이들이 그러는 것 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나 '그리고 어떻게 됐어?'가 필요해요.

 

 혁명 이후의  '유토피아'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유명한(?) 유토피아주의자였던 사무엘 버틀러가 사용한 'Erewhon'이란 단어는 사실 '아무 곳에도 없는'(no-where)뿐 아니라 '지금 여기'(now-here)라는 이중의 의미를 내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쩌면 공상 속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와 현실의 디스토피아의 구별은 무의미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들뢰즈 역시 혁명을 내재성의 유토피아라고 말하는 것이, 그 어떤 꿈이나 실현될 수 없는 혹은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에 있어 지금-여기에 실재하는 그 무엇과 연루된 '무한한 운동'만이 혁명이며, 앞서의 혁명이 배반당할 때마다 새로운 투쟁들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추동의 힘'이 혁명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유토피아 혹은 혁명이란 개념은 어쩔 수 없이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만하면 혁명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성에 안찰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상대적인 개념을 가지고 어느 한 사회적 영역 안에서 행해지는 특정한 제도 내지는 방법만을 논해서야, 유토피아나 혁명을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비록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그 무엇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여기에서 무한하게 사유하게끔 강제하는 '힘'내지는 '열정' 그 자체를 '유토피아' 내지는 '혁명'이라 보아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리장을 떠나 샹그리라를 거쳐 더친으로 향했다. 샹그리라, 디칭(迪慶) 티벳족 자치주로 본래 이름은 중덴(中甸). 윈난 지역에 한번도 가 본적 없는 제임스 힐튼이라는 영국 소설가가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자신의 소설에 티벳 지역을 배경으로 지상낙원을 등장시켰는데 그 이름이 '샹그리라'다. 목격하지 않은 목격자의 말만 믿고 수많은 학자들이 '샹그리라'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1997년 샹그리라가 디칭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중국 정부는 2001년 재빠르게 중덴을 '샹그리라'로 개명했다. 역시 공격적 '관광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중국이 잃어버린 '낙원'을 만들어낸 것이다.

 

 잔뜩 기대하며 거닐었던 작은 도심은 생각과는 꽤 달랐다. 배낭족들이 몰려들며 생겼을 법한 '기와 올린 웨스턴 바'가 자주 눈에 띤다. 낙원, '유토피아'라는 말은 라틴어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이곳은 따라서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다. 예전에는 유토피아였을지 모를 일이지만.

 

 샹그리라를 나섰다. 더친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티벳 성도 라싸(拉薩)를 향해 온몸을 던지는 무리들을 봤다. 오체투지하는 티벳 스님들이다. '우리의 독립'을 바라는 이 티벳 스님들이 '너희 모두의 평화'를 위해 머리를 땅에 찧는다. 그랬다. 드디어, 하늘의 샹그리라가 지상에 당도했다. 우린 '중덴'을 빠져나왔던 것이었고, 샹그리라는 오체투지 행렬을 이룬 스님들 사이 사이에 성기게 배어 있었다. ('착한' 중국 기행…"우리는 '공정족'이다" / 프레시안)

 

예브게니 자먀찐은 '학문, 종교, 사회적 삶, 예술의 독단화는 사고의 엔트로피를 의미하며 독단화 한 것은 이미 타오르지 않고 데워질 뿐이다'고 말합니다. 세계에는 엔트로피와 에너지라는 두가지 힘이 있는데, 고립계 안에서의 열평형 상태, 즉 안전하고 평온하며 행복한 균형의 엔트로피는 사실상 체계 전체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며, 고통스러운 평형의 파괴나 무질서를 수반한 에너지와 결합해야만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죠. 이 글을 읽고 있자니, 저로 하여금, 반시대적 내지는 비현행적인 사고를 강제하는 것은 어쩌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둘다 모두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이상 유토피아로 불리울 수 없는 '샹그리라' 한켠에서 '지상에 당도한 샹그리라'를 찾게되는 현실, 그것에서 촉발되는 사유와 열정. 그 자체가 이미 '샹그리라'이자 '유토피아'이고, '혁명'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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