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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미학하다 - 1강 후기

모든 2023.04.14 04:03 조회 수 : 112

불교미학의 특징을 여전히 '초월'적이라고 정의 내리면 안 될까?

 

*

 

1강이 끝난 후 친구들이 내게 이번 강의 어땠느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진경 선생님!이더라." 무어라 설명을 덧붙이려다 어떤 표현을 써야할지 몰라서 주저했다. 내가 초월성이란 단어를 1강에서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역시 이진경 선생님 사유는 초월적이야!"

여기서 내가 쓰는 초월이란 단어는 보통 사람들의 사유를 넘어선다,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좋은 강의에 딱 하나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마지막에 질문했듯이, 불교 미학의 특징에 굳이 '초월성'을 빼야할 필요가 있을까. 내재성이면서 동시에 초월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걸까. 불교미학이 현묘하고 초험적이란 그의 설명은 일반인에게 결국 초월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이번 강의의 탁월함은 불교 미학을 서양의 시각이나 종교관을 통해 보려는 관점을 비판한 데 있다. 이는 불교 철학에 몇 년 동안 심취하여 책과 신문 칼럼을 통해 꾸준히 연구 발표를 해온 철학자이기에 가능한 시선이다. 한편으론 불교 철학 연구를 끝내고 불교 미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이면서도 일견 놀랍다. 1강을 들어보니 불교 미학은 아직 덜 발굴된 보물 같다. 학문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찾기' 에서 이진경 선생님은 기어이 보물을 찾아 들어 올린 것 같다. 또한 불교 미학 특징을 내재성으로 보고, 다른 데서 가져온 개념인 '현묘'로 설명하는 것도 재밌고 독창적으로 보였다.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불교 예술 작품을 선보이먼서, 그것을 '연기적 조건'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흥미진진했다. 결론도 좋았다. 단톡방에 올려준 논문을 읽어보니, 마무리 부분에 문장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오랫동안 고심한 흔적으로 보였다.

 

'현묘란 차라리 경계를 그대로 둔 채 경계를 지우는 작용이고, 상 있는 그대로 상이 지워진 채 다가오는 무언가를 보게 하는 작용이다. 상 있는 대상 속에 응결되어 깃든, 상 없는 감응의 작용이고, 그 감응을 내 신체로 밀어 넣는, 소리 없는 힘들의 작용이다. 대상/작품에 응결된 감응이 경계를 흘러넘치며 그 대상을 초과한 어떤 것이 배어 나오는 사태다.

대상의 경계를 지우는 미시적 이탈의 벡터들이, 대상의 경계 밖으로 흘러나오며 대상을 지우는 식별불가능한 힘들의 흐름이 거기에 있다. 그것은 대상과 나를 가르는 경계를 감응의 강도가 흘러넘치며 그 경계가 사라지는 초험적(transcendental) 경험의 가능지대다. 지고하고 초월적인(transcendent) 어떤 것의 거대한 힘을 암시하는 대신,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형상의 모든 지점을 슬그머니 지우며 흘러나오는 미시적인 힘들의 이탈, 우리를 놀라게 하는 대신 알아보기 힘든 양상으로 대상을 둘러싸는 어떤 힘들의 흐름, 두려움을 주는 대신 평온함을 주며 하늘 높이 상승하기 보다는 적정의 고요함을 향해 하강하는 힘들의 보이지 않는 운동이 거기에 있다, 그렇게 흘러나온 것이 상 있는 것을 둘러싼 대기가 되고, 그 대기로 번져나오는 분위기가 되어 상 없는 여래로 내게 오는 것이다. 말할 줄 모르는 돌과 주물이, 숨 쉬지 않는 그림이, 생명 없는 것으로 오인되는 '무정물'이 거기서 그렇게 내게 여래가 되어 설법을 하는 것이다.' - 미학적 '여래'와 현묘의 미학, 이진경, <한국불교학>

 

추상적인 개념을 누군가가 읽기에 이처럼 아름답고 이해 가능하게 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강의가 끝난 후 도대체 어디에서 헷갈렸는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초월성'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나는 '초월' 이란 말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다. 이진경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초월의 깊이보다 일반인에게 초월은 깊이가 얕다. 종교적인 의미는 오히려 별로 없고, 세속적으로 널리 쓰인다.

'초월'과 '초험'은 구별 없이 쓰이고 있으며, 광범위하게 쓰인다. 보통 인간적인 범위 밖의 것을 접하면 다 '초월'적이라고 말한다. 게임 레벨이 기괴하게 높아지면 '초월 레벨'이며, 이상하거나 독특한 번역을 '초월 번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숭고'라는 말은 현실 대화에서 자주 쓰이지 않지만 '초월'이란 말은 거리낌 없이 쓰인다. 초월은 대개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상승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 세계의 벽이나 문만 넘어서면 위대하게 높지 않아도, 거대하지 않아도 '초월'적이다. 한편 인간 세계와 단절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일상에서 쓸 때는, 인간 평균보다 훨씬 높은 단계로 '레벨업' 된 상태라는 의미가 많다. 이렇게 보면 내게 불교 미학은 '조금 다른 초월성'의 미학에 해당한다. '내재적이면서 동시에 초월적'이다.

 

하지만 이는 철학 개념으로 따지면 다를 것이다. 이진경 선생님이 생각하는 '초월성' 정의를 따라가면 불교미학은 초월성이 아닌 게 맞다. 그러니까 나는 철학 개념을 다시 내 주변 일반 언어 생활에서 쓰이는 용어로 치환해서 생각하니 이진경 선생님이 말하는 초월성이 곧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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