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둔 : 遲더딜 지 鈍둔할 둔
나는 늦된 자이다.
이직을 위해 자소서 작성을 해야 했건만, 일주일 내내 한 줄도 나오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었다.
사건을 서술할 수 있을 뿐, 끝내 서사는 분출되지 않았다.
나를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차라투스트라를 쫓아 가다 보니, 나는 어느 도시의 광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광대의 시체를 둘러 매고 밤길을 걸어 갔다.
어느 날 정오에 햇살에 눈을 떴으며, 다가올 긴 황혼을 걱정하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눈 앞에 현전(現前)했다. 자기 연민 없이 먼 미래를 끌어왔다.
현존(現存)하지 않고, 현전(現前)하기에, 그의 육성이 아직도 충격을 주고 생생할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아주 작은 체험으로도 몰락할 수 있기를, 기꺼이 저 다리를 건너가는 자이기를”
애초에 이 책은 취중독서를 통해, 은밀한 디오니소스적 쾌락을 맛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운 좋게도 오라클님의 강독에 중간 합류하게 되어, 상승(上昇)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의 사랑도 늦되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수영 시인의 시로 후기를 마무리한다.
애정지둔(愛情遲鈍)
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
다리 밑에 물이 마르고
나의 몸도 없어지고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나에게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
생활무한(生活無限)
고난돌기(苦難突起)
백골의복(白骨衣服)
삼복염천거래(三伏炎天去來)
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
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
일식(日蝕)을 하고
첩첩이 무서운 주야(晝夜)
애정은 나뭇잎처럼
기어코 떨어졌으면서
나의 손 위에서 신음한다
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활은 열도(熱度)를 측량할 수 없고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갈 것
애정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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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하는 후기입니다~~!! ㅎㅎ 지둔遲鈍. "나는 늦된 자이다." 이 말은 지난시간 [차라투스트라2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더없이 고요한 시간'의 말을 떠올리게 하네요. "뒤늦게 너는 젊어진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를 쫓아 가다 보니, 나는 어느 도시의 광장에 서 있었다. / 그리고 그와 함께 광대의 시체를 둘러 매고 밤길을 걸어 갔다. / 어느 날 정오에 햇살에 눈을 떴으며, 다가올 긴 황혼을 걱정하게 되었다. / 차라투스트라는 눈 앞에 현전(現前)했다. 자기 연민 없이 먼 미래를 끌어왔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하는 차라투스트라의 걸음이 보이는 멋진 묘사입니다. 도시의 광장 ... 밤길 ... 정오의 햇살 ... 긴 황혼 ... 현전 ... 먼 미래. 특히 "자기 연민 없이 먼 미래를 끌어왔다"는 표현 앞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연민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래를 현재에 끌어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를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운 좋게도 오라클님의 강독에 중간 합류하게 되어, 상승(上昇)할 수 있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 강좌에 대한 '드넓은'님의 생각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습니다. 호호 사실 이 강좌를 진행하면서 내 생애의 사건라는 느낌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차라투스트라의 해석을 위한 강좌가 개설될 날도 오겠지만…" 니체가 말한 그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는 기쁨이 이 강좌를 사건으로 만드는 출발이고, 그리고 강좌를 준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강도로 '차라투스트라'와 니체를 만나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새로운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넓은'님을 비롯한 모든 [차라투스트라] 강좌 회원에게 고마움을 말합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