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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강독 강좌] 21일 공지 및 14일 후기

멜로디 2014.03.20 10:58 조회 수 : 1125


한 주 잘 보내셨나요?^^


내일 최원 선생님의 

알튀세르의 ' 맑스를 위하여'  강독 강좌가 있습니다.


3주차 강좌는 <모순과 중층결정> .101 / '피콜로',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153 입니다.


간식과 발제는 

문화님과 정우준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제가 아직 알튀세르에 대해 모르는 점이 너무 많고 이제 알아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강의를 요약하는 방식으로 후기를 쓰게 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


Friday, March 14, 14 강독

 

< 알튀세르와 구조주의>

 

알튀세르는 청년 맑스의 텍스트들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관념들을 자유연상에 입각하거나 용어들을 단순 비교하는 독해형식이 비교선상에 있는 텍스트들 각가의 이론적인 요소들, 즉 문제틀까지도 결합하게 된다며 문제점을 제시했는데요. 여기서 요소들에 대한 문제는 알튀세르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보여준다는 면에서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알튀세르는 통상적 의미에서 구조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구조주의적 사고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요. 구조주의의 핵심적 문제는 시스템 안에 들어 있는 요소들은 본질을 갖지 않으며, 요소와 요소들의 관계로 내용이 규정된다는 것으로, 우리가 잠정적으로 요소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 자체로 본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 규정된 정도로만 성격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요소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전체, 그 관체들이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 전체를 파악해야 하고, 그것을 파악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목적론적인 사고로 빠져들기 쉽다는 것이 알튀세르의 지적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구조주의는 대립되는 두 당파로 나뉘어 지는데, 하나는 알튀세르가 예고하는 문제틀 등의 사고들에서 드러나는 구조에 대한 사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않고 구조라는 게 요소들이나 가능성 경우의 수가 미리 정해져고 그것이  조합(combinatory)’으로 이루어졌다는 초월적 사고초기의 레비스트로스 입니다. 

 

 알튀세르 같은 경우는 구조가 어떤 경우의 수로 환원될 수 없다고 보고, 결합(combination)을 조합과 대립시키면서 구조를 초월적이 아닌 내재적인 것이라고 하죠. 구조가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요소들이 마주치는 효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인데요. 이것은 원인이 없는 결과, 결과 혹은 효과만이 존재하고 그것이 구조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사고라고 볼 수 있는데, combinatory라고 사고할 경우 초월적인 것을 상정하면서, 모든 요소들은 사전에 존재하는 구조의 표현들이 돼버리고, 그렇게 되면 결국에 표현적 총체성이 Expressive totality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굉장히 헤겔적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결합(combination)의 경우에는 총체성이 아니라 복잡한 전체 whole, structural causality 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알튀세르는 지금 두 구조주의 중 이 후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고 거기서 전자의 구조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 조합과 결합이 결국은 같은 것 아니냐? 이 다름이 현실적으로 뭐가 다를까?

-       조합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초역사적인 것들이다. 이는 알튀세르의 입장과는 매우 다름. 알튀세르에게 봉건사회 다음 자본주의가 오는 것은 필연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우연적으로 그 당시 어떻게 마주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이것들이 마주칠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하느냐가 중요하지. 그러나 조합이라는 관념 속에서는 근친상간의 룰, 법칙. 이런 것들이 어떤 식의 변형을 가질 수 있는가의 차원에서 사고가 됨. 왜냐하면 전체 역사가 이 룰의 이런저런 변형들의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사회를 볼 때, 여러가지 차원, 심급을 볼 때, 이런 심급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알튀세르에게는 굉장히 중요한데, 조합이라는 것처럼 생각하면 동일한 규칙이 요소들로 다 표현되는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인 것은 구분되지만 요소들에서 같이 표현됨. 알튀세르는 정치적, 경제적 다른 요소들이 만나서 그 만남의 효과가 거꾸로 요소에 기입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다른 것이다.

 

<알튀세르와 이데올로기>

 

태양과 지구의 거리를 물리학적 인과성이 아닌 가시적, ‘상상적으로 의식할 때, 실제 거리에 대해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듯이 그 인과의 메커니즘은 모르고 결과만 인식하는 것은 사실 상상적인 것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사회문제와 사회관계에 의해 규정될 때, 사회문제와 사회관계가 인과적 메커니즘있지만, 이 실제의 과학적 메커니즘과 다른 이데올로기 고유의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떤 허구적인 혹은 신화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인식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인식으로부터 단절하고 어떤 과학적 인식으로 나아가려는 문제는 인과관계 메커니즘과는 다른 것이다. 처음 담론(이데올로기적 인식)에서부터 과학적 담론으로 나아가려면 단절이 필요하고 균열을 일으킬 새로운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알튀세르는 그것을 책에서 역사적인 문제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맑스가 프랑스로 가서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도 현실적, 실재적인 것으로의 복귀를 통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던 예이죠.

 

질문) 사회문제들과 사회 구조들(현실) 속에 이데올로기가 포함되는가 아닌가?

-       이데올로기를 현실에 대한 상상, 이메지네이션이고, 이런 상상을 갖게 만드는 인과적인 작동으로서의 현실이 있다고 하면, 이러한 현실은 경제적 문제, 정치적 관계 등 매우 여러 가지가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울반영적인 의미의 반영이 아니고, 어떤 인과적인 작용이다. 현실에는 경제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있다. 이 때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장치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라든지 종교적인 장치라든지. 이러한 장치를 일컫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상상하는 것의 장치로서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이고, 경제적인 것도 이데올로기적 효과(상상)를 발생시키는데,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을 통해서 상상적 이미지를 자기 정당화하는 것으로 사고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 문제틀과 에피스테메 >

1)    푸코의 에피스테메는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의 단절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인식틀이 등장한 것. 발리바르는 푸코의 에피스테메는 좀 시대를 규정하는 문화주의적이라고 얘기함.

2)    푸코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의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광범위하게 그 시대를 아우르는 에피스테메가 표현되는데, 알튀세르한테 문제틀은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는 것. 그래서 알튀세르의 문제틀은 국지성을 가지고 있다..

3)    알튀세르 같은 경우, 현실로의 복귀를 통해서 가지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문제틀이 깨지는 식으로 얘기한다. 문제틀에는  타자가 있는 것! 그래서 타자를 통해서만 새로운 사고가 출현 할 수 있는데 <말과 사물>에서는 모든 것이 인식 속에서만 생각이 바뀜.

 

< 알튀세르와 라깡 >

- 라깡에게는 잃어버린 기표, 상실된 기표 그리고 그것의 상실로 생긴 것이 오브제 아, 오브제 쁘띠 아(실재적인 것)인데, 알튀세르에게도 그런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 때, 현실 혹은 실재라는 것은 복잡한 사회 현실 전체이다. 그것이 라깡과 알튀의 차이.

- 이데올로기는 공백을 싫어해서 그것을 자꾸 가리려함. 이데올로기는 모든 것이 설명되는 충만을 좋아함. 그래서 공백이 있으면 그것을 지우려고 주체가 그 주변을 지속적으로 도는데, 그 공백이 가리키고 있는 빈자리가 가리키는 억압된, 사라진 것이 무엇이냐? 할 때, 라캉에게는 기표이고, 알튀에게는 복잡한 사회적 전체와 그 안에 계급적 구조이다.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알튀세르의 문제틀 >

-       이것도 비슷해 보이기는 하는데, 토마스 쿤의 경우 알튀세르와는 달리 과학에 특정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 패러다임에서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데올로기에서 과학으로 넘어가는 것과 다른 것이고, 과학적 패러다임이  특정 패로다임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풀다가 그것이 위기에 처하면 다름 패러다임으로 shift하는 것.

 

     v   푸코, 토마스쿤, 알튀세르 모두 불연속을 가정하지만 세 가지는 다르다.

 

< 알튀세르와 맑스의 역사과학>

-       알튀세르는 맑스의 역사 과학이 역사에 대한 진정한 과학이라고 봄.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분과적인 여러가지 과학들이 있지. ) 알튀세르는 맑스의 역사과학이 분과들의 절합되어 있고 차이화 되어있는지 그 심급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고 보았고, 죽을 때까지 맑스주의 내부에 머물러 있었다.

-       알튀세르가 보기에 주체의 본성에 대해 연구하는 식의 학문은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임. 그래서 맑스주의적이지 않은 사회과학을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음.

-       하지만 계급 적대가 아닌 방식의 이론에 대해서 알튀세르는 설명력이 부족하다. 성적 차이, 기타 등등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고, 끝까지 계급적대에 대해서 얘기함. 나중에 발리바르는 좀 변함.

 

<’전미래적 시제에 대하여>

-       알튀세르는 자본론의 문제의식을 초기 저작에 투영하는 입장에서 전미래적이라는 의미로 쓰면서 부정적으로 쓰는데, 들뢰즈는 구성적인 역량, 힘을 얘기하면서 전미래적인 이야기를 한다.

-       전미래 시제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지젝 같은 경우에는 말하는 방식이 헤겔적이다. 고정점을 예로 들면 고정점이 최종적으로 마련되면 그 원인들이 그 고정점에 따라서 재배치되는데, 이것은  회고적인 방식이다. 사랑에 대해서 예를 들자면, 지젝의 경우, 어느 순간 사랑한다라고 생각하니까 과거의 행위가 이미 사랑의 행위로 소급되는데, 알튀세르도 이러저러한 요소들이 있고 이것들이 어느 순간 만나서 어느 순간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뒤를 돌아보니 원리 그런 것이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회고적이지 않음). 그리고 정확히 그렇게 회고를 할 때, 이것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된다고 말함. 그래서 알튀세르와 지젝이 비슷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다르다. 물론 반헤겔주의자와 헤겔주의자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알튀세르는 사회효과, 주체효과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사회효과와 이런 결과를 목적론적인 것으로 전도시켜서 요소들을 목적론적으로 묶는 것을 주체 효과라고 설명한다.  마치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라고 정체성을 확립시켰을 때, 그걸 전도시켜서 자기 전체 역사를 한국인으로 산 것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주체의 효과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효과는 여러 가지가 만들어져 마주쳐서 만들어지는 것이 사회효과이나 그것으로 이야기,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은 주체의 효과라는 뜻. 지젝의 경우에는 그 두 것 사이에서 동요하는 느낌이 있다.

 

<알튀세르가 구분하는 세 가지 인과성과 지젝의 비판>

1)    transient(타동적 인과성 데카르트적으로 물리적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하나가 하나를 얘기하고 또 야기하고, 당구공이 하나를 때리면 다른 것을 때리는),

2)    expressive(전체의 논리가 부분에 모두 포함되는)

3)    structural(이러저러한 요소들이 마주쳐서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그런데 지젝은 알튀세르를 비판하면서, 헤겔이 이미 알튀세르가 얘기하려던 것을 다 얘기하려 했다면서 1)을 실재적인 것, 2)를 상상적인 것, 3)을 상징적인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3)의 상징적인 것은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사후적, 회고적 방식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면서 이것이 헤겔이 말한 것이라고 주장함. 해겔의 절대정신의 운동 방식이 어떤 순간에 새로운 매듭을 만들면서 그 이전에 것들을 상징적인 것으로 구성하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지젝이 말하는 것은 ground -> grouded로 결정되는 그것이 반대로 영향을 줌. 토대와 상부구조가 서로 호환하는 얘기나 마찬가짐. 알튀세르가 말하는 것은 그것과는 상관없다. 우발적 마주침에 의해 의미를 형상한다는 것. 알튀세르에게 중요한것은 3)번이다. 그러니까 실재에 가까운 것은 1)이 아니라 3)이 더 가깝다. 그리고 2)expressive가 더 상징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알튀세르는 상상과 상징을 구별하지 않으니까 아귀가 잘 안 맞는면도 있는데 3)이 실재적인 것이다.

 

<알튀세르의 문제틀과 헤겔적 ‘totality’ >

-       알튀세르는 문제틀과 총체적인 것을 대비시키는데, 이것이 헤겔적인 것과 자신을 나누는 기준이다. 성숙기 이데올로기적 분석들을 항상 고취하고 있는 이 문제틀이란 용어를 제시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임.

-       복잡성이 완전히 사라져서 하나의 완전히 순수한 것으로 환원된 헤겔적 통일성과는 달리 알튀가 말하는 문제틀은 모든 요소들을 통일시키는 전형적인 체계적 구조로 요소들의 의미를 파악하게 해주는 것이다. 전체와 총체성(토탈리티)는 전혀 다르다. 전체는 이러저런 요소들이 절합되는 복합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반면 헤겔적인 것은 단순한 논리의 지속적인 자기 복사이다.

-       문제틀이 헤겔적 총체성과 대비되니까, 알튀세르가 인식론적 단절을 얘기할 때 총체화된 하나와 다른 총체화된 하나 사이의 깨끗한 단면이 아니다. 알튀는 총체성에서 총체성의 교대나 갈아치우기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틀 안에 어떤 문제들이 복잡하게 되어 있고, 새로운 어떤 문제틀이 나왔을 때, 이것도 과학적인 문제틀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것이 그 자체로서 총체성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의 결합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양자사이에 인식에서 인식으로 넘어가는 본질적 단면은 없다는 얘기다.( 단절이 일어났다고 해서 완성됐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틀도 과학적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것들과 섞여 있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후에 알튀세르는 어떤 인식론적 단절도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단절하는 인식론적 단절은 없다, 항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후기로 갈수록 복잡하고 불순한 단절이 있다.

-       그래서 발리바르는 인식론적 단절이 일어났을 때, 이데올로기와 과학이 쫙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경향과 과학적인 경향의 유동적인 상태가 열리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알튀세르의 진보 관념> 

알튀세르에게 진보 관념은 선형적인 의미에서의 축적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주의적인 사고가 되는 것이다. 선형적인 축적이 아니라 불연속을 만들어 내면서 새로운 것들, 이질적인 것들이 출현하면서 과학의 생산이다.  그런데 어떤 과학적 개념이 등장하면 그 이전의 이데올로기적 사고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면에서 가역적이지 않고, 그런 면에서 진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도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를 얘기할 때, 헤겔이 말하는 절대적 진리라는 것은 상대적 진리의 축적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진리가 발생할 때, 그 국면에서 발생하는 절대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절대성은 더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특징 짓는데,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헤겔도 그런 방식의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절대적 정신을 그런식으로 보게 되면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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