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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ia

질문을 늦게 확인했네요~~ 죄송^^

 

1. 자기성과 이야기성의 차이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일단 기표적인 것의미적인 것은 다릅니다. 특히 의미에 대한 논의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어갈 텐데요, 의미는 늘 사건과 함께 가지요. 기표적인 것은 언제나 사건을 숨깁니다. 그와 함께 의미도 감추지요. 하지만 기표가 없으면 의미도 사건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법은 이러한 사건과 의미의 표현으로서 기표들을 구조화하는 매개에 해당되지요. 이야기성은 문법의 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문법적인 층을 시간성으로 가져갑니다. 그래서 그것에 시간성의 차원을 부여하지요. 이것은 언술 내부에 어떤 것을 지칭하는 특성과 더불어 어떤 역사적 지향성과 연속성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지칭은 주체와 대상이며, 역사적 지향성과 연속성은 동일성입니다. 따라서 이야기성은 문법적 차원에 시간성을 도입함으로써 주체의 동일성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의 동일성은 우리가 배웠다시피, 자기(ipse)와 자체(idem)를 오가면서 생겨납니다. 이야기성은 이 왕복운동을 구성하는 것이지요. 주의해야 할 것은 질문 중에 주체를 포획한다는 것이 나오는데, 이 말은 이미 주체의 실존을 전제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리쾨르에게 주체는 최종적인 것입니다. 이야기성을 통해 최종적으로 전유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주체성이기 이전에 자기성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성의 양상은 늘 운동하는 것이며, 동사적 특성을 띄는 것입니다. 반면 자체성은 그것이 자기성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연, 즉 필연성을 띱니다. 저는 이 자체성을 인간의 유한성이 가닿지 못하는 것, 하지만 그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인 것, 다시 말해 죽음이라고 봅니다.

 

 

2. 이야기성이 신체를 살로 만드는 것인가요?

 

우선 거칠게나마 분류하자면, 개체성(individualité)은 신체(corp)와 개별성(individuel)은 살(chair)과 상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용된 리쾨르의 말 언술이 물질적 신체의 운명을 공유한다는 것은 언술이 가지고 있는 물질성(예컨대 목소리라는 음성적, 물리적 엔터티)이 곧 신체와 함께 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리쾨르가 말하는 신체는 거기 주석 5에도 있다시피, 저의 논의 선상에서는 에 해당됩니다. 즉 이미 개별화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개별화된 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이야기성인가? 이게 중요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이야기성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신체성이 의 한 국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국면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 더 중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들뢰즈와 더불어 의미사건이라고 봅니다. 비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하나의 개별성(이것을 개성이라고 봐도 무난합니다)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야기성의 씨줄과 사건(의미)의 날줄이 교차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올랭피아가 우리의 감각과 지각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되는 사건의 시간과 이런저런 그림들 중에서 우리가 왜 그림을 택했으며, 또 그것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했고, 우리 각자가 무엇을 그 그림으로부터 의미화했는지를 음미하는 이야기의 시간이 하나의 공간을 만날 때 올랭피아는 바로 그것’, 즉 개별적인 것이 됩니다. 두 개의 시간과 하나의 공간이 만나는 그 이 바로 개별성이고 이지요.(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에서 우리는 사건 자체를 만나지는 못합니다. 사건은 이 아니라 모나드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보도록 합시다.)

 

3. 강의에 철학 개념이 소나기처럼 쏟아지지요? ^^ 제가 더 노력해서 되도록 사례들을 많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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