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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와 현상학의 해체] 2회 수업 후기

하루 2013.07.06 11:27 조회 수 : 1993

오늘 두 번째 수업에서는 에드문트 후설의「기하학의 기원」(이하「기원」)과 자크 데리다의『기하학의 기원』(이하『기원』)을 읽고, 듣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후설의「기원」이 역사적 생활세계로부터 언어를 통하여 초역사적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나름의 논증 과정이라면, 데리다의『기원』은 후설의「기원」에 대한 해설인 동시에 후설의 논증 과정에서 재고되어야 할 점들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두 편의 글 모두 온전하고 적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수업 중 최진석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들을 후기로 정리하려 합니다.

 

먼저 후설의 현상학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형성된 사유입니다.

19세기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인문학에서도 실증주의적 탐구가(랑케의 실증사학 등) 성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증주의는 경험적(역사적) 현실과 구체적 자료에 기반하여, 수집된 경험과 자료를 해석하는 데 충실하게 마련이므로 ‘현실’과 ‘증거’를 넘어서는 비현실적(초역사적) 진리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연구 풍토에서 인간의 상상력이나 이성적 직관력은 경시되어 갔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험주의에 기반하되 실증주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감정이입을 중시하는 심리학주의가 세를 얻어갔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주의는 ‘사실’을 개인의 주관으로 환원하기 십상이어서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학(學)’으로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후설은 학문의 실증주의적 경향에 맞서면서 심리학주의의 주관성을 수용함과 동시에 객관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주관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 즉, 인식 능력에 대한 탐구를 시작합니다. 「기원」은 이러한 탐구의 연장이자 결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하학의 기원을 묻는 일은 기하학이란 학문 분야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탐구가 아니라, 기하학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러니까 역사적 진리가 아니라 초역사적 진리를 향한 사유가 발생했던 ‘기원(Ursprung)’을 물음으로써, 가변적으로 정립-재정립되는 전통으로서의 진리가 아니라 불변하는 절대적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하는 자세를 복원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이 문장에는 제 생각이 섞여 있으니 아주 믿지는 마시길).

더 이상 절대자를 믿지 않는 근대에 이러한 물음과 탐구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후설은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르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구체적 인간들이 모여 살며 이룩한 전통에 기반한 ‘생활세계’의 ‘현상’을 직시하되,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은 신념이나 관습에 침윤되어 있는 ‘일상적(자연적) 태도’를 물리치고 현상 이면의 ‘순수한 본질’을 ‘직관’하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역사적이고 주관적인 진리는 초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로 도약하는 계기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순수한 본질에 이르는 직관을 매개하는 사유 기제는 후설에게 ‘언어’입니다.

그러나 한 주관에게 인식된 이념적 대상으로부터 여러 주관들 사이에서 진리의 보편성을 담지하는 이념적 객관으로의 전회(轉回)가 언어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는 후설의 생각은 ‘언어’에 대한 비현실적 전제를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데리다가 문제 제기하는 점이며, 수업 중 주희님이 질문한 점이기도 합니다). 후설에게 언어는 일상적 태도에 침윤되지 않은 투명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언어는 특정 집단의 특정 가치에 의해 침윤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역사성도 공동체성도 초월한 순수 언어는 생활세계에서 존재할 수도, 발화될 수도 없습니다.

데리다는 이폴리트의 “주관 없는 초월론적 광장”(『기원』, 121쪽)이란 표현을 빌어와 후설이 지향한 ‘순수한 본질의 세계’, 경험에 앞서 있는 진리의 세계에 이르게 해주는 매개로서의 언어는 불가능하다고 논합니다. 인간성의 지평에 있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결코 투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성의 지평으로서의 언어 공동체와 순수한 직관으로서의 언어는 서로 다르다는 걸 후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데리다는 개별화되지 않은 순수한 직관으로서의 초월론적 말을 인간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개별화된 언어만을 이해할 수 있고 개별화된 언어는 문자의 언어, 즉 글쓰기이며 따라서 말이 먼저가 아니라 글쓰기(개별화된 언어)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최진석 선생님은 수업을 마무리하며 후설의 현상학을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사물에 대한 일상적(자연적) 태도를 지우면 현실에 있는 사물의 본질(진리)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학적 환원은 구체적 사물이 드러나 있는 현실의 현상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매우 현실적인 듯하지만, 현상을 통해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다는 사고는 실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후설은 비현실적일수록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이해하자면 현상은 일종의 상징(징후)이고, 우리는 상징을 통해 의미(근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볼 수 있다.

 

요즘 국문학계에서는 ‘문화론적 연구’가 화두 중 하나입니다. 유럽에서 한때 바람을 일으켰던 미시사 혹은 생활사의 연구 방법을 국문학 작품 연구에 적용한 경우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문학 작품 연구 내지 비평이 문학 작품 자체의 해석에 충실해야 하는가, 문학 외 학문(철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등)에서 생산된 이론에 의해 문학 텍스트를 조망해야 하는가, 이렇게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던 국문학계의 연구 흐름에 새로운 줄기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 논쟁에서도 ‘실증적’ 혹은 ‘실증주의’라는 말들이 오고갑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철학도 문학도 ‘진리’ 내지 ‘보편’이라는 단어에 대해 드러내는 강한 거부감이 나날이 깊어가는 21세기 초반, 후설이 지향했던 학문하는 자세를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동안 머리를 맴돌 질문이 될 듯합니다.

어렵지만 중요한 물음을 던지는 책, 함께 공부할 자리 마련해 주신 최진석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나치게 긴~~ 후기,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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