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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개념의 성좌] 2강 후기

생강 2023.04.14 14:51 조회 수 : 87

두번째 시간은 지난 1강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내용을 정리하며 시작했습니다. 

1강에서는 <존재와 생성>이라는 개념어를 살펴보았었는데요,

'존재' 개념은 ‘초기 자연철학 시기’라고 불리는 기간을 거친 후에야 주요 개념으로 포착되었으며,  보통 그 시초를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BC. 515~ ?)로 본다고 합니다. 파르메니데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의 경우, 존재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자연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물질’에 더 관심이 많았지요. 하지만 파르메니데스는 '물, 불, 흙, 공기'와 같은 감각적 대표 사물이 아니라 ‘존재’라는 추상적 대상이 더 실재적이며 자연과 우주 전체를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유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있다’를 따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를 따르는 길이다”라고 하며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 즉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사유할 수 있지, ‘있지 않은 것’, 즉 비존재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파르메니데스는 존재에 대한 사유가 오직 ‘이성의 작용’에 의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는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감각적 정보는 단지 잡다한 사실만을 알려줄 뿐이고, 이성적으로 질서가 잡혀 있지 않다는 것!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 감각 정보에 따라 살아가고,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요? 파르메니데스는 그러한 일상적 사유의 측면을 ‘억견’(doxa)이라고 치부하지요.  파르메니데스에게  ‘존재’란 감각적 잡다가 아니고, ‘하나’ 또는 ‘전체’입니다.잡다하게 흩어진 대상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연속체’. 이 주장에는 숨은 전제가 있는데,  ‘잡다한 것은 있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이다’라는 명제라고 해요. 

"있는 것은 생성되지 않고 소멸되지 않으며, 온전한 한 종류의 것이고 흔들림이 없으며 완결된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게 될 것도 아니다." 라고 노래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좀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네요^^

체셔캣.jpg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 캣 삽화.

이 고양이는 끊임없이 앨리스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를 반복한다. 심지어는 미소만 남고 몸 전체가 사라지는 일도 생긴다.

우리는 이 고양이를 ‘파르메니데스의 채셔 캣’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박준영선생님은 "이 고양이가 혹시 파르메니데스의 고양이일까? 상상은 자유니까, 파르메니데스의 논법도 이 자유라는 미명하에, ‘채셔 캣 역설’(Cheshire Cat Paradox)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역설에 따르면 ‘운동’의 무시는 곧 ‘다양’ 또는 ‘많음’의 무시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저기로의 운동이란 어떤 사물이 ‘여기 있음’과 ‘저기 있음’이라는 다양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파르메니데스에게 이는 잘못된 인식일 뿐이다. ‘여기’나 ‘저기’는 한결같이 ‘있음’일 뿐, 다른 상태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주장의 논리적 결론은 ‘변화’를 환상으로 취급하게 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집 고양이는 변화하지 않는다. 우리의 감각적 시각에 그렇게 보일 뿐, 진실은 고양이가 ‘있다’는 그것뿐이다. 결론적으로 파르메니데스에게 ‘존재’는 변화무쌍한 현상을 떠나 있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논리적 추론만을 절대시하는 ‘관념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존재에 대한 이런 관념론적 이해는 서양 학문사에 유구하게 이어지는 일종의 학문적 욕망을 구성하게 된다. 이는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과 진리’를 찾으려는 욕망이다. 현대과학은 이 욕망이 실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변화무쌍한 우주와 인간에 맞서 불변의 ‘법칙’을 추구하면서 이를 통해 기술적인 지배 양식을 구축했다."고 강의안, 혹은 곧 출간될 책에서 쓰고 있습니다.

이어서 플라톤의 '이데아'에 의한 실재론, 그리고 존재에 대한 학문을 창시한 자로서 일컬어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으로 이어집니다. 서구철학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던 형이상학, 존재론은 플라톤의 4원인((형상인, 질료인, 작용인, 목적인)을 기반으로 여전히 전개되기도 하는데요...2강에서는 이런 원인과 원리의 개념에 대한 강의가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  

                                                           -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BC. 540?~480?)

세계의 변화 양상을 ‘흐르는 강’이나 ‘타오르는 불’로 비유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상상력은 그 당시에 ‘현인’이라고 추앙받던 철학자들의 생각보다 오늘날에도 더 와닿는 말이죠.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 안에는 그 어떤 고정 불변하는 ‘존재’도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존재와 생성 둘 모두를 취하여 연구 대상으로 삼기는 했지만, 이들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이지 헤라클레이토스의 제자는 아니었다고 해요. 헤라클레이토스의 제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이들이 ‘스토아학파’라고 불리지요. 사실상 ‘생성의 철학’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지만, 불행하게도 스토아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당대의 주류에 속하지 못했고, 기독교가 들어오고 나서는 순전한 탄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강사님이 공유해주신 강의안에는 이후 후반부 강의 내용과도 연결되는 더욱 풍부한 내용이 있지만...궁금하신 분은 나중에 책으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강 후기를 쓰려다가 1강 후반부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정리하느라 너무 길어졌네요;;

2강의 주제 <원리와 원인>과 관련해서, 간단 목차 정리만 하고 마무리하겠슴다!

   + 고대 자연철학자들의 원리론: 

탈레스: 만물은 물이다.

아낙시만드로스: 만물은 아페이론(apeiron)이다.

아낙시메네스: 만물은 공기다.

피타고라스: 만물은 수(數)다.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로고스(불)다.

엠페도클레스: 만물은 네 가지 리좀(rhizome)이다.

아낙사고라스: 만물은 정신(nous)의 운동이다.

데모크리토스를 이어받은 유물론자는 쾌락주의자로 알려진 에피쿠로스(Epicurus, BC. 341-270).  이 철학자에게도 원리는 ‘원자’와 ‘허공’인데, 그의 스승과는 다소 다른 교설을 펼친다. 클리나멘(clinamen)이라고 불리우는 개념. 

현대철학에서 원리와 원인은 더 이상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대상을 인식하는 우리의 파악(apprehension) 작용도 어떤 감응(affect)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어떠한 원리나 원인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감응이란 처음부터 파악 주체와 그 대상이 명확하게 구분되거나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의 ‘과정’이다.

그리고, 양자역학 이야기까지 이어졌으며 뒤풀이 시간에도 관련한 영화들 이야기 재밌게 나누었습니다.

저로서는 고대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못해, 근현대 철학을 뜨문뜨문 공부하다가 '리좀'이나 '클리나멘' 같은 개념이 나오면 반가워서 눈이 반짝하는데요. 아시다시피 과거의 철학, 개념들은 꾸준히 갱신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땐 어떤 배경이나 이유로 그렇게 썼고, 지금은 어떻게 다른 이야기들이 나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도 세계도, 자연도 변하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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